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동의 맛집을 찾아서 (상)] '부산의 로망'서 찾은 편안한 맛과 멋

입력 : 2009-02-19 00:00:00 수정 : 2009-02-19 15: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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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에 걸린 그림들이 이 집의 역사를 보여준다.

전국에 흔한 중앙동 중에서 '부산 중구 중앙동'의 의미는 참 각별하다. 6·25로 만신창이가 된 예술계 인사들이 하나둘 모여든 동네, 남포동 광복동과 함께 중앙동을 부산의 명동이라 불렀다. 해운대가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중앙동의 전통을 따라오려면 까마득하다. 중앙동 일대에는 전통있는 맛집들도 즐비하다. 오래되어 허름하지만 편안한 그곳. 누군가 중앙동을 '부산의 허파'라고 부르자, 또 다른 이는 '부산의 로망'이라고 답했다. 중앙동의 대표적인 맛집을 두 차례로 나누어 싣는다.


마지막 주막 '부산포'

주모의 손맛, 말린 서대가 예술

부산포에 걸린 그림들이 이 집의 역사를 보여준다.


지친 나그네들이 밥과 술을 마시며 쉬어가던 주막. 부산에 남아있는 마지막 주막과 주모를 만나고 싶다면 중앙동 부산포에 가보시라. '釜山浦'라고 적힌 희미한 형광등 간판이 주막을 알리는 등불 같다.

32년이나 이곳을 지켜온 주모 이행자씨. 그는 그대로이지만 이 집의 이름은 '골목집'부터 '부산포 주막'을 거쳤다. 부산포의 단골 중에는 예술가들이 유독 많다. 청춘을 괴팍한 예술가들 뒷바라지에 바친 이씨가 처음 오는 낯선 손님을 편하게 맞이한다. 과다하게 친절하지도, 무신경하지도 않다. 벽면에 걸린 그림들이 이 집의 역사를 보여준다.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었나…." 모자를 쓰고 담배를 문 주모도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이 집 단골을 따라 처음 간 날 파전도 홍어도 남아있지 않았다. 위층에 먼저 온 화가들이 홀라당 다 먹어버렸단다. 허기를 달래느라 막걸리부터 시키자 감자 몇 알, 미역무침, 달래, 멸치무침, 따끈한 시락국이 들어온다. 감자는 술 마실 때 배를 곯지마라는 이씨의 배려이다. 없는 파전이 더 먹고 싶다. 눈치 빠른 이씨가 달래를 이용해 달래전을 구웠다며 내놓는다. 이름마저 예쁜 '달래전'을 처음 먹었다.

맥주 안주로 내놓는 서대는 정말 예술이었다. 말린 서대를 쪄서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그 생각을 하니 다시 침이 넘어갈 정도다. 그야말로 '대신동에는 동대(동아대), 부산포에는 서대'이다. 사실 서대가 생각나서 며칠 있다가 한 번 더 갔다. 머리가 허연 화가가 주모와 따뜻하게 포옹을 하고 나간다. 그러자 나이가 지긋한 다른 화가들이 서로 "나도 나도"라며 줄을 선다. 해물파전, 나막스, 콩비지찌개 등 거의 1만원 이내이다. 단골들 사이에서는 계산서가 필요없는 집으로 통한다. 영업은 낮 12시∼오후 12시. 일요일에는 점심시간 영업을 하지 않는다. 백산기념관 바로 뒤편. 051-246-5014.


문화살롱의 격조 '강나루'

두부구이·고추전 사연도 맛나


강나루에서 펼쳐진 흥겨운 즉석 공연.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그 나그네가 술익는 마을로 들어갔다. 이 집 이름은 박목월의 시 '강나루'에서 따왔다고 한다. 소문만 듣고 있던 한 나그네가 '강나루'에 들어갔다. 부산 작가들이 쓴 '오늘의 시'가 벽에 걸려있는 게 눈에 띈다. 15일마다 바꿔 건다니 일년에 24번은 와야 24명의 시인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여기서는 "술 못 먹는 시인은 가짜 시인"이란다.

