[우리 동네 막걸리] '동네 막걸리' 다양성·순수함에 반했다

입력 : 2017-01-25 19:11:23 수정 : 2017-01-31 15: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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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필 좌천1동 주민협의회 부회장이 30일 숙성시킨 밥과 술을 거르기 위해 체에 받아 짜고, 정영희 총무가 붓고 있다.

2010년 무렵까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K팝 열풍을 타고 막걸리가 유행이었다. 유럽·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와인·맥주, 일본산 청주와 소주, 국산 증류 소주 등이 대중화되면서 막걸리 유행이 한풀 꺾여 아쉽다. 암중모색이랄까. 지역 차원에서 막걸리를 살리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그렇다. 원래 막걸리는 동네마다 있던 술도가가 고향이다. 전통문화를 다시 생각하고 계승하는 설 명절이기에 '동네 막걸리' 부활은 더 의미가 있다.

좌천동 마을기업 ㈜가마뫼 '우리술 이바구'
석 달간 5차례 숙성 오양주로 도수 높고 걸쭉
독하지 않고 달콤·깔끔, 두통·트림도 없어

부산 5번째 전통주 공장서 '개똥쑥 막걸리' 생산
개똥쑥 파종부터 병입까지 영도서 모든 공정
쑥향 가득 '맛·향' 균형, 부담스러운 단맛 없어

좌천동 '우리술 이바구'

우리나라 술 산업은 규제로 운명이 갈렸다. 막걸리도 마찬가지였다. 식량이 부족하던 1965년 쌀을 원료로 한 술 제조가 금지됐고, 1973년에는 술도가가 통폐합됐다. 서민의 사랑을 받던 막걸리 소비는 크게 위축됐고, 소주·맥주에 그 자리를 내줬다. 1999년 독점 판매제가 폐지되고 새 면허가 발급되기 시작하면서 막걸리 산업은 부흥기를 맞는다. 이어 지난해 2월 주세법 시행령이 개정돼 전통주 제조량이 적은 소규모 업체도 면허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우스 막걸리' 판매 시대가 열린 것이다.

중년 이상 고령층이 많은 부산 동구 좌천1동 주민협의회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좌천동 '동굴 막걸리'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체 제조한 술을 판매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협의회는 회원 30여 명으로부터 1800만 원을 출자받아 '가마뫼'라는 법인을 지난해 6월 설립했고, 10월 마을기업으로 지정됐다. 동구청은 금성중학교 인근(증산로 74)에 '가마뫼 나들목'을 만들었다. 전통주 제조·판매장이자,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겸하는 공간이다. H빔을 세우고 안전시설을 보강한 동굴은 가마뫼가 만든 술을 숙성시키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우리술 이바구'라는 이름으로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가마뫼는 3월쯤 면허 발급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정재인 회장, 신윤필 부회장, 정영희 총무를 비롯한 협의회 임원들은 우리술아카데미 미리내에서 2개월 과정의 교육을 받았다. "작년 초에는 시내 다른 곳에서 9개월 동안 전통주 제조 교육을 받았으니까 거의 1년을 막걸리 만드는 방법을 배운 겁니더. 저하고 정 총무님하고 둘이서 정말 고생 많이 했어예." 숙성이 과해 병뚜껑을 따다 '폭발'한 실수담, 추운 날씨에도 쌀을 씻고 또 씻으며 젖은 손 마를 날이 없었던 고생담을 전하는 신 부회장의 표정에는 그동안의 노고가 녹아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우리 동네 같은 원도심에는 젊은 사람도 부족하고 각자 바삐 살다 보니 교류도 없는데 이렇게 모이면 뭔가 활기찬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된다"며 소녀처럼 웃었다.

