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중화요리 삼국지

입력 : 1970-01-01 09:00:00 수정 : 2009-01-11 12: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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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통일을 꿈꾸는 부산지역 중국집들의 군웅할거

부산의 자장면 집을 띄엄띄엄 훑었다. 중구, 동구, 해운대구의 중국집을 취재했다. 부산 중국집의 역사가 어느 정도 시야에 들어왔다. 크게 볼 때 중구는 역사를 자랑하고, 동구는 한 군데 모여서 나름의 활기를 잃지 않고 있으며, 해운대는 신시가지의 특성처럼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있었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ilbo.com 사진=강원태 기자 kang@


"정통 자장면은 여기에" - 중구

중구는 도시 부산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곳. 구시가지의 상징이다. 중구에 위치한 자장면 집의 역사도 그와 비슷하다. 1960년대 부산의 3대 반점이 '중구'에 있었다. 50년 역사의 저쪽에 있는 동화반점 보영반점 옥생관. 3대 반점의 명맥은 주인이 바뀌면서 유지되고 있다.

현재의 옥생관은 보수동 책방골목 맞은편에 있다. 이 집 안휘철 주방장의 중국 요리를 2년여 전에 먹어본 적이 있다. "야 참 색다르다"는 느낌이었다. 며칠간 연락을 하며 뜸을 들였으나 장기 휴가 중인 그를 결국 만나지는 못하고, 한 날 혼자 가서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켜 먹었다. "옛날 맛을 찾아 해운대에서도 자장면 탕수육 유니자장 삼선자장 삼선간자장 전가복을 먹으러 온다"고 바쁘게 배달을 왔다갔다 하는 젊은 주인이 말했다.

보영반점은 신보영반점을 거쳐 오늘날의 화국반점으로 이어졌다. 주인 왕석명(62)씨는 지금 출타중. 이집 주방장은 "문정수 부산시장 때는 시청 사람들이 일주일에 서너 번 우리집에서 회식을 했다"고 회고했다. 전성기에는 이 집에서 중국 사람들이 결혼식까지 올렸다. 주인 왕씨가 부산화교협회 고문이어서 지금도 중국영사관 사람들이 모임을 갖는 곳이다.

메뉴판의 85가지 요리를 훑고 있는데 주방장은 "보통 중국집은 100가지가 넘는 요리를 한다"고 했다. 그때가 오후 3시였는데 자장면 손님이 들어왔다.

동화반점은 보수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다. 키가 큰 주인 요여량씨는 "우리집 음식은 고추기름과 굴소스를 쓰지않는 구닥다리"라며 "그러나 옛날식 짬뽕과 탕수육을 찾는 손님들이 많다"고 했다. 연방 배달 주문이 들어왔다. 남천동 KBS부산방송 정문 앞에도 동화반점이 있다. 요씨의 친형이 보수동 동화반점을 물려주고 2000년 남천동으로 옮겨 문을 연 곳이다.

충무동 교차로에 신흥반점이 있다. 이런 집이 있었나 싶게 간판도 깔끔하다. 원숭희(69)씨에 이어 아들 원의국(42)씨가 2대째 하고 있는 중국집이다. 원의국씨는 "80%가 단골이다. 해운대 중앙동 곳곳에서 옛 맛을 찾아 손님들이 온다"고 했다. "잘 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니 대답이 딱 부러지지 않는다. 모든 음식을 잘한다는 뜻이다.

광복동의 태영장도 1대 유육구(79)씨를 2대째 이어서 하는 집이다. 오후 3시30분쯤, 젊은 주인 유요생(46)씨가 점심인지 저녁인지를 먹고 있다. 대청동 산다는 단골 정태환(73)씨는 간자장을 시켜놓고 "30년 이상 단골이 많다"며 "나도 그 중 하나"라고 했다. 음식은 옛날식으로 한다는데 "어떤 음식이 특징적이냐"는 물음에 역시 딱 부러지지 않는 답. 모든 음식 잘 한다는 말이렷다!

부산우체국 뒤편의 신북경, 회영루도 부산의 중앙동에 발길을 했던 이들이 한 번쯤은 들렀을 전통 있는 중국집이다. 신북경의 여주인은 "시청과 경찰청이 옮겨간 뒤 좀 썰렁하지만 옛 단골은 여전히 오고 있다"고 했다. 부평동 족발골목 입구의 개화도 오래되고 맛있는 중국집. 남포동 극장에서 영화를 본 뒤 이집에서 유니자장을 사 먹은 이들, 한둘이 아닐 것이다.


