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굽이치는 낙동강처럼 살아있는 맛이 있네

입력 : 1970-01-01 09:00:00 수정 : 2009-01-11 14: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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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북구 맛집

'덕천고가'의 홍명숙 지배인이 이 집의 명물 '장국'을 설명하고 있다. 팔 밑에 놓인 음식이 이 집의 '해바라기'다.

구포 토박이 백이성 낙동문화원 원장의 소개로 부산 북구의 맛집을 찾아나섰다. 그중에서도 먼저 구포시장, 구포역, 북구청 일대 3곳의 맛집을 둘러봤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3, 5일 장인 구포장이 섰다. 시장은 활기로 넘쳤으며 구포역 앞, 북구청 앞의 꽤 괜찮은 맛집들이 나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바다와 만나게 될 유장한 낙동강이 구포 둑 너머에서 흐르고 있었다.


구포시장 일대

△덕천고가(구포1동)="드물게 음식을 제대로 하는 집"이라는 소개를 받았다. 불경기의 오후 1시, 카운터에서는 정신없이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다. 이 집 음식은 시간이 만든다. 2년간 간수를 빼는 소금, 된장과 장을 숙성시키고 있는 장독대…. 또 돼지사골도 24시간 가마솥에 곤다. 그러면 뼈가 물러질 정도로 골수가 다 빠져나와 뻑뻑한 곰탕이 된다. 그것에 천일염으로 간하고 후추와 숭숭 썬 대파만 곁들여 먹으면 '진땡(眞湯)'(5천원)이고, 토장(간장을 빼지 않은 된장)을 풀어 얼큰하게 먹으면 그 유명한 '장국밥'(5천원)이다.

19세기 말, 낙동강 하구 물류의 집산지인 구포의 만석꾼 객주상인 덕천 김기한의 집에서 끓이던 장국밥을 재현한 것이다. 영남 제일이라는 호평대로 이 집의 돼지고기 장국밥은 기분좋게 넘어간다. 갈색의 국밥 속에는 아주 잘 물러진 우거지가 듬뿍했고, 돼지 살점이 많이 숨어 있었다. 들깨가루와 쌀가루를 풀어 근기가 있었으며, 향긋한 향이 입속에 머금어졌다. 위대한 우거지국과 돼지국밥의 결합으로 약 한 그릇 먹는 듯 든든했다.

'해바라기'(1만원)라는 메뉴가 있었다. 달궈진 쇠판 위에 놓인 빈대떡 둘레에 순대를 둥글게 놓은 모양이 꼭 해바라기처럼 생겼다. 빈대떡의 맛이 단연코 기가 찼다. 순대전골·수육 순대 섞어·감자탕(각 1만5천, 2만2천원), 선짓국(5천원), 쇠고기국밥(5천원) 등의 다양한 메뉴가 있다. 덕천교차로에서 신모라 방향 100m 전방 왼편, 연중무휴 24시간 영업, 주차장 구비. 051-337-3939.

△삼랑진횟집(구포1동)=구포 하면 낙동강이고, 낙동강은 민물이다. 이 집은 민물고기 전문집이다. 30년 장사를 했다는 여주인 고혜석(55)씨는 "민물고기를 먹는 이들은 바닷고기가 싱겁다고 한다"고 했다. 민물고기는 특유의 들큰한 향이 매력적인데 그것은 흙의 냄새다. 잉어·붕어 매운탕(각 2만, 3만, 6만원까지)이 아주 이름이 났다. 메기매운탕도 빠질 수 없다. "시아버지 때부터 해온 오랜 내력이 우리 집 맛의 비결"이라고 주인은 말했다. 된장도 직집 담근 된장이다. 잉어·붕어 찜(각 3만~6만원)도, 또 각종 민물회도 한다고 한다. 고씨는 "지금 찬바람이 나는 철에 잉어 향어회가 아주 맛이 들었고, 붕어회는 3월까지 구수하다"고 했다. 향어·잉어회는 1.5kg(1만8천원) 정도 돼야 성인 2명이 먹을 수 있단다.

이 골목은 민물고기 전문 골목이다. 가게 바로 옆에 장날의 민물고기 좌판이 벌어졌고, 골목 어귀에도 민물 좌판이 펼쳐졌다. 오전 10시~오후 10시 영업. 대리천공영주차장 맞은편 구포시장 1번 게이트에 들어서 350m쯤에 있는 구포신협 맞은편 골목 50m 전방 왼편. 051-334-1729.

