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막걸리 한잔에 빈대떡 어때요?

입력 : 1970-01-01 09:00:00 수정 : 2009-01-11 12: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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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떡하니까 '빈대떡 신사' 노래부터 떠오르는 걸 보니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이 노래를 모르는 이들도 많다. 혹 안다고 해도 이렇게 진부하게 글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비가 오면 저절로 빈대떡과 막걸리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부산의 빈대떡집을 쭉 돌아보았다. 그중 가장 맛난 빈대떡집 3곳은 모두 부산으로 피란왔던 북한 출신들이 대를 이어 지금껏 해 오고 있었다. 맛은 그렇게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골 보며 힘든 세상살이 실감"
아무 때나 와! - 평양집


부산 동구 범일동 문화병원과 현대백화점 뒤편 골목에 있는 '평양집'은 지난 1951년 부산진시장 옆에서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50년도 훌쩍 넘었다.

얼마만큼 맛있느냐면 20여년 전 식당을 그만두었다가 단골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식당을 열었을 정도다. 피란왔던 지종아 할머니의 뒤를 이어 며느리 홍보옥(82)씨, 다시 며느리 이숙희씨에게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곡절이 생겼다. 3대 며느리 이씨가 디스크 질환에 걸려 할 수 없이 홍씨가 다시 현업에 복귀한 것이다. 홍씨에게 "단골이 많으시죠"라고 물었더니 "3분의 2가량은 돌아가셨다"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반세기 넘는 세월은 손님도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그 아들이 학부모가 되게 만들었다. '평양집'이 있는 골목도 주택가에서 식당가로 상전벽해만큼 변했다. "안 바쁠 때 가겠다"고 전화를 했더니, 홍씨는 아무 때나 오라고 한다. 이전에는 비가 오면 앉을 자리가 없었는데 요즘엔 경기가 없어서 그런지 손님들의 발길이 예전같지 않단다.

전통 있는 빈대떡집과 그렇지 않은 집의 차이는 굽는 기름에 있다. 빈대떡에는 돼지기름, 그것도 암퇘지 기름을 써야 한다. 홍씨는 빈대떡을 부치며 요즘 세상살이가 참 힘들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홍씨가 단골들한테 왜 자주 안 오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어려워서 어찌 살겠소?"라는 하소연을 몇 번이나 들었다고 한다. '평양집' 빈대떡을 먹어 보면 맛있다. 누구는 피자보다 낫다고 한다. 빈대떡 마니아라면 김칫국과 반찬이 같이 나오는 빈대떡 백반에도 도전해 볼 만하다. 바삭한 빈대떡 3장에 5천원이다. 노릇노릇하게 제대로 구운 빈대떡이 입안에서 바삭거린다. 051-646-2381.

"노인서 이제 젊은이들 줄이어"
육수와의 조화 - 사리원 냉면


부산 서면 영광도서 건너편 식당 골목에는 빈대떡도 맛있고 냉면도 맛있는 '사리원 냉면' 집이 있다. '사리원 냉면'은 황해도 사리원 출신의 이근성 할머니에게 맛을 전수받은 아들 부부인 변희련(68) 조영순(65)씨가 2대째. 50년간 이어가는 가업이다. 이 곳에서는 음식 궁합이 잘 맞는 빈대떡과 냉면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끝나갈 무렵 '사리원 냉면'을 찾았을 때 이들 부부는 만두를 빚고 있었다. 만두와 빈대떡은 북한에서 명절 때의 필수 음식.

변씨는 "기계처럼 정확하게는 안 되어도 맛에 변화가 생기면 안 된다. 체인점으로 하는 빈대떡집은 맛이 개량되었다"고 진단한다. 변씨에게 빈대떡 만드는 방법을 들었다. 녹두에다 쌀을 조금 넣고, 김치 다지고 양파 넣고, 파 썰어 넣고, 양념으로 후춧가루를 넣어서 만든다.

옛날에는 맷돌로 녹두를 다 갈아야 했는데 지금은 모터로 돌리는 맷돌이 나와서 편리하단다. 세월이 바뀌고 세상이 달라지면 이렇게 좋은 점도 많다. 변씨는 "예전에 우리 집은 노인들이 많아 경로당 식당 같았거든,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인터넷을 보고 찾아왔다는 젊은이들이 많다. 세대교체가 참 기쁘다"고 말한다. 변씨에게 인터넷은 하느님만큼 고맙다. 빈대떡 맛에 반해 수십 장씩 사 가는 사람들도 있다.

1장에 2천원 하는 빈대떡이 드디어 나왔다. 빈대떡만 먹으러 와도 진하고 맛있는 냉면 육수를 그냥 내줘서 더 좋다. 변씨는 "며느리가 이전에 한 달간 가게 일을 도와주다가 힘들다고 못하겠다고 한다. 내 꿈은 똑똑하고 예쁜 며느리에게 가게를 넘겨주는 것이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이 맛이 변치않고 이어졌으면 좋겠다. 051-808-8174.

"내 인생 빈대떡에 다 걸어"
줄을 서시오 - 범일빈대떡


부산 동구 범일동 한성기린아파트 맞은편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집이 '범일빈대떡' 집이다. '범일빈대떡'은 여기서 20년, 국제시장에 있던 시절 10년을 합하면 올해로 30년째이다. 박인욱, 김종애(59)씨 부부가 운영하는데 김씨의 어머니가 북한 출신이란다. 여기서도 기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불판 위에 돼지기름과 함께 돼지고기 덩어리들이 수북하게 놓여 있는 게 특이하다. 사실 이러면 기름이 튀어서 불편한데, 그래도 계속 써 오던 방식이란다. 가끔 집에 가져가서 굽겠다고 반죽만 달라는 손님들도 있다. 집에서 구우면 빈대떡이 맛이 없다. 굽는 과정과 기름 차이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반죽으로는 잘 안 판다.

맛을 보니 땡초맛이 난다. 땡초는 빈대떡이 느끼하지 말라고 넣는 것이다. 5장에 5천원, 20년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파전은 20년 만에 1천원을 올려 7천원이다.

김씨가 빈대떡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 "빈대떡은 가난할 '빈', 대접할 '대'이다. 옛날에 가난한 선비에게 대접했던 음식이다." 어째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김씨는 "30년을 하루도 쉬지 않고 해 오다 보니 내 인생이 빈대떡에 다 걸려 있다. 장사도 돈을 벌기보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면 잘 되는 것 같다. 그러면 돈이 도망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 영업한다. 051-646-0081.

부산에서는 이 집들 외에도 충무동로터리에서 송도 아랫길 쪽으로 가다 보면 '찌짐'골목에 빈대떡과 파전을 저렴하게 파는 집 7∼8곳을 만날 수 있다. 빈대떡은 둘이 가서 아무리 먹어도 2만원을 넘기기가 어려운 서민들의 음식이다. '빈대떡 신사' 노래와는 달리 돈이 없어 집에 가서 구워 먹는 음식은 아니다.

박종호기자 nleader@ 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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