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단출한 밥상이 선사하는 즐거움

입력 : 1970-01-01 09:00:00 수정 : 2009-01-11 11: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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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밥 한 그릇과 김치 몇 쪽이면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다. 소박한 먹성의 한국인들! 이번 주에는 단출하게 밥집 한 곳과 김치찌개 집 세 곳을 소개한다. 모두 천연 조미료를 사용하고, 숙성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밥상은 단출한데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글·사진=최학림 기자 theos@busanilbo.com



'밥집'에서 '집밥'을 만나다
■ 부산 광안1동 '밥집 소예'

수영 동방오거리에서 수영교차로 쪽으로 70~80m쯤 가다 보면 왼쪽 편에 자그마하고 깔끔하게 예쁜 '밥집'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다. 부산 수영구 광안 1동 '밥집 소예'. 푸른 은행나무 가로수를 배경으로 그 간판은 소박하고 푸르게 눈에 들어온다. 유리문에 '가정식 밥집'이라 쓰여 있다.

50대의 여주인 박연희씨는 "밥집이라면 끝이지, 또 뭐 별다른 수식이 필요하겠어요"라고 되물었다. 소예는? '소'는 작다, 소박하다, 희다, 깨끗하다, 는 뜻이고 예는 예술이라는 뜻. 작은 밥상에 깃든 주인의 정성과 자부심을 능히 가늠할 만한 이름이다. 문 연 지 4년여 됐다. 남자 손님들에 이어 들어오는 젊은 여성 손님 여러 팀들, 한 팀을 빼고는 주인과 나누는 대화가 이집 단골들이다.

박씨는 점심 밥을 장만하는 데 하루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혼자서 일하는데 새벽시장에 가서 장 보고 밥 짓고 반찬 만들고 설거지 하면 하루가 꼬박이다. 그래서 이 집의 첫 번째 특징은 점심만 한다는 것이다. 낮 12시~오후 3시. 깊은 밥맛이 오죽하랴! 오는 손님들 거의가 단골이다. 그 단골들은 이 '밥집'에서 '집밥'을 먹고 있다. 집밥처럼 매일매일 반찬이 바뀐다는 것이 이 집의 두 번째 특징이다.

이날에는 미역국과 밥, 그리고 15가지 반찬이 상 위에 쫙 깔렸다. 반찬들은 자그마한 그릇의 예술을 구사하고 있다. 집에서도 이렇게 아담한 그릇에 반찬을 담아 먹으면 맛있겠지 하는 마음이 부질없이 일어난다. 취나물 오이 호박 가지 정구지 무침들이 상큼하고 맛깔스럽다. 그리고 조기구이 한 마리. 두툼한 호박 무침이 입속에 포만하게 안긴다.

그녀는 "이것이 저의 생활 전선이고 본업이다. 최선을 다해서 즐기면서 하자는 것이 저의 모토"라고 했다. 5~6년 전 건강이 중요하고 옳은 음식을 먹는다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한 계기가 있었단다. 그 깨달음이 상 위에 정갈하게 펼쳐지고 있다. 4인 식탁 5개. 전화 예약 필수. 매주 화요일 쉰다. 1인 5천원. 051-752-1727.




이역만리에서 돌아와 만나는 고향맛
■ 부산 초량동 '부산정거장'

김치찌개 맛이 예사롭지 않았다.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정거장'. 한 날, 점심 때 부산역에 손님을 마중갔다가 우연히 들른 집인데 뜻밖에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알고 보니 이 집 주인이 영화 영상 작업을 했다는 부산의 문화인 강지훈(57)씨다. 그는 러시아 상페쩨르부르크에서 1년,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서 5년, 또 중국에서 8개월, 그렇게 긴 세월 이국에서 영상 관련 일을 했다. 그때 몹시도 우리 음식이 먹고 싶었단다. 우리 음식에 대한 그 갈증으로 탄생한 것이 이 집 음식들이고, 김치찌개다. 고향 땅의 그리운 맛이 짙게 배어 있는 찌개인 것이다. 이 집의 문을 연지는 1년 반 됐다.

