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중국집 '차이홍'의 후지강(57) 대표는 "짬뽕은 하나의 예술"이라고 했다. 재료의 맛이 철저하게 우러나오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재료들은 타기 직전에 가장 원숙한 맛을 낸다. 그것은 쇠고기가 부패하기 직전에 가장 좋은 맛을 내는 이치와 흡사하다. 그 순간은 찰나다. 그 찰나를 어김없이 포착해야 한다. 그 찰나들에 약간의 육수를 더하면서 몇 번을 졸여 이런저런 재료의 맛이 농익도록 하는 것이다. 그 농익은 그윽한 맛을 미식가들은 '불의 향기'라고 말한다. 짬뽕은 생생한 '불의 향기'를 먹는 것이다. 그것이 짬뽕 맛의 비밀이다. '황신혜밴드'의 '짬뽕'이란 노래가 있었다. '그대여 그대여 비가 내려 외로운 날에 그대여 짬뽕을 먹자. (중략) 바람 불어 외로운 날에 우리 함께 짬뽕을 먹자. (중략) 얼큰한 국물은 우하하하 우하하하….' 비가 오는 날, 바람 부는 날과 얼큰한 짬뽕이 어떻게 잘 어울리는 것일까? 싱숭생숭한 이러저런 감정선을 얼큰한 국물이 일거에 정리해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거기에 짬뽕의 묘한 비밀이 있다.
· 짬뽕은 어디서 왔나?
짬뽕의 유래는 한·중·일에 다 걸쳐 있다. 역시 짬뽕답다.
일본 나가사키 유래설이 있다. 나가사키는 부산과 같은 개항장이었다. 1899년(추정) 나가사키에 와 있던 사카이로(四海樓)의 요리사 진헤이준이 식당들에서 버린 닭·돼지뼈를 우려낸 육수와 쉽게 구할 수 있는 푸성귀로 만든 것이 짬뽕의 원조라고 한다. 당시 부두 노역을 하던 중국인들이 "아침 먹었느냐"는 뜻의 인사로 '샤뽕'이라고 했는데 그 국수에 '샤뽕'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다는 것이다.
한국 인천 유래설이 있다. 인천, 제물포 개항장에 중국 사람들이 들어와 그때그때 쉽게 구할 수 있는 야채와 해물을 마구 섞어 만들었다는 뜻으로 짬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 그런 와중에 부산을 사이에 두고 각국 개항장을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오늘날 한국의 짬뽕이 정착돼 왔을 거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원래 짬뽕은 빨간 국물이 아니었는데 20여년 전부터 한국사람 입맛에 맞춰 뻘겋게 변했다고 한다.
부산에는 온갖 짬뽕들이 다 있었다. 짬뽕의 맛을 내는 한 축이 해물이다. 부산에는 온갖 해물들이 다 있기에 그만큼 다양한 짬뽕이 있는 것이다.
· 소문난 매콤 얼큰 짬뽕
가히 소문대로 였다. 복성반점(부산 사하구 하단1동)의 짬뽕은 화끈하고 시원했다. 권태늠(57) 주인 아주머니는 "옛날에는 이 일대가 '뻘 구디'였다"고 했다. 그 시절부터 짬뽕을 했으니 40년에 가깝다. 직접 요리를 하는 김건영(60) 사장은 "우리집 음식은 짬뽕으로 시작해서 짬뽕으로 끝난다"고 했다. 대표 메뉴가 짬뽕이다. 김씨는 "매일 자갈치에서 가져오는 해물을 아낌없이 넣는다"고 했다. 조개 관자살, 대합, 새우 등등. 특징은 오징어 대신 한치를 넣는다는 것이다. 오징어는 잘못 쓰면 질기기 때문이다. 흔히 짬뽕 국물로 쓰는 '닭육수'를 쓰지 않는다. 그만큼 해물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국물이 시원하다는 자신감이다. 짬뽕 한 그릇에 4천원, 그저 그만이다.
이 집 짬뽕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말린 매운 홍고추를 넣는다는 것이다. 그 매운 맛이 뻘건 국물 속에 깃들었는데 이게 자꾸 숟가락이 나갈 정도로 중독성이 꽤 강했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고들 하지만 이 짬뽕 앞에서 그 말은 시답잖고 소용없었다. '아 시원하다~.'
