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식구들끼리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격을 갖춘 음식점

입력 : 2009-02-12 00:00:00 수정 : 2009-02-12 15:43:36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가족이 조용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없을까? 가족과 밥을 먹을 때 가족은 말 그대로의 '식구'가 된다. '식구(食口)', 같이 먹는 지상의 자그마한 저 입들…. 김판철 부산시조리사총책임자협의회 회장의 추천을 받았다. 재료를 보고 느끼는 그의 혀와 코, 귀는 민감하다. 요리하는 소리를 듣거나 냄새를 맡아도 어떤 재료를 사용했구나 하는 것을 안다고 했다. 두 곳의 맛집은 나름의 격을 갖춘 곳이었다.

'그릇과 음식의 조화' 군침!

·음식 디자인이 깔끔한 한정식

제대로 된 한정식을 먹는 것 같았다. 음식은 실상 정성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좋은 재료, 실시간으로 해내는 요리, 조화로운 그릇 차림새, 종업원의 서비스…, 그 모든 것이 '정성'이라는 한마디 말에 깃드는 것이다.

한정식 전문점 '영빈관'의 민보경(62) 사장은 "좋은 음식을 하면 굳이 절이나 교회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좋은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덕을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 중구 동광동 일대에서 35년간 음식 장사를 했다고 한다. "30대 초반에 이곳에 와서 시간을 여기서 다 보냈어요." 그런 이력으로 그녀는 지금도 직접 시장을 본다.

하얀 방형(方形) 접시 위의 음식이 정갈했다. 거의 작품 수준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의 미적 감각을 먹는 일이기도 하다. '음식 디자인'은 그릇과 음식의 조화로 식욕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정식에서는 식사 전에 15가지 요리가 융숭하게 나왔다. 차례는 찬 음식에서 더운 음식 순이다. 회는 카네이션과 파슬리 장식 사이에 4개의 섬처럼 올려져 있다. 4인분의 광어회다. 제철로 물오른 광어회 살점이 수줍은 듯 머금은 붉은 기는 입속으로 달고 신선하게 스며들었다. 전복 껍데기가 엎드린 옆에 촘촘히 썰어진 전복회는 오돌오돌했다. 이것들은 5분 거리의 자갈치시장에서 온 것들이다.

당근 계란 쇠고기 해물을 싸먹는 구절판도 색의 향연이라며 감탄을 하는데 동글동글한 6개의 전이 놓인 접시 또한 화전의 꽃밭 같다.

쇠고기 육회도 정갈했다. 배 위에 빨간 쇠고기 육회를 올리고서 또 그 위에 빨간 참기름초고추장을 가미했다. 흰색과 빨간색의 선연한 대조가 한 점의 육회였다. 연어 간장 조림, 수삼 튀김, 숭어 회무침, 새우튀김, 갈비찜이 저마다의 색감으로 식감을 자극했다. 코다리찜은 마른 명태 찜을 말하는데 이 집에서는 특이하게 마른 명태가 온마리로 나왔다. "모양을 고려한 것"이라고 민 사장은 말했다. 그리고 장육, 잡채와 함께 '이카시마'라는 게 나왔는데 특이한 그것은 "한치로 만든 만두"라고 했다.

민 사장은 "15가지 요리는 금방 만들어서 나오는 것들"이라며 "일본 사람들이 자주 오는데 음식이 나올 때마다 감탄의 환호성을 지르는 이들도 많더라"고 자랑했다. 상견례 자리도 많다고 한다.

15가지 요리를 먹고 나서 식사가 나왔다. 시래기국과 밥이 놋그릇에 담겨 나왔다. 끝까지 소홀함이 없다.