유별난 맛이 난다. 국물 맛에 이 집 김치찌개의 특징이 우선 들어 있다. 특이하게도 꽁치 우려낸 물을 섞었다. 타슈켄트에 있을 때 김치찌개를 잘 하던 한국인 식당의 김치찌개에서 착안을 한 것이다. 꽁치 국물 맛이 김치찌개의 맛을 아주 깊게 하고 있다.

6개월 이상 된 묵은지에다가 국물 속에 녹아 있는 약간의 돼지고기 건더기가 곰삭은 김치찌개의 맛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화학조미료는 전혀 쓰지 않는다. 계란말이 버섯무침 땅콩조림 오뎅무침 깻잎조림 고추지 등의 반찬도 매화 꽃이 수놓인 접시와 함께 깔끔하다. 입맛 까다로운 여성들이 밥 손님의 80%다.

그런데 이들 음식 맛을 강씨의 중국인 부인이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에 가 있을 때 집사람을 만났죠. 중국 한족인데 음식 솜씨가 있어요." 이 집의 김치찌개뿐만 아니라 돌솥비빔밥 우거지찌개 된장찌개가 모두 맛있다.

돌솥비빔밥(5천원)은 각종 야채가 뒤섞인 가운데 인삼의 쓴맛과 고추장의 단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으며, 우거지찌개는 요즘 약으로 섬기고 있는 우거지의 심심한 맛이 일품이다. 강씨가 기자에게 한 잔 건네는 농주의 맛 또한 감칠맛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은 사랑방 주막 역할도 하고 있다. 벽면에 월산대군의 시가 묵서(墨書)로 쓰여 있고, 홍어 빈대떡 파전 황태구이가 저녁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교원빌딩과 광장호텔 사이 골목 길 20~30m 지점. 손님이 많이 드나드는 문출래된장집(지하), 부산식당(1층)이 있는 건물의 2층에 있다. 1, 3주 일요일 쉰다. 김치찌개 등 찌개류 4천원. 051-464-2322.




암퇘지와 손맛이 빚어내는 개운함
■ 부산 수정동 '사랑채'

김치찌개의 맛은 국물에서 우러나는 줄 알았다. 부산 동구 수정동 '사랑채'의 국물 맛이 개운하다. 맛국물은 멸치 야채 등 7~8가지 재료를 넣고 1~2시간가량 푹 고아낸 것이어서 참 시원하다.

그러나 더 알고보니 김치찌개의 맛은 고기 맛에서 우러나는 것이었다. 주인 신영주(61)씨는 "김치찌개의 고기는 국산 암퇘지만을 쓴다"고 했다. 무슨 고기를 막론하고 수놈들 맛 없는 것은 다 아는 사실(?). 게다가 암퇘지 고기를 그냥 쓰는 것이 아니고 각종 양념에 재워 7~8시간 숙성시킨단다. 그래야 맛이 제대로 우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다가 아니었다. "김치찌개 최종의 맛은 김치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신씨는 말했다. 김치찌개이니까 그 기본인 김치가 맛을 좌우하는 것이다. 국산김치와 중국산김치의 가격차는 10배가량. 재료 값의 차이가 그렇게 크고 그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치찌개용 김치는 신씨가 직접 담근다. 젓갈을 경상도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것과는 다르게 한다든지, 간의 짜기를 찌개용에 맞게 조절한다든지 하는, 다년간 쌓아온 나름의 노하우가 들어간다. 그래야 "야 김치찌개, 시원하네, 맛 있네"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신씨는 김치 100포기의 일부가 저장된 김치냉장고를 열어보였다. "1년 숙성한 김치가 가장 맛있어요. 2년도 괜찮지만 3년까지 가면 김치찌개의 맛이 쓰지지요."

