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부산 공간의 재발견] 길 4, 5·17 쿠데타와 '작은 광주'

입력 : 1970-01-01 09:00:00 수정 : 2009-01-11 20: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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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압의 군홧발' 삼일공사 이젠 흔적만 남아

부마민주항쟁을 밑거름 삼아 80년 '민주화의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우울한 징조들이 곳곳이다. 죽은 자가 산 자의 목을 조르듯,독재의 망령들이 다시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자기복제를 거듭하며 다만 순환할 뿐인가.

79년 12·12에서 80년 5·17일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이르기까지 신군부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걸린 쿠데타'가 다시 민주화의 발목을 잡았다. 80년 5월18일 '빛고을' 광주를 핏빛으로 물들였던 반민주의 망령은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적을 수면 위로 떠올리며 반독재 반외세라는,부산에서의 '작은 광주'로 이어진다.

# 민주화의 성지 삼일공사?

"허무합니다. 그 위세등등하던 곳이 대문짝만 남은 채 폐허가 되다니. 차례로 불려나가 두들겨 맞던 지하실도,담요를 털던 자리도 이제 없네요. 그 때 그 사람들 지금 무얼할까요. "

부산 연제구 망미동 옛 삼일공사(부산지구 계엄합동수사단 별칭)를 찾은 신종권(52·부산한살림 이사장)은 지금은 부산지방병무청 징병검사소와 아파트 공사장으로 변한 국군통합병원 옆에서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삼일공사 자리가 어딘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막상 폐허로 남은 그 때 그 현장을 찾아냈을 때,'웃기네'만을 연발했다.

당시 영남상고 교사였던 그는 광주민중항쟁 소식을 듣고는 '광주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들의 십자가'라는 유인물을 제작하다 검거됐고 삼일공사에서 한달,계엄보통군법회의가 열렸던 양정 헌병대에서 한달을 살다 3년형을 선고 받게된다. 당시 부산대 동아대 등의 웬만한 민주화 운동가들은 이 곳으로 다들 붙들려왔다. 신종권 조태원 신재식 김종세 정광민 김하기 성병덕 안승운 이상경 이광호 사공술 정인제 등이 그들이다.

이후 81년 부림사건 등을 거치고 이합집산을 하다 1세대 민주화그룹이 늙었다는 뜻의 '노털'을 희화화한 친목단체 '노터리클럽'을 만들어 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힘을 한데 모으게 된다. 역사에서 순환하는 것은 반민주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다른 한 켠에서는 김재규(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를 중심으로 문정현 박찬성 노재열 김하기 등이 서면 천우장과 남포동 부영극장 거리에서 광주의 진상을 알리는 데 적극 나선다. 문정현(서봉리사이클링 회장·52)은 "아베크 데이트족으로 가장하여 지금의 아내 핸드백에 유인물을 넣고 다니다 버스 위쪽 공기통 위에 '백정 전두환'이라는 유인물을 올려놓은 채 하차하면 버스가 발차하면서 자연스럽게 유인물이 뿌려지도록 했다"며 "당시 가톨릭농민회 회원이었는데 빨갱이로 내몰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 부림·방화의 좌절에서 희망으로

부림사건과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부산 민주화운동의 좌절이자 훗날에는 성과로 자리잡게 된다. 81년 9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부산지역 민주인사 22명을 구속했던 부림사건은 5공 최대의 용공조작사건으로 꼽히지만 부산지역 종교단체 학생 재야세력 등을 한데 모은 최초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역외의 성과를 거두었다.

부산지역 민주화그룹의 뚜렷한 전선 확립,재야세력의 출현,노동현장 등으로의 참여 확대 등의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다.

1982년 3월 고신대 부산대 부산여대 등의 재학생이 중심이 돼 일으킨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전국적으로 큰 충격파를 안겼다. 방화라는 폭력적인 방법에다 사상자까지 발생한 사건이어서 운동진영 내부에서까지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이 광주민중항쟁에서 촉발되었고 5월의 광주를 묵인한 미국의 정체를 본격적으로 알렸다는 점에서 반미민주화 운동의 효시로 자리매김됐다.

1980년대 초반에 일어난 부산의 '작은 광주'는 양극단의 평가 속을 팽팽히 내달렸지만 부산과 전국 민주화 운동의 전열을 가다듬는 기폭제로 작동했다.

◇특별취재팀=임성원기자(문화부) 이현우·최혜 규기자(사회부) forest@busanilbo.com

◇자문위원=차성환(민주공원 관장) 김종세(민주공원 경영기획팀장) 김영주(민주공원 교육기획팀과장) 김선미(부산대 강사) 이일래(부산대 강사)

부산일보·민주공원 광복60돌 공동기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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