노동의 양으로 보건대 이 집 음식은 대단하다. 김 사장은 "하루 15~16시간을 서서 일하면서 만드는 음식"이라고 했다. 오전에만도 5~10시 재료를 다듬고 녹초가 돼 1시간 휴식을 취할 정도란다. 잡채밥 탕수육 유산슬 양장피 자장면 등도 소문이 났다. 식당이 자그마하다. 하단오거리에서 1㎞쯤 신평 방향으로 사하초등학교를 지나 가면 큰길 오른쪽, 사하대진아파트 입구 근처에 있다. 오전 11시~오후 9시 영업. 051-202-5254.
· 생선이 들어간 짬뽕
부산롯데호텔의 중식당 '도림'의 짬뽕도 유명하다. "대구에서도 먹으러 온다"는 짬뽕이다. 짬뽕에 넙적하게 썬 다금바리가 들어가 있었다. 짬뽕 속에서 처음 보는 이색 종목(?)이다. 그 살점이 오동통 살아 있었다. 다금바리의 살점들이 짬뽕 국물을 더 시원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갑오징어 생굴 관자 새우 해삼 황제버섯 표고버섯 송이버섯 시금치 청경채 파프리카 파 죽순 호박에 이르는 20여 가지 신선한 재료가 '도림' 짬뽕의 시원한 맛을 마저 말하고 있었다. 재료가 모두 굵직하고 넙적하니 포만스럽다. "재료가 살아 있다"는 것은 도림의 짬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손대생 주방장은 "짬뽕은 재료를 볶으면서 재료의 가장 지극한 맛을 빼내는 것"이라고 했다. 볶는데 재료가 저마다 살아있다는 모순과 경계가 도림 짬뽕의 한 수준이다. 삼선짬뽕이 좋다는 이도 있고, 매운 사천짬뽕이 좋다는 이도 있다. 각 1만원. 칠리새우 짬뽕, 탕수육 짬뽕 각 세트 1만8천원, 1만5천원. 낮 12시~오후 3시, 오후 6~10시 영업. 051-810-6340~2.
부산 동구 초량동 상해거리의 '중남해'의 짬뽕에도 생선이 들어간다. 이 집에서는 '복'이 짬뽕국물 맛의 시원함을 가일층시키고 있다. 이 집의 의건주(53) 사장은 부산롯데호텔 도림의 주방장 출신. 짬뽕에 생선이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통한다. 이 집 짬뽕에서는 각종 버섯과 오징어 새우 모든 재료들이 '불의 향기'를 그윽하고 진득하게 품은 채 제대로 살아 있다. 브라운 색에 가까운 삼선짬뽕의 맛은 입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갈수록 맛이 더 깊어진다. 사천짬뽕의 맛도 얼큰하니 그저 그만이다. 짬뽕 6천원. 오전 11시30분~오후 2시30분, 오후 5시30분~9시30분. 051-469-9333.
역시 상해거리 '원향재'의 짬뽕에도 복어 고기가 들어가 있었다. 아주 시원했다. 파프리카 청경채 브로콜리 죽순 해삼 새우 오징어 버섯 호박 등의 갖가지 재료가 총천연색처럼 어울려 맛을 빚어내고 있었다. 짬뽕 한 그릇 4천500원. 면발은 다른 집에 견주어 가늘었다. 여주인 이미선(54)씨는 "이전에 동구청 밑에서 '개원'이란 이름으로 14년간 중국집을 했고 다시 여기서 9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성여휘(54) 사장이 직접 요리해 내는 짬뽕은 알아준다는 게 이 집 단골들의 말이다. 오향족발(2만~3만원)이 유명하고, 간자장 삼선자장 삼선짬뽕도 많이 찾는다. 오전 11시~오후 9시30분 영업. 051-467-4868.
· 부추굴짬뽕을 아시나요?
부산 해운대구의 중식당 '대만만두'는 만두로 유명하다. 4천원짜리 군만두가 꽤 유명하고, 찐만두도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 집에서는 '부추굴짬뽕'을 내고 있다. 주방의 이종명(43) 실장은 "굴짬뽕은 굴이 제맛이 든 11~3월에 먹을 수 있는 계절 스태미너 음식"이라며 "뻘건 짬뽕과 다른 하얀 짬뽕"이라고 했다. 육수는 닭육수를 사용하지 않고 굴의 맛이 저절로 우러나오도록 했다.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굴짬뽕에서 고소한 맛이 진동했다. 국물 한 숟가락이 속 시원했다. 불의 향기가 굴에 그윽하게 스며들어 있다. 굴이 입속에서 간간한 맛으로 부서지며 혀를 감는다. 매일 자갈치시장에서 가져오는 생(生)굴이다. 함께 올려진 채소가 잔파인 줄 알았더니 그것이 중국부추라는데 식이섬유의 상큼한 향기를 품고서 아삭거린다. 중국부추도 이때가 제철이다. 그래서 굴과 함께 제철로 어울리는 것이다. 젊은 우청(28) 사장은 "굴짬뽕은 술 드시고 나서 시원하게 속풀이하는 분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부추굴짬뽕의 면만 건져 먹으면 싱겁다고도 할 수 있다. 면과 국물을 같이 먹으면 간이 적당하다.