△이가네 구포국수(구포1동)=면발이 예사롭지 않다. 온국수(3천원)를 먹었는데 뜨거운 육수 속에서도 면이 퍼지지 않았다. 3일간 자연의 햇빛에 건조한 면발이기 때문이다. 옛날 구포국수 제조법이다. 이원화(46) 사장의 선친은 80년까지 30여년간 구포국수 공장을 했다. 이 사장도 그때 직접 반죽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당시의 레시피로 김해 주촌의 한 공장에서 주문생산 방식으로 면을 뽑는다고 했다. 가업의 자부심, 무형 자산에 대한 애착이 면발에 올올이 깃들어 있다.

육수가 짙었다. 남해산 멸치에 15가지 각종 국산 재료가 들어간 육수다. '남기지 말고 마음껏 드시라'는 문구에 육수에 들인 정성의 갈피가 배어 있다. 육수에 매운고추를 적당하게 풀어 한 컵 들이켜니 속이 시원하다. 온국수에는 갖은 고명이 들었는데 이 집의 특징은 시금치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온국수의 뜨거운 육수에 속이 데워진다. 땀도 솟는다. 매운고추를 곁들여 먹는 부산 국수의 맛! 비빔국수(3천500원), 그리고 이름도 재미있는 '아싸가오리 회비빔국수'(4천500원)도 있다. 실내에 주인의 구포 사랑을 볼 수 있는 구포에 대한 패널이 전시돼 있다. 오전 9시~오후 8시 영업. 구포시장 1번 게이트 들어서 30m 전방 신발가게가 있는 첫 왼편 골목 안쪽을 보면 보인다. 051-333-9892.

구포역앞

△대웅초밥(구포2동)=구포역 앞의 유명한 일식집이다. 20여년 역사를 헤아리며 부산 일식계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김종복(44) 사장은 부산조리사협회 이사까지 지냈다. 경력 12년이라는 최영환(33) 실장이 빚어내는 초밥이 향긋했다. 광어 돔 연어 학공치 장어 문어 새우 패주를 얹은 초밥이 맛깔을 이루어냈다. 밥 위에 얹힌 초밥의 횟감이 휘영청 늘어져 식감을 고혹적으로 자극했다. 제대로 된 초밥이다. 장어초밥은 낙동강의 풍부한 수량이 느껴지는 듯 한 입 가득 넘쳐났고, 연어초밥은 살짝 불에 그을린 연어의 향이 독특하게 입속에서 달무리지듯 번졌다. 제철을 맞고 있는 넙치(광어)초밥은 달콤한 속삭임처럼 입속에서 녹았다. 그 속삭임에 끼어든 고추냉이의 향이 멀리 퍼졌다. 초밥 한 점이 허공을 가르는 고수들의 일합처럼 빛가루를 튕겼다. 정성이었다.

최 실장은 "찜 요리가 특징이 있다"고 소개했다. 새우 대파 팽이버섯 청경채와 가쓰오부시를 넣고 맛을 우려내는데 거기에 다시 게를 넣고 맛을 더한 것이다. 그것을 보통의 경우, 사기그릇에 담지만 여기서는 대나무 통에 쪄서 낸다. 그러니까 대나무의 향을 하나 더 가미한 것이다. 음식이 거기에 이르렀다.

4종류 코스 요리(3만5천~7만5천원) 초밥류(8천~3만원) 점심특선(2만원) 정식요리(1만6천~4만원) 등. 구포역을 나와 사상 쪽 30m쯤에 있는 우리은행구포지점 옆에 위치. 주차장 구비. 오전 9시30분~오후 10시30분, 오후 3~5시 휴식. 051-332-1446.

△금용(구포2동)=중국 산둥식 만두 전문점으로 화교가 운영하는 집이다.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곳. 이 집의 만두는 구포역에서 기차를 탄 많은 이들이 먹어봤던 만두다. 오후 3시께 기차를 기다리는 한 떼의 손님들이 몰려 들어온다.

찐만두(4천원)의 피가 쫄깃쫄깃했으며, 만두 10개의 문양이 보기좋게 일정했다. 이전에 부산 동구청 앞에서 중국집 '개원'을 했던 유국강(51)씨가 알은 척을 했다. "동구청이 공사를 시작하면서 '개원'의 장사가 잘 안 돼 접어버리고 먼 친척 누님이 운영하는 이 '금용'의 일을 맡아서 하게 됐어요." 그의 음식 솜씨는 동구 일대에서 좀 알아주었던 터다.