김치찌개와 칼국수를 결합시킨 이 집의 '얼큰한칼국수'도 맛있다. 김치와 짝을 이루는 게 돼지고기. 이집 돼지고기가 실상은 메인 메뉴로 유명하다. 항정살(1인 7천원)이라는 것인데 한 마리에 2~3인분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졸깃졸깃한 돼지 볼살(턱살)이다. 생오겹살 생삼겹살도 있고, 신씨가 하루 10번도 넘게 곳곳에 먹으러 다니면서 비법을 연마했다는 민물장어구이(1인 1만3천원)도 있다.

이집 밥도 집밥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압력밭솥에 7분 정도면 밥을 하니까 항상 밥을 갓 해서 내요." 잡채 전 계란말이 멸치무침 감자샐러드가 기본 5가지 반찬이고, 나물 2가지에 생선 구이 혹은 조림, 간장에 싸먹는 파래김이 반찬으로 나온다. 동부경찰서 뒤편 태광주차빌딩 골목. 김치찌개 1인분 6천원. 일요일은 쉰다. 051-442-3365.




김치 굵직하게 썰어 '부글부글'
■ 부산 대연3동 '부글부글 김치찌개'

김치에 대한 고집이 느껴진다. 부산 남구 대연3동 '부글부글김치찌개'. 간판부터 김치를 내세웠다. 김치찌개 김치찜 김치전, 김치 일색의 세 가지로 시작하고 끝내는 집이다. 전문점답게 건물의 한쪽에 '김치숙성 냉장고'라고 써붙인 이름표가 보인다.

주인 허영옥(50)씨는 "김치 담는 솜씨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 솜씨로 담은 김치를 1~2년 숙성시켜서 농익은 김치 맛을 선보이고 있다. 3년이 넘어가면 김치의 신맛이 너무 강한데 신맛 김치들은 '묵은 김치전'(3천원)이라는 메뉴로 만들어 내고 있다. 허씨는 "김치가 참 좋다"고 했다. "김치 드시면 소화도 잘 되고 살도 안 쪄요. 우리집에 일하러 온 뚱뚱한 아주머니들, 살 다 빠져서 갔어요."

이집 김치찌개의 특징은 '굵다'는 것이다. 김치가 포기째로 '굵게' 들어가고, 돼지고기도 손바닥만하게 '굵게' 들어 있다. 김치찌개가 나왔다. 아주머니가 뚝배기에 가위를 넣어 김치며 돼지고기를 싹둑싹둑 입 크기에 적당하게 잘라준다. 돼지고기 한 점, 오래 삶아 입 속에서 살살 녹는다. 맛이 익었다. 김치도 푹 고아져 맛이 좋다. "왜 김치와 돼지고기냐"고 물었다. "억센 김치와 돼지고기의 합(合)은 한국 사람의 입맛이 증명한 합이잖아요."

그러면서 주인 허씨는 "오래 끓이기도 하지만 김치찌개 육수를 별도로 만든다"고 했다.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서울과 전라도까지 전국 곳곳의 유명한 식당을 찾아 다니면서 먹어도 보고, 남의 집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배운 노하우를 어떻게 쉽사리 공개하겠느냐"고만 말했다. 김 계란 고추 파래 오이 깍두기 시금치 콩나물 오뎅 무침 등이 반찬도 구미를 끄는데 김치찌개 하나면 족할 정도다.

이집 김치찜(2만원, 2만5천원)을 좋아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부산에서 찜이라면 아구찜처럼 콩나물을 넣은 것이 일반적인데 그렇지는 않다. 김치와 돼지고기만을 푹 고은 묵은지 김치찜이다. '정말 구수하고 깊은 맛을 느끼게 한다'고 한 블로거는 이 집 김치찜을 평했다. 주차 가능. 남부경찰서 바로 뒤편에 있다. 김치찌개 1인분 6천원. 일요일은 쉰다. 051-622-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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