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돼지국밥] 기다림에 지친 속… '밥' 달라고 아우성

입력 : 2006-10-19 00:00:00 수정 : 2009-01-30 03:09:03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국물도 고기도 무한 리필

작달비가 퍼붓던 어느 날 저녁. 그동안 벼르던 '거사'를 치르기로 했다. 설마 사람들이 이 날씨에도 줄을 설라고? 에그머니나. 얼굴을 때리는 비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우산을 쓴 채 묵묵히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오늘도 먹기는 글렀다.

부산 남구 대연동 '쌍둥이돼지국밥'. 대연동사거리에서 유엔교차로 가는 길로 50m 남짓 내려가면 유난히 북적거리는 식당이 있다. 그게 바로 '쌍둥이돼지국밥'이다. 이 집 앞에서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국밥 한 그릇 먹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지난 8월 간판을 바꿨는데,그 전까지만 해도 '신속배달'이란 문구가 선명했다. 줄서는 집에서 웬 신속배달?

식당주인은 11년 전에 개업했을 때만 해도 한동안 열심히 배달을 다녔다. 그러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졌고,서너 사람이 줄을 서더니 지지난해 10월께부터는 갑작스레 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신속배달'은 불가능해졌다.

지난 수요일 오전 11시,정식으로 문을 열기 전부터 손님들이 들이닥친다. 등산복 차림으로 들어온 노부부,친정어머니와 아들을 데리고 온 주부,일찌감치 식사를 해결하러 온 택시기사,뭐가 좋은지 연방 싱글벙글인 젊은 연인 등 얼추 열대여섯 명은 넘어 보인다.

오전 11시50분,국밥집으로 들어서려던 할머니 세 분이 이날의 첫 대기손님이 됐다. 오후 12시30분을 넘기면서 줄을 선 사람은 25명을 넘었고,오후 2시까지 10명 안팎으로 줄은 이어졌다. 기다림에 지친 일곱 청년은 짧은 점심시간을 탓하며 맞은편 다른 국밥집으로 발걸음을 총총 옮겼다.

왜 이리들 줄을 설까?

갓난아기 한 명씩 업고 기자 바로 뒤에서 기다리던 30대 주부 두 사람의 답변. "애기 아빠 친구 소개로 왔어요. 돼지국밥은 전혀 못 먹었는데,이 집에 와서 먹을 수 있게 됐어요."

서면에서 점심시간에 짬을 내 왔다는 직장인들. "국밥 집이야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있지만,이 집만한 곳이 없다"며 시키지도 않았는데 TV 맛자랑 코너서 늘상 봐왔던 풍경처럼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맨 앞에 서 있던 70대 할머니는 '왕단골'인 모양이다. "한 달에 스무 번은 와." 할머니에게 불만이 없느냐고 물었다. "불만 있으면 딴 데 가지." 괜한 질문을 던졌다 싶었다.

본보에 '시장따라 골목따라'를 연재 중인 최원준 시인과 함께 한참 줄을 서 있다 드디어 입성에 성공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수육백반을 시킨다. 6천원. 기다림에 지친 속은 난리를 치지만 식탁에 앉고 나서도 또 기다려야 한다. 식당안 벽에도 비슷한 심정을 하소연한 낙서가 보인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들어와서 더 기다리고…. 맛이 없을 수 있나? 배고파 죽겠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늦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밑반찬도 담고,고기도 자르기 때문이다. 절대 음식을 미리 담아놓지 않는다는 게 이 집의 원칙이다.

안주인이 하루 종일 수육을 자르고 있는데,눈으로 손님을 훑어가면서 조금씩 다르게 낸다.

남자 손님은 땡초와 새우젓 많이,여자 손님은 땡초는 적게 부추는 많이. 수육도 남자 손님에겐 비계를 많이 넣는 대신 양을 푸짐하게 내고,여자 손님에겐 양을 남자보다 적게 하면서도 살코기 위주로 내놓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수육이 먼저 나오는데,이건 거의 따로 수육 한 접시를 시킨 양이다. 2인분 기준으로 25점 안팎. 부위는 돼지고기 한 마리 잡아서 얼마 안 나온다는 항정살이 많다. 최 시인의 입이 벌어진다.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운 게 예사 맛이 아닙니다."

수육 접시 아래에는 알코올램프로 식지 않게 데워주는 센스까지. 접시에 흥건한 국물에선 뽀글뽀글 물방울이 튀어오르고,수육에선 김이 하늘로 피어오른다.

미식가인 최 시인의 분석은 이어진다. "초간장과 겨자를 푼 양념장에 수육을 담근 뒤 상추쌈을 먹을 수 있게 한 건 여성 취향입니다. 새콤달콤한게 여자들이 좋아할 맛입니다."

수육을 다 먹었다 싶으면 국과 밥이 나온다. 국은 담백하다. 돼지국밥인데도 설렁탕 같다. 노린내도 나지 않는다. 매일 12시간 이상 곰탕 내듯 진하게 고아낸 덕분이다.

맛도 맛이지만 이곳에선 좀 더 달라면 국물이든 고기든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 그래서 단골 중에는 배고픈 학생들이 많다.

잠시 끊어졌던 줄은 오후 6시30분이 되면서 다시 이어지기 시작해 오후 9시가 넘어서야 줄을 서지 않고서도 국밥을 먹을 수 있었다. 오후 11시까지 영업한다고 써붙여 놓았지만 실제로는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기자가 넌지시 안주인에게 물었다. "이렇게 줄 서는데 가게 좀 넓히시죠."

돌아온 답이 이랬다. "손님이 많다고 무작정 식당을 넓힐 수 있습니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지면 손님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051-628-7020 글=이상헌기자 ttong@busanilbo.com

사진=김병집·김경현기자·문진우 프리랜서 bjk@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