동석한 김판철 회장은 "이렇게 잘 삭은 것은 처음"이라며 굴젓에 감탄했다. 된장국에서 직접 담근 된장 특유의 눅진한 맛이 우러나왔다. 더덕무침 게장 깻잎이 모두 맛깔스럽다. 한정식은 2만, 2만5천, 3만, 5만원짜리가 있다. 점심 메뉴로 영양돌솥밥(1만원), 돌솥비빔밥(8천원)도 잘 나간다고 한다(저녁은 예약하면 가능). 다수의 술손님 자리에는 음식 1인분을 더 내준다고 한다. 동광동 부산호텔 옆. 오전 10시~오후 10시 영업. 051-246-0328.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종이 냄비-돼지고기 샤부' 독특!

·시금치·당근·밀가루 '3색 칼국수'

육고기를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구워 먹거나, 삶아서 먹는 방법이 있고 거기에 더해진 것이 살짝 데쳐서 먹는 것이다. 일명 '샤부샤부'의 방식이다.

샤부샤부는 '살짝살짝'이란 뜻의 일본어 의태어라고 한다. 이 샤부샤부는 13세기 징기즈칸 시절, 병사들이 투구에다가 끓인 물에 즉석 조달한 양고기를 데쳐 먹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몽골과 일본 사이 한국에서도 샤부샤부는 있다.

4년 된 '청기와샤브샤브'는 부산 사상구 학장동 쪽 구덕터널 위에 있다. 창가 쪽에 앉으니 나무의 새순이 몽글몽글 솟아오르고 있다. 주객이 능히 도도하게 취할 수 있는 풍경이다.

4인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세트메뉴는 4만원짜리다. 데쳐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종류는 3가지. 쇠고기는 흔하고, 양고기는 애초 몽골에서 유래했다니 시비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돼지고기를 데쳐 먹는다는 것이다.

주인 이명희(49)씨는 "돼지고기 샤부는 일본에서 먹는 방식"이라고 했다. 돼지고기 샤부의 질감이, 먹기에 따라서 쇠고기 샤부보다 더 순하고 부드러웠다. "일본에서는 돼지 삼겹살을 데쳐 먹지만 우리는 첫 시도를 하면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돼지고기 목살 샤부를 내놓았다"고 했다.

또한 참으로 이색적인 것이 있었다. 이 집에서는 종이 냄비에 물을 끓인다. 인덕션 레인지 위에다가 대나무 광주리에 담긴 종이 냄비를 올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이 종이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희한하게 물을 끓이고 있다. 종이 냄비 바닥에 깔려 있는 스테인리스 판이 열을 흡수하면서 물을 데우는 것이다. 종이 냄비에 샤부를 데쳐 먹는 맛, 참 이색적이다.

4인 세트는 3가지 고기 중 2가지를 택해서 먹는 메뉴. 거기에 해물 모듬이 더해진다. 해물 모듬은 살아 있었다. 문어를 건드리니 문어가 꿈틀댔다. 전복 가리비 새우 참소라 그리고 키조개와 그 패주가 모두 싱싱했다. 살아있는 이것들을 살짝 데친 식감은 한층 부드러웠다. 채소는 색깔이 선연했다. 새송이 양송이 느타리 표고 팽이 버섯과 시금치 우엉 대파에 애호박 단호박 배추 양배추 브로콜리들이 청경채의 발음처럼 청량한 느낌을 주었다.

3가지 소스가 나왔다. 참깨소스는 고기, 매운맛 폰즈소스는 해물, 일반 폰즈소스는 채소를 각각 찍어 먹으면 좋다고 하지만 그것 또한 개인 구미에 따라 택하면 된다.

칼국수가 3색이었다. 시금치칼국수 당근칼국수 밀가루칼국수였다. 시금치 당근을 가루로 내서 밀가루반죽에 더해서 만든 칼국수다. 더해서 먹는 영양죽은 샤부의 육수 속에 녹아있는 것들의 결정체였다.

130여석에 이르는 2, 3층 공간이 넓고, 미술인이 내부 장식을 해서 분위기가 있다. 1만원짜리 평일 점심특선도 있다. 구덕터널 위 부산노인병원 인근. '청기와보신탕' 집은 시아버지 뒤를 이어 시동생이 운영하는 곳이란다.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영업. 051-324-9015. 최학림 기자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