지역 이점 내세워 합종연횡 - 동구

동구의 중국집은 상해거리에 많다. 15곳가량을 헤아린다. 중구의 중국집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면 동구의 중국집들은 한 곳에 모여 있다. 지역적 집중을 통해 중국집들이 나름의 활기를 띠고 있다는 게 특징. 이곳에서 2대째 대를 이어 하는 곳은 두 곳이다. 가장 오래된 곳은 장춘향이다. 오향장육 오향족발 물만두를 특기로 내세우고 있지만 굳이 그것에 그치는 게 아니다. 2대 사장 유류훈(46)씨는 "수타는 감당할 수 없어 기계로 면을 뽑지만, 음식은 절대 미리 만들지 않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볶아 싱싱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상해문 바로 옆에 위치한 홍성방도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곳. 오향장육과 만두 전문점이다. "물만두가 특히 잘 나간다"고 이집 종업원은 말했다. 상해거리 안쪽에도 요리 중심으로 하는 또 다른 홍성방이 있다. 앞쪽 홍성방은 처남, 안쪽 홍성방은 매부가 운영하고 있다.

앞쪽 홍성방은 100가지 넘는 메뉴를 뽐내지만 특이하게 자장면을 하지 않는다. 일품향도 자장면 없는 특이한 중국집이다. 만두 전문이지만 게살 요리도 유명하다. "주인이 주방에 들어가 요리의 맛이 일정하다"고 아는 입맛들이 평하는 집. 장춘방, 장성향 그리고, 부산화교중고교 정문 부근에 사해방 원향재 신발원 금원보 신동양 상해탄 등이 있다. 신발원은 중국 빵집이다. '장춘방'에 점심 때 혼자 가서 "뭐가 괜찮냐"고 물었더니 광동면을 권했다. 6천원짜리 광동면은 그런 대로 괜찮았다. 하기야 맛 없는 집이 얼마나 많은가.

중남해는 손님들이 은근히 들끓는 곳. 부산의 대학 조리과 교수들이 "자장면의 개념을 넘어선 중국집"이라 평하는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방에서 직접 음식을 만드는 주인 의건주(52)씨는 부산의 유명 호텔 주방장 출신이다. 2004년 10월에 문을 열었는데 "맛이 예사롭지 않다"는 게 중평이다. 의씨는 부산과 서울의 중국집 판도를 훤히 꿰고 있었다. 맛은 '한 그릇의 온전한 세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집에서 삼선짬뽕을 먹었다. 버섯 오징어 야채 새우 모든 재료들이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국물의 맛이 혀의 앞, 중간, 뒤쪽, 목구멍으로 갈수록 깊어갔다. 특이하게 복어 살점이 들어가 국물 맛을 시원하게 하고 있었다.


"새 시대는 우리가 평정" - 해운대구

해운대구의 중국집 판도는 좀 달랐다. 막 뛰고 있었다. 중식의 퓨전 바람도 불면서 부침하고 있었다. 새로운 맛의 창조라는 데 많이 매여 있었다. 그것이 신도시의 분위기다. 해운대는 크게 퓨전 스타일의 중국집과, 전통을 지키면서 맛을 변용시키는 곳, 두 곳으로 양분할 수 있다. 마린시티의 꽁시꽁시와 칸지고고는 퓨전 스타일의 중국집. 대학 조리과 출신 젊은 조리사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

중동의 밍주도 퓨전 중국집을 내세우고 있다. 지하철 장산역 인근의 랑팡도 신개념의 중국집. 크게 하다가 업장을 대폭 줄였다. 많은 해외 유학파들이 귀국함에 따라 더불어 생기기 시작한 것이 이른바 서울의 퓨전이며 퓨전의 원류인데 과연 이들 퓨전이 부산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목하 실험 중이다. "아주 새롭다"는 반응과 "맛이 너무 튄다"는 반응이 뒤섞여 있다.

전통을 지키는 곳은 아미산과 더불어 파라다이스호텔부산의 남풍, 해운대글로리콘도의 중국관, 해운대그랜드호텔의 만리성이다. 남풍은 고급 요리 '불도장' 전문점. 또 해운대구청 인근에 사천요리 전문을 내세운 오래된 신흥관이 있고, 신시가지 안에는 유명 호텔 출신이 오너 셰프로서 운영하는 차이홍이 있다.

아미산에 점심 때 세 명이 갔다. 잡채밥 중국냉면 삼선짬뽕밥을 시켜 먹었는데 모두들 "성공했다"며 즐거워했다. 3인 음식값은 3만3천원으로 수준(?)이 있었으며, 전망과 분위기는 좋았다.

이 집의 주인 양소평(54)씨도 유명 호텔 주방장 출신. 맛은 보장돼 있는 셈이다. 그는 "중식의 경우, 부산은 전반적으로 서울과 비교할 때 수준 차이가 나며, 심지어 대구에 견주어도 좀 뒤진다"고 했다. 부산에 회문화가 발달돼 있기 때문이란다.

양씨는 "중식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자장면과 탕수육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10시 부산 시내 40여 명의 중국집 주인 및 주방장들이 모여 해운대 차이홍에서 중식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공부, 실습을 하고 있단다. 그런 움직임에 부산 중식의 미래가 있는 듯 하다.


※ 1, 3주 일요일에 쉬는 곳도 있었고, 오후 2시30분 이후에 잠시 쉬는 중국집도 더러 있었다. 미리 전화를 걸어 휴일은 아닌지, 주차장 사정은 어떠한지를 알아보고 가는 게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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