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필의 Pop's World] 혁명을 노래하는 흑인 여가수 트레이시 채프먼

입력 : 2010-01-07 16:38:00 수정 : 2010-01-11 14: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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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에 대해 노래한 트레이시 채프먼의 데뷔 음반 재킷.

1980년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중 음악계에서 흑인들은 항상 2인자였다. 흑인 노예들의 음악인 블루스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로큰롤은 물론이고, 스탠더드 팝, 포크 음악, 하드 록 등 거의 모든 장르에서 백인들이 주류를 점했다. 소수의 흑인 가수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마이클 잭슨이 팝의 주류에 전면 등장하면서 흑인들의 정상 등극도 활발해졌다. 특히 1980년대 후반 흑인 여가수 트레이시 채프먼은 백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포크 음악에 당당하게 이름을 내밀었다. 그는 1988년에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 음반을 통해 흑인들도 '지성의 음악' 포크를 할 수 있음을 만방에 고했다. 또한 당시 레이건 보수주의 정권에 일침을 가하는 가사를 대거 쏟아냈다. 이른바 '혁명의 노래'였다.

"그들이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당신은 아시나요 / 소곤거리고 있어요 / 가난한 사람들이 일어나 자기 것을 쟁취하려 하고 있어요"라고 노래하는 '토킹 어바웃 어 레볼루션'이 대표적인 곡이었다.

심각한 주제의 작품이었지만 지구촌의 지성들은 박수 갈채를 보냈다. 트레이시 채프먼의 1집은 미국과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전 세계적으로 1천300만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최우수 신인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타임'지는 "100마일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들려나오는 것 같은 풍부한 저음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는 목소리"라고 극찬했다.

트레이시 채프먼이 자신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낼 수 있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는 남편도 없는 가난한 형편에서도 딸에게 기타를 사주고, 책을 함께 읽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해줬다. 1989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채프먼은 "내게 기타를 사주고 평론가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어머니께 감사를 드린다"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현재까지 여덟 장의 앨범을 발표한 트레이시 채프먼은 여전히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고 있다. 비록 데뷔 당시에 비해 지명도가 많이 약해졌지만, 그의 투쟁은 '온 에어'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외친다. 그는 말한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은 사회적 사실을 기록하는 작업이다. 나는 그 작업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팝 칼럼니스트 rocksacrific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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