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쌀쌀한 가을밤 오뎅 생각나네 …'…'

입력 : 1970-01-01 09:00:00 수정 : 2009-01-11 14:15:22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명성'의 오뎅탕은 풍부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날씨가 선선해질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한낮으로는 여름처럼 더워서 아직까지 반팔 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꽤 보인다. 이번주 주제로 '오뎅'을 정한 터라 마음이 무겁다. 사시사철 오뎅을 팔지만 오뎅은 역시 추워서 입김을 호호하고 불며 먹어야 제맛이다.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라고 강변해보지만, 천기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불찰이다. 오뎅은 먹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서민들이 많고, 서민들의 인생살이 곡절도 많다. 여름이 아무리 길어도 겨울은 온다. 그래서 오뎅이다.

·40년 넘는 정성으로 빚은 '명성'

오뎅탕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명성'이다. 명성은 지난 1968년에 문을 열었으니 40년 된 맛집이다. 항상 푸근한 명성의 대표 정선옥(65)씨는 "우리집 아저씨가 살아계실 때는 고급 일식집으로 부산에서 이름을 날렸다. 당시에는 동구에 식당이 많지않아 '장(長)'자 붙은 사람 치고 안 다녀간 사람이 없다"고 그 명성을 전했다. 지금은 일식집이라기보다는 오뎅탕, 아구·대구탕의 맛이 좋은 편한 식당으로 변했다.

명성의 오뎅탕은 식사 때는 오뎅 백반, 술 한잔 할 때는 오뎅탕 안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주방을 살짝 들여다 보니 오뎅, 곤약, 스지가 칸칸이 들어 있다. 정씨는 싱싱한 낙지를 오뎅 국물에다 퐁당 빠뜨린다. 금방 낙지의 살신성인으로 맛이 더 진해진 오뎅탕 한 그릇이 식탁에 올랐다. 노란색의 오뎅과 하얀색의 어묵, 초록색의 은행과 다시마가 어울려 색깔이 참 곱다. 부산에서 가장 맛있는 오뎅탕을 만드는 비결을 물었다.

오뎅 국물은 소뼈를 넣고 고은 뒤 해물을 많이 넣어야 시원한 맛이 난다. 정씨는 "오뎅탕에는 15가지의 재료가 들어가는데 우리집만큼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하는 곳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뎅탕은 참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음식이다. "한 번은 바쁜 일이 있어서 며칠 신경을 쓰지못했더니 손님이 나를 붙잡고 애원을 하더군요. 손님은 얼마든지 데려다 줄 테니 국물 맛을 그전처럼 해달라고…." 그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오뎅 국물은 정씨가 직접 만든다. 오뎅백반이 6천원, 회와 오뎅탕이 함께 나오는 세트메뉴(2∼3인용)가 3만5천원.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은행에서 비스듬하게 맞은편에 있다. 영업시간은 낮 12시∼오후 10시. 첫째, 셋째 일요일에는 쉰다. 051-468-8089.

·오뎅하면 '오뎅집'이지…

후미진 곳에서 간판도 없이 단출하게 오뎅만 파는데도 전국에서 미식가들이 찾아오는 집이 있다. "서울에서 왔는데 찾기가 쉽지않네요"라고 하던 사람도 오뎅을 먹어보곤 고개를 끄덕인다. 하얄리아부대 담벼락을 마주보고 있는 '오뎅집'이다.

