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술의 하모니'… "이만한 곳 있을까?"

입력 : 2009-12-10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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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역 추억의 음악 바(Bar) 탐방

'바(Bar)는 밤에 문을 여는 병원이다. 의사는 육체, 바텐더는 영혼을 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 주 맛면에서는 정통 스타일의 괜찮은 바를 찾았지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신에 흘러간 음악을 들려주는 추억의 바 세 곳을 소개합니다. 연말이다 보니 술자리도 잦습니다. 추억의 음악을 들으며 가벼운 맥주 한 잔이 어떻습니까.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좋은 음악은 최고의 안주

·추천 1 - '코헨'
 

 
코헨에서 음악을 듣다보면 자기도 몰래 추억에 빠지게 된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으로 칸칸이 칠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문을 살짝 열자 오래된 팝송이 반색을 한다. 어둡다고 불평했더니 밝은 가게는 밖에 많이 있단다. 브라운 계열의 어두운 색조는 가게 문을 열고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가게 안에서 어디를 찍든지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 어두워 사진이 죄다 흔들렸다. 음악이나 들을 수밖에. 이름도 모르는 여사장님, 음악을 좋아해 이전에는 레코드 가게에서 일을 했단다. 그 가게가 문을 닫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직접 차렸다.

가게 이름은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캐나다의 가수 레오나르드 코헨에서 따왔다. 음악을 크게 듣고 싶으면 스피커가 있는 문 쪽에 앉으면 된다. 실내는 LP판, 사진, 영화 포스터로 도배가 되었다. 한쪽 벽면에 '우울한 도박 실패 소녀를 위한 노래'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혹시 사장님 이야기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신청곡인 레인보우의 '템플 오브 더 킹'(Temple of the king)이 흘러나온다. 기다란 실내 공간을 따라 음악이 울려 퍼진다. 소리의 공명이 다르다. 단언컨대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은 코헨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 자리에서 음악을 틀어주길 8년째 되었다. 영업시간은 오후 7시 30분부터 자정까지이고 일요일에는 쉰다. 아무리 단골이라도 밤 12시만 되면 쫓아내는 신데렐라 여사장이다. 진정한 술꾼은 좋은 음악 이상의 안주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도 맥주 안주로 나온 한치가 맛이 있다. 멸치도 좀 달라고 했다. 어쩐지 여기에 앉으니 옛사랑이 생각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란다"라고 때맞춰 노래도 나온다. 한바탕 싸운 연인들이 들어와 음악을 듣다 풀려서 나가는 일도 가끔 있단다. 처음 가도 신기하게 편안하다. 맥주 4천원, 한치와 땅콩 미역귀 1만 2천원. 광복동 카메라 골목 개미집 맞은편 2층. 051-255-3177.


옛 추억의 DJ '향수 가득'

·추천 2 - '꼬맹이 무아'


꼬맹이 무아에서는 수천장의 LP나 CD로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다.
부산의 음악 감상실 '무아'는 사라졌다. 대신에 전설이 되어 세상을 떠돈다. 가끔 무아가 지금껏 남아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얼마 전 친구에게서 무아가 남아있다는 말을 들었다. 알고보니 '꼬맹이 무아' 이야기였다. 윤주은 대표는 무아의 마지막 DJ였다. 그는 무아에서 10년간 음악을 들려준 부산에서 첫손에 꼽는 DJ였다. "무아가 문을 닫는 게 아쉬워서 작은 가게를 내고 꼬맹이 무아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게 벌써 14년째가 되었다. 자주 이곳을 지나치면서도 왜 보지 못했을까. 이곳을 소개하고 동행한 친구가 얼마 전 윤대표를 길에서 7년 만에 우연히 만났단다. 모든 게 인연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좋은 음악이 있는 곳 꼬맹이 무아' 간판을 보고도 좁은 골목을 따라 한참 들어와야 한다. 이 좁은 골목에는 재미있는 스크래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참으로 신기한 사람이다. 흡사 동굴 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이 난다. 둘러보니 손님들은 젊은이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다양하다.

윤대표는 "아직도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에게서 도끼빗을 꽂은 DJ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메모지에 적힌 음악을 틀어주는 일은 지금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DJ 활동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모은 LP 1천700여 장, CD 4천여 장, DVD 200장 가운데서 맘껏 골라 들을 수 있다. 이 가운데 듣고 싶은 앨범을 꺼내 DJ 윤에게 건네면 된다. 그는 "구청 강당 같은 곳에 나이 드신 분들을 모시고 음악을 틀어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다. 그의 착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맥주 4천500원, 노가리·오징어 각 9천원. 영업시간은 오후 6시부터 오전 2시. 쉬는 날은 없다. 대청동 원불교회관 정문 골목 안. 051-244-5605.


노래 부르는 자그마한 무대도

·추천 3 - '자유시간'


자유시간의 작은 무대에 오르면 어린왕자가 된 듯 한 느낌이 든다.
먼저 해운대에 이런 가게가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1991년 11월에 문을 열어 20년째라니 그동안 은자(隱者)의 모습으로 숨어있던 게 틀림없다. 테이블은 고작 6개, 드나들 때는 머리를 조심해야 하는 작은 가게이다. 하지만 틀림없이 이 작은 공간이 마음에 들게 되어있다. 한쪽에는 노래를 부르는 정말 조그만 무대가 보인다. 달과 별이 장식된 아기자기한 무대. 여기에 서면 누구나 어린왕자가 될 것만 같다. 자유시간을 지키는 어린왕자 이봉형씨는 음반을 낸 가수이다. 같은 부산 출신이었던 '높은음자리'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던 1985년 그도 부산에서 3등으로 입상하며 본격적으로 노래 인생을 시작했다. 영업시간이 오후 10시부터로 다소 늦다. 이씨가 다른 가게에서 라이브 공연을 마치고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이씨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이 지역이 개발계획에 따라 언제 헐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쉬워요. 주류의 문화뿐만이 아니라 비주류의 작은 문화도 필요한데…"라며 말을 흐린다. 그는 손님이 원한다 싶을 때만 노래를 부른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이씨의 얼굴이 무척 동안으로 보인다. 돈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고, 돈에는 신경도 별로 안쓰는 눈치이다. 처음 왔는데도 반주를 해준다. 서로 노래 부르겠다고 시끄럽게 난리를 치면 돈을 받으니 주의하시길. 화려한 화장을 한 얼굴만 있는 줄 알았던 해운대에 이런 공간이 있어서 놀랍다.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다. 자유시간의 마니아들은 달세를 책임질 테니 가게를 계속하란다.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사랑…" 노래가 흐르고 밤이 깊어간다. 이렇게 '삼바 순례'를 마치니 어느새 새벽이다. '원더풀 투나잇'이다. 맥주 360ml가 4천원. 과일안주 2만 원, 화채 1만 5천원. 각종 칵테일 5천∼7천원. 한국콘도 속시원한 대구탕 옆. 051-743-4502.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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