'강나루'는 고추전과 두부구이가 유명하다. 고추전을 시켰는데 역시나 맵다. 땀이 바짝바짝 나 두부라도 집어먹어야 했다. 두부구이 이야기다. 이 집의 바깥주인인 이상개 시인이 어느 날 나이가 들어 원로시인이 되었다. 이 원로시인이 이빨이 나빠져 이제는 옛날처럼 딱딱한 안주를 못 먹겠다고 사모님께 하소연했다. 그러자 남편을 공경하는 안주인 목경희 여사가 두부구이를 만들어 늙은 남편에게 바쳤다. 두툼한 두부 위에 올려진 청량고추가 맵싸하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우리 어머니는 이것보다 두부를 좀 더 파삭하게 구웠다"며 자신의 어머니를 추억한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게 추억이다. 옆 테이블에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 서로 어디 성씨이고, 어느 고등학교 출신이 어쨌다는 이야기를 한다.

또 손님 한 분이 노래를 하겠다고 우리에게 양해를 구한다. '그리워라 그리워라 푸른 물결 넘치는 그곳~.' 막걸리와 함께 넘어가는 추억이 그립다. 중년의 여성이 답가로 '너무나 사랑했기에'를 부르자 분위기는 절정으로 무르익는다. 오랜 단골이 많지만 처음 온 손님도 반겨줘 나올 때는 친구가 된다. 부산의 격조 높은 문화살롱이다. 고추전 7천원, 빈대떡 두부구이 나막스 각각 1만원. 영업시간은 오후 4시부터. 매주 일요일은 쉰다. 백산기념관 가는 길 첫 번째 골목. 051-246-9577.


맛도 좋고 가격도 싼 '뚱보집'

장어와 배추 곁들여 1만원


뚱보집은 저렴하지만 맛이 있고 푸짐한 집으로 소문이 났다.


요즘 뚱보란 소리를 들어서 기분 좋은 사람이 별로 없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점이 뚱보집이라면 잘 어울린다.

중앙동 뚱보집은 두부두루치기와 보쌈 전문의 실비집이다. 노란 간판에는 세월의 때가 그대로 묻어있다. 실내 분위기가 정겹고 일하는 이모들도 싹싹하다. 장어구이를 시켰더니 장어 색깔이 다른 집보다 빨갛다. 말린 장어가 되어서 졸깃한 맛은 더하다. 이게 겨우 1만원이라니 가격도 참 저렴하다. 장어를 배추에 얹어서 먹는 방식도 독특하다.

'녹빈'이란 들어보지 못한 메뉴가 있다. 녹빈은 새우가 든 빈대떡이다. 장어구이를 잘 먹고 나서 두부정식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통두부두루치기(3천원)를 시켰다. 넓적한 두부 두 모타리가 시뻘건 국물에 들어 있다. 같이 온 일행이 먹는 법을 가르쳐준다. 두부를 숟가락으로 몇 토막으로 나눈 뒤에 밥을 넣어 쓱쓱 비벼먹으면 된다. 변형된 순두부찌개라고나 할까. 두루치기를 먹으면 비지찌개도 함께 나온다.

저녁에 와서 술을 시키면 대구탕 국물도 그냥 따라 나온단다. 주꾸미도 맛있고 보쌈도 맛있는 집으로 소문이 났다. 가격 대비해 맛도 좋고 양도 많다. 밥만 먹고 3천원만 내고 나오기 미안한 느낌이 든다.

장어구이, 주꾸미구이, 보쌈(小) 등 안주류가 1만원.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오후 10시30분. 매월 넷째 주 일요일은 쉰다. 국민은행 중앙동 지점과 부산데파트 사이 이면 골목에 있다. 051-246-7466.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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