대전이 고향인 박영자(69)씨는 1960년대에 조선방직에서 일하다 결혼한 뒤 이 곳에서 39년 전 오뎅집을 열었다. 처음에는 하얄리아 부대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이 단골. 양색시와, 그들의 손을 잡고 따라온 미군들도 오뎅을 먹으러 왔다. 같은 음식을 먹었지만 먹는 이유는 달랐다. 우리는 배가 고파서 오뎅을 먹었고 미군들은 배가 나오면 진급하지 못한다며 오뎅을 즐겨먹었다. 음식에는 역사가 있다. 오뎅을 종류별로 따로 분류해 넣는 틀도 '오뎅집'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이게 지금은 표준이 되었다. 간장 그릇을 손님마다 따로 준 것도 박씨가 시작했다. "70년대에는 필요없다고 손사래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치즈 오뎅, 소시지 오뎅, 원조 오뎅, 야채 오뎅, 땡초 오뎅, 만두 오뎅, 떡, 곤약, 스지 등 종류도 많다. 손님들 중에는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맛있는 오뎅을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아무 것도 안쓰는 게 비결이에요. 오뎅 안에는 소금, 설탕이 다 들어있어요. 그래도 성이 안 찬다는 사람에게는 좋은 멸치를 쓰고, 좋은 오뎅을 쓰라고 가르쳐줍니다." 박씨가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는 "이것 저것 안 되면 오뎅장사나 해볼까"하는 말이란다. 스지가 1천원, 오뎅이 500원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7시까지. 일요일 공휴일은 휴무. 부산 부산진구 범전동 성지초등학교 길 건너편의 좁은 골목길. 017-615-6445, 010-3905-6445.

·오뎅계의 젊은 피 '미소오뎅'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오뎅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집이 있다. 대연동의 '미소오뎅'은 지난 4월 1일에 개업했으니 이제 7개월째에 접어들었다. 맛이 빨리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저녁 무렵 청주 한 잔이 생각나 미소오뎅에 들러봤다. 이 집 양재원(44) 대표는 청주를 차게 마시겠느냐, 따뜻하게 마시겠느냐 물어왔다. 주인장 선택에 맡기겠다니 차게 먹으라고 권한다. 청주를 데워 먹었던 것은 과거에 술의 질이 낮아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였고, 또 돈이 없어 빨리 취하기 위해서였다고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자리에 앉아 자그마한 가게를 둘러보았다. 버섯오뎅, 오징어 오뎅, 해삼 오뎅…. 생전 들어보지 못한 오뎅들이 줄줄이 있다. 가게가 아담해 먼저 온 손님들과 이야기도 섞이고 잔도 섞이고 말았다. 이 집을 왜 좋아하는지 물어보았다. 한 단골 손님은 "좋아하는 스지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일주일에 3번씩 온다"고 이야기했다. 국물을 내는 데 이용하는 스지를 따로 파는 집은 흔치 않다. 양씨는 "스지는 구하기도 힘들고 장사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 힘줄 같은 스지가 부드럽게 씹혔다. 스지의 효력을 아시는지? 스지를 먹고 비올 때마다 아프던 무릎이 나았다는 전설도 있다.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에 근무했다는 양씨는 오뎅집 사장으로도 썩 잘 어울렸다. 오뎅 맛을 내기 위해 가게 안에 가마솥을 설치하는 정성을 기울였다. 스지가 1천200원, 오뎅이 각 500원이다. 3천원하는 비빔국수도 먹어보라고 권하는 게 맛이 괜찮다. 지하철2호선 대연역 5번 출구로 나와 쌍둥이돼지국밥 맞은편. 051-902-2710.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ilbo.com


# 오뎅과 어묵 같을까 다를까?

어묵은 생선의 살을 뼈째 으깨어 소금, 칡가루, 조미료 등을 넣고 나무 판에 올려 쪄서 익힌 일본 음식을 말한다. 어묵은 결국 오뎅이다. 사전에서 오뎅을 찾으면 일본어라고 밝혀놓고, '꼬치', '꼬치안주'로 순화시켜 쓰라고 한다. 오뎅과 오뎅탕도 차이가 있다.
일본어 '오뎅(おでん)'은 탕 자체를 부르는 말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오뎅'은 탕에 쓰이는 낱개의 어묵을 부르는 말로, 탕 전체는 '오뎅탕'으로 부른다.
오뎅집에 등장하는 '스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스지는 소 힘줄(쇠심)이다. '소 힘줄처럼 질기다'고 할 때의 소 힘줄이다. 소 힘줄에는 다량의 젤라틴이 들어 있어 천연 관절약이라고도 불린다.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