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은 듯 안 먹은 듯, 구름 같은 완당

입력 : 2009-08-20 15:46:00 수정 : 2009-08-20 16: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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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은 국물 위에 떠 있는 모양이 구름 같다(운탄·雲呑)고 해서 붙여졌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18번 완당'에서는 이명룡 사장이 직접 뽑은 면(아래 왼쪽)으로 만든 발국수(아래 오른쪽)도 맛볼 수 있다. 사진=김병집 기자 bjk@


"완당이 뭐예요?" 완당. 아는 사람도 많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다. 젊은이들은 잘 모른다. 또 부산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부산 말고는 완당을 하는 집이 없어서 그렇다. 완당을 만들 줄 아는 요리사가 국내에 거의 없어서 그렇다. 세상에 그런 음식이 있었나? 완당을 한 번 먹어보고는 그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맛에 그만 반해버렸다. 완당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맞는 말이다. 완당은 해장에 그만이어서 주당들이 좋아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부산의 맛, 완당을 지상 공개한다.

◆ 중국,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활짝

완당은 만두국의 일종인 중국음식 훈탕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훈탕이 일본으로 건너가 특유의 세련된 문화에 녹아들며 완탕(雲呑)이 되었다. 국물 위에 떠 있는 모양이 구름을 닮았다고 해서 '운당'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도 불렀다. '18번 완당'의 창업자인 고 이은줄 옹이 14세 때 일본에 건너가 완당을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이 옹이 1947년 부산 중구 보수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완당집을 차리며 한국의 완당이 되었다. 일본에서 배웠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며 지금은 서로 차이가 생긴 모양이다. 중국과 일본의 완당 원조격은 피가 훨씬 두껍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려와 "일본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완탕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감탄을 하고 돌아간단다. 서구 부용동의 '원조 18번 완당'은 이 옹의 큰아들인 이용웅(69)씨가 올해로 63년째 되는 최초의 완당 음식점 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이씨의 큰아들 상준(32)씨가 뒤를 잇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남포동에는 이 옹에게 직접 배운 요리사 최맹호씨가 역시 18번 완당집을 하고 있다. 최씨는 빠른 손놀림으로 시간당 70∼80개의 완당을 빚는 것으로 이름이 났다. 최씨는 갖 빚어낸 완당이 나비를 닮았다며 '나비'라고 부른다. 그런데 왜 18번일까? 가장 잘하는 노래를 18번이라고 한다. 잘하는 완당, 가장 맛있게 만들자는 뜻에서 18번 완당이라고 이름을 지었단다.

◆ 맑은 국물에서 향긋한 향이 올라와

완당집은 이렇게 두 곳뿐이었다가 올해들어 세 곳으로 늘어났다. 부용동에서 오랫동안 주방을 책임졌던 이 옹의 막내 아들 명룡씨(53)가 남천동 수영세무서 앞에서 18번 완당집을 연 것이다. 그곳을 찾아갔다. 누가 차렸든 맛부터 보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대표 메뉴인 발국수가 4천원, 완당이 5천원이다. 유명세에 완당에 밀렸지만 이 집 발국수 맛이 예술이다. 여기서는 메밀국수를 발국수라고 부른다. 대나무발의 이름을 따왔다. 이름만 발국수이지 손으로 먹는다. 착한 가격이 일단 마음에 든다. 찬 발국수를 먼저 먹고 따뜻한 완당을 먹는 게 순서. 발국수용 장이 일인당 2개가 나오는 게 특이하다. 먹었던 장에 두 번째 면을 다시 넣으면 맛이 싱거워진다. 손님들을 위한 배려이다. 면이 굉장히 부드러우면서 졸깃졸깃하다. 맛있다는 이야기가 저절로 난다. 국물은 달착지근해서 입맛을 당긴다. 혹시 조금 달다면 겨자를 살짝 타면 된다. 코를 자극하는 겨자가 더욱 맛을 내게 만든다.

이윽고 기다리던 완당이 나왔다. 완당 국물은 맑다. 완당이 가득 들어 있어도 그릇 바닥에 새겨진 글씨가 보여야 한단다. 완당은 얇은 비단이 풀어진 것처럼 하늘거린다.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이가 할 일이 없다며 불평한다. 육수는 분명 고기 국물인데 왠지 향긋한 향이 난다. 완당에 든 쑥갓과 숙주나물의 조화일까? 속이 편해온다. 이래서 해장에 좋다고 한다. 완당을 발국수 장에 찍어도 맛이 괜찮다.

◆ 맛의 비결은 '천천히'에

기분좋게 두 그릇을 비우고 요리사 이명룡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피가 굉장히 얇다.

△"피의 두께는 3㎜에 불과하다. 밀가루 음식 특유의 텁텁한 맛을 없애려면 피를 이렇게 얇게 해야 한다. 그 이하로 하면 밀가루의 점성이 견디지 못해 찢어진다. 최소한의 두께를 찾으려고 밤낮없이 반죽에 열중한 결과이다."

-맑고 담백한 육수는 어떻게 내나?

△"돼지 뼈와 닭 뼈로 우려냈다. 고기 냄새를 없애는 향신료도 몇 가지가 들어갔다. 맛의 비결은 끓이지 않는 데 있다. 그러니까 약한 불로 천천히 데우듯이 끓이는 게 비법이다. 남들에게 가르쳐줘도 다들 급한 마음에 끓이느라 이걸 지키지 못한다."

-선친은 어떤 분이셨나?

△"아버지는 절대 술을 취급하지 말고 음식만 깨끗하게 즐기도록 하라고 했다. 그래서 가게에서는 맥주도 안 판다. 어머니가 한번은 우리들 도시락 싼다고 지단용 계란을 태워버린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정신 상태로는 장사를 못한다며 육수를 부어버리고 그날 가게 문을 닫았다."

-자신의 가게를 열게 된 동기는?

△"'18번 완당'을 하는 3곳이 모두 맛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나는 내 요리를 하고 싶어서 독립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요리가 몇 가지 더 있다. 이걸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 매일같이 아버지 손맛을 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며 아침에 나온다."

◆ 요령을 피우지 말아야 맛이 나

진지한 표정이 인상적인 이씨와 나눈 대화 중 기억나는 걸 정리했다.

"아버지는 열심히 하다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 돈을 벌려고 하지마라고 말씀하셨다. 완당은 만드는 과정이 힘들어도 지킬 걸 지켜야 맛이 난다. 나는 공부는 잘 못했지만 요령을 피울줄 몰랐다. 그래서 나에게 완당 기술을 전수해주신 것 같다. 밀가루의 특성을 알기 위해 제과제빵학원에 배우러 다니다 보니 남들보다 더 맛있는 면을 만들게 되었다. 아직도 더 배울 것이 많다. 요리의 달인이 되기 위해 공부를 계속 하고 있다. 완당을 만들 수 있는 기술자가 없어서 안타깝다.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술도 전수해줄 생각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오후 9시. 첫째, 셋째 월요일에는 쉰다. 남천동 수영세무서 앞. 051-611-1880.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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