그날의 음식은 그날 다 소화한다, 재고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이 집의 철칙. 고로 만두의 괜찮은 맛은 싱싱함에서 오는 것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그날의 음식을 준비하는데 오전 11시~오후 2시 본격적으로 만두를 빚는다. 돼지고기를 많이 넣고, 부추 배추 파 생강을 많이 넣은 중국식 만두란다. 채소들의 향에 감싸인 돼지고기의 향이 짙고 고소하게 번진다. 맛이 쫀득쫀득 여간하지 않다. 만두가 찐만두 물만두(각 4천원) 군만두(4천500원) 만두국밥(5천원)으로 다양하다. 잡채(1만3천원), 탕수육 오향족발 오향장육(각 1만5천원). 구포역을 나와 왼쪽 구포우체국 앞. 오전 9시~오후 9시30분 영업. 051-332-1261.

북구청앞

△장수장꼬리곰탕(구포2동)=25년 전통을 자랑하는 꼬리곰탕 전문집이다. 곰탕의 짝은 김치다. "깍두기 총각김치 겉절이김치 물김치를 담는 데 많은 정성을 들인다"고 김행연(54) 사장은 말했다. 2년씩 삭힌 젓국의 맑은 국으로 김치를 담근단다. 옥상에 젓갈 장독이 10여개 있었다. 일주일에 4일은 김치를 담근다고 할 정도로 김치에 정성을 들인다.

꼬리곰탕을 먹는 법이 있다. 부글부글 끓는 탕에 계란을 하나 깨어 넣고, 정구지무침을 가득 넣어 정구지의 숨을 죽인다. 그런 다음 물김치 짝을 하나 펼치고 그 위에 소스 간장에 찍은 꼬리곰탕 살점과 정구지를 올려 돌돌 말아서 아삭아삭 씹어 먹는 것이다.

꼬리곰탕에 살점과 물렁뼈가 많이 들어 있다. 꼬리는 둥글게 생긴 놈도 있고 길쭉하게 생긴 것도 있다. 꼬리곰탕이 뚝배기에 부글부글 끓으니 여름에는 이열치열의 손님이, 겨울에는 따뜻한 것을 찾는 손님이, 일년 사철 많이 온다고 한다. 김 사장은 "비오는 날, 곰탕은 진짜 맛 있다"고 추임새를 붙인다. 외국인들도 많이 온단다. 꼬리곰탕(1만4천원) 꼬리수육(3만5천원)은 호주산, 모듬수육(3만원)은 국내산 육우다. 수영직영점(051-751-7096)도 있다. 북구청을 나서 왼쪽 모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m쯤 내려가면 오른편에 있다, 부산축산농협 구포지점 옆. 오전 10시30분~오후 9시 영업, 일요일 휴무. 051-303-7096.

△곰보식당(사상구 삼락동)=북구와 사상구의 경계에 있다. 누나와 남동생이 30년 장사를 하고 있는 불고기 전문집이다. 고기 질이 좋다. 이 일대는 이른바 구포도살장, 즉 구포축산물도매시장이다. 고기가 많이 나는 곳의 고깃집이니까 고기가 무엇보다 싱싱하다. 그래서 맛이 남달라 불경기가 없단다. 주인 송호대(50)씨는 "신문에 내지 않아도 된다"며 표정이 시금털털하다. 등골(1만9천원) 횟간(1만2천, 1만7천원) 육회(2만, 2만7천원)는 드러내놓고 우리집 고기 싱싱하다고 자랑하는 메뉴 같았다. 소고기로 갈빗살 안창살 등심 안거미(각 1만9천원, 1인분 140g)가 있는데 눈으로만 맛본 갈빗살의 마블링이 제법 좋았다. 안심찌개(1만4천원) 등도 있었다. 식당 옆에, 이 집에서 운영하는 곰보식육점이 붙어 있었다. 이른바 식육식당인 셈이다. 북구청을 나서 오른쪽, 산업도로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아침에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선지정식(5천원)을 먹으러 많이 온단다. 오전 7시~오후 10시 영업. 051-304-7733.

글·사진=최학림 기자 theos@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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