가마뫼 나들목을 구경시켜준 정 회장은 숙성시키고 있는 우리술 이바구를 작은 잔에 한 잔 따라 내놨다. 우윳빛이 도는 약간 걸쭉한 모습이다. 알코올 도수가 높아 보인다. 정 회장은 15도 정도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보통 시중 막걸리가 6도 전후니까 배 이상 독하다는 얘기다. 벌컥벌컥 마실 술이 아니다. 그런데 한 입 머금어 보니 전혀 독한 느낌이 없었다. 두 잔 석 잔 마실수록 더 달콤하고 깔끔했다. 감미료를 듬뿍 넣지 않고는 낼 수 없는 맛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가마뫼 나들목에 설치된 전통주 생산 설비.
"우리술 이바구는 오로지 쌀, 누룩, 물만으로 만듭니다. 그 외의 재료는 일절 없습니다." 정 총무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이런 단맛이 나는 걸까? 비결은 숙성 횟수에 있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막걸리는 대체로 밑술에 덧술을 한 번 더해 빚은 이양주다. 우리술 이바구는 오양주다. 숙성에만 3개월이 걸린다. 그래서 막걸리가 아닌 '우리술'로 이름 붙였다. 병에 넣어 판매가 되면 시중 고급 탁주 가격과 비슷하거나 좀 더 비쌀 것으로 예상한다. 대신 마지막 제조 과정에서 물을 섞지 않기 때문에 냉장 보관만 하면 1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두통, 트림, 냄새 등 막걸리의 부작용도 전혀 없다고 가마뫼는 강조한다. 정 회장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하는 공식 행사에 건배주로 선정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며 고품질 전통주로 분류해주기를 원했다.
이날 짜낸 술. 이 술을 3개월 더 보관하면 단맛이 풍부한 술이 완성된다.
가마뫼는 우선 이 술을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2월 말부터 나들목에서 '인문학과 우리술 이바구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강연과 시음 행사를 연다. 정공단, 안용복기념관, 일신여학교 등의 지역 역사문화가 주민들의 열정 어린 전통주와 어우러져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기대를 모은다. 가마뫼 나들목:부산 동구 증산로 74(좌천동). 070-4036-5885.

영도 '개똥쑥 막걸리'
태종대 개똥쑥 막걸리 생산 마지막 공정으로 술을 병에 담기 위해 준비작업을 하고 있는 태종대식품 직원들.
우리는 흔한 것은 귀하지 않다고 흔히 생각한다. 쑥이 얼마나 흔했으면 '개똥'이라는 이름을 달았을까. 그런데 2015년 노벨의학상은 개똥쑥에서 추출한 아르테미시닌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한 중국 학자에게 돌아갔다. 미국 워싱턴대학교는 기존 항암제보다 개똥쑥 추출물의 항암 효능이 1200배 강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당연시하는 흔함 속에 진리가 숨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주에서 태어나 직장 일로 부산 영도에 터를 잡은 손창순 ㈜태종대식품 원장은 영도에 자생하는 개똥쑥에 주목해 약 10년 전부터 개똥쑥 진액을 가미한 지역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체 공장을 갖출 자본력이 없어 마을기업을 만들고, 정관읍과 부곡동 등지의 기존 막걸리 공장에서 위탁 생산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체 공장보다는 생산·유통 관리가 어려웠다. 손 원장은 지난해 1월 별도 생산 법인을 만들었다. 금정산성토산주(산성막걸리), 부산합동양조(생탁), 부산산성양조(기찰), 동백양조(생막걸리)에 이어 부산에서 다섯 번째 전통주 제조 공장 면허를 받았다. 지난 1월 6일부터는 태종대 인근에서 자체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개똥쑥 파종에서부터 막걸리 생산까지 모두 영도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손창순 원장을 비롯한 공장 가족들이 개똥쑥 막걸리 병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약 30년 동안 전통주에 대해 해온 연구를 이제 상품으로 펼쳐 보일 수 있게 됐다"는 손 원장은 드디어 꿈을 이뤘다고 뿌듯해했다. 약 2년 전부터 영도 지역 유통망 확보를 위해 뛰어든 아들 현민 씨가 큰 힘이다. 현민 씨는 "처음에는 포스터를 찢거나 제가 나가고 나면 냉장고에서 술을 다시 빼놓던 분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영도지역 주점과 슈퍼마켓에는 90% 정도 보급이 되고 있다"며 "영도 이외 사하구, 남구, 중구 등지에 대리점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부산 전역에 대리점이 생기는 것이다.
담금조 술에서는 효모에 의한 발효 숙성이 진행되고 있다.
개똥쑥 막걸리는 숙성에서 생산까지 9일이 걸린다. 개똥쑥이 자연 방부제 역할을 하기에 유통기한도 20일로 긴 편이고, 막걸리 특유의 냄새나 트림이 적다. 마셔 보면 특유의 쑥 향기가 깔끔하고, 부담스러운 단맛도 나지 않는다. 맛과 향 모두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전국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 손 원장은 "개똥쑥 막걸리 유통으로 얻는 수익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주민과 함께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소매점 1병 당 1100~1200원. 20병 1박스 2만 원(택배비 별도). 부산 영도구 태종로793번길 5(동삼동). 051-405-1800.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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