그러나 더 화끈한 것을 찾는 이가 없을 수 없다. '사천굴탕면'은 부추굴짬뽕에 매운고추의 향을 풀어놓은 것이다. 국물은 부추굴짬뽕처럼 엷은 갈색이지만 그 속에 매운맛을 품고 있다. 부추굴짬뽕, 사천굴탕면 각 9천원. 우청 사장의 어머니가 하는 수영점이 본점이다. 해운대 그랜드호텔 뒤쪽 해수욕장 가는 이면도로 해림가든 2층. 낮 12시~오후 10시 영업. 051-731-5245.
· 탕면과 짬뽕의 차이는 뭔가?
중국집 '차이홍'에서 짬뽕의 개념이 달라졌다. 후지강 사장은 "중국 음식은 만들기 나름이고 얼마든지 변신이 가능하다"라고 했다. 그는 "탕면은 탕과 면이 어우러진 것이니까 결국 짬뽕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이 집의 야채탕면 쇠고기탕면(각 6천원), 새우탕면(7천원) 팔진탕면(8천원)이 그 갈래다. 그는 "재료가 들어가는 대로, 만들어지는 대로 음식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며 음식을 하나의 레시피와 이름으로 한정시키지 말라는 주문을 했다.
그래서 이 집에서는 삼선짬뽕(6천원)을 특이하게 주문했다. 조금 맵싸하게 해달라고 했다. 재료를 볶을 때 매운고추를 넣어 삼선짬뽕을 더 얼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대만만두' 집에서 부추굴짬뽕이 매운 사천굴탕면으로 변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노하우가 있다. 말린 매운고추를 볶을 때 쓴맛이 함께 올라오는데 그 맛을 약간의 설탕으로 눅여야 한다고 했다.
열대여섯 가지 재료가 어우러진 매운 삼선짬뽕에서 은은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타기 직전의 경계에서 잘 익은 재료들이 그윽한 향기를 풍겼다. 한 숟가락에 매운맛이 얼큰했다. 딱이다 싶을 정도로 입맛을 자극했다. 후지강 사장은 "중국에서는 뻘건 고추가루는 먹지 않지만 매운고추의 향을 요리에 섞어 많이 먹는다"고 했다.
차이홍마늘비빔면(6천원)이 이 집이 인기 메뉴다. 새벽까지 영업들을 많이 하는 부산 해운대 좌동재래시장의 먹자골목에 있다. 야밤의 술 손님을 위한 각종 메뉴 14가지(1만~1만4천원)도 있다. 오전 11시~새벽 5시 영업. 051-704-4225.
·'불의 향기'
짬뽕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재료에 깃든 불의 향기다. 재료를 익힐 때, 재료에서 우러나오는, 재료가 각종 양념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맛이다. 그것이 짬뽕 맛의 처음이자 끝이다.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의 중식당 '남풍'의 짬뽕에도 불의 맛과 향이 짙었다. '남풍'의 왕성안 주방장은 "짬뽕의 향은 처음 파 마늘 생강을 볶을 때 나온다"고 했다. 이른바 조미채소를 맨처음 볶으면서 짬뽕 향기의 베이스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다음, 남풍에서는 특이하게 야채와 해물을 한꺼번에 넣어 센불에서 순식간에 볶아낸다. 그것이 재료의 신선함을 유지하는 남풍의 노하우다. 남풍 짬뽕 스물대여섯 가지의 재료들이 그렇게 맛을 내고 있다.
왕 주방장은 "닭육수와 함께 오랜 시간을 들여 뽑아낸 비법의 육수가 짬뽕 국물 맛의 또 다른 비결"이라고 했다. 삼선짬뽕과 사천짬뽕, 두 가지가 있다. 사천짬뽕의 벌건 국물은 고춧가루와 고추기름으로 빚는데 고추기름도 직접 뽑는 수제 고추기름이란다. 짬뽕 각 1만1천원. 낮 12시~오후 3시, 오후 6~10시. 051-749-2260.
글·사진=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