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남성에겐 체력, 여성엔 우윳빛 피부

입력 : 2010-01-28 15:34:00 수정 : 2010-02-03 17: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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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굴 한 점 입에 넣으면 바다 향기가 싸~하다. 몸에도 좋고 기분도 좋아지는 굴요리. 왼쪽부터 초량동 본가굴국밥의 굴국밥. 정종회 기자 jjh@


굴이 제철이다. 통영과 거제 일대 남해 청정지역에서 생산되는 굴은 맛도 좋고 영양도 많다. '어데어데 좋다 꼭 찝어 말 못해도' 바다의 우유라 부르는 굴에 들어있는 타우린과 아연 성분은 남자에게 좋고, 굴 팩은 고운 피부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최근 인기이다. 오동통하고 우유색 속살에 검은 테두리가 선명하면 신선도가 극상. 로마 귀족들은 알프스 만년설로 굴을 차갑게 한 뒤 레몬즙을 뿌려 먹었다. 속이 확 풀리는 굴국밥과 제철 굴구이 맛을 찾았다.



신선한 당일 굴 고집 초량 '본가굴국밥'


기차는 새벽에 서울을 떠났다. 어둠을 가르고 남쪽 수도 부산에 사람을 부린다. 어디로 가야 하나? 시린 속이라도 채워야 할텐데…. 어디서 바다 냄새가 난다. 아무래도 바다는 보이지 않는데. 그 푸른 끌림에 이끌려 들어간 곳은 굴국밥집. 뜨거운 국물을 몇번이고 후후 불며 한 숟가락을 뜬다. 입 안에서 쉽게 넘어가지 않고 맛샘을 자극하는 굴국밥. 뜨거운 것이 목줄기를 넘어 뱃속 깊은 곳에 놓여 있던 얼음 한덩이를 쉽게 녹여낸다. 온몸에 온기가 퍼진다. 갑자기 흐뭇한 미소가 절로 생긴다. 행복하다.

부산 동구 초량동 한도빌딩 1층에 자리한 본가굴국밥의 여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다. 주방까지 확 트인 80석 규모의 내부가 시원하다.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 때면 별도의 내실 20석까지 꽉 찬다.

한겨울에 땀이 날 정도로 바쁘지만 단 한 명의 손님도 소홀히 모시지 않는다. 본가굴국밥 대표 최진우(48) 사장의 오래된 철학이다. 최 대표는 주방을 직접 챙길 정도로 굴 음식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주 메뉴는 굴국밥. 잘 마른 남해 멸치와 배추 무 다시마 등으로 국물을 낸다. 채소 국물은 오래 끓이거나 끓여서 오래 두지 않는 것이 맛의 비결. 오래 끓이면 쓴맛이 난단다. 펄펄 끓는 채소 국물에다 두부와 부추 미역을 넣고 바다 맛을 더 낸다. 통영 청정지역에서 수하식으로 생산된 통통한 굴을 넣으면 본가 특유의 굴국밥 완성.

이 집 굴국밥 맛의 비결은 9할이 당일 재료의 신선함 덕분이다. 굴은 바다에서 건져진 지 채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부산에 도착한다. 결코 얼리거나 하루를 넘기는 법이 없다. 그날 그날 필요한 양을 저녁시간 통영 굴수협 거래처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도착한다. 주문한 양은 그날 100% 소화된다. 만 6년을 그렇게 고집스레 굴 요리만 해왔다. 또 하나 맛의 비결은 주방을 책임지는 장모님. 최 대표의 장모 이옥순(70) 여사는 포항이 고향으로 한식집을 30년 이상 경영했다. 겨울초, 부추에 조선간장과 식초를 넣고 겉절이를 척척 담아낸다. 사위의 굴국밥집 창업에 일등 공신이다.
제철 굴 한 점 입에 넣으면 바다 향기가 싸~하다. 몸에도 좋고 기분도 좋아지는 굴요리. 왼쪽부터 초량동 본가굴국밥의 굴무침. 정종회 기자 jjh@

굴국밥집은 유달리 체인점이 많다. 식재료 공급이 용이하고, 단순하지만 맛내기가 까다로워 브랜드에 대한 호감이 강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2004년에 70여개에 달하던 부산 시내 굴국밥 전문집 중 지금 성업하는 곳은 서너 개. 굴국밥을 제대로 즐기려면 주메뉴가 굴인 식당엘 가야 한다. 곁다리로 내놓는 굴국밥은 아무래도 소홀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비수기인 여름철엔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여름철에도 냉동 굴을 쓰지 않고 메뉴를 이어간단다. 대단한 고집이다. 굴에 대한 일종의 결기가 묻어났다. 주인의 철학 때문에 그 음식을 먹는 손님은 고마워진다. 일하는 분들도 3년 이상 장기근속이다.

창업 초기 막 개통한 KTX 승무원들이 입소문의 일등공신이란다. 사무실 밀집지역에 자리하고 있지만 부산역과도 가까워 승무원들이 단골로 찾았다. 승무원들의 추천에 몸살이 날 정도로 성장 했다. '역과 터미널 주변의 음식은 원래 맛이 없다'는 말을 보기좋게 극복한 것. 굴국밥은 5천원. 점심을 먹는 직장인들에겐 굴파전(1만원)이 인기고, 반주를 곁들이는 분들이라면 레몬을 살짝 곁들이는 석화(3인분 1만5천원)나 굴무침(1만5천원)이 좋다. 굴무침은 청양고추에 미나리를 넣어 아삭아삭하다. 배부를 때 먹어도 자꾸 손이 간다. 명절을 빼고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연다. 051-466-6229.


굴구이 생굴회 진해 안골 '굴하우스'
제철 굴 한 점 입에 넣으면 바다 향기가 싸~하다. 몸에도 좋고 기분도 좋아지는 굴요리. 진해 안골 굴하우스의 굴구이. 정종회 기자 jjh@

생굴 한 접시를 주문했더니 바다 한 접시가 나왔다. 김치와 양파 고추 마늘을 곁들여 불판에 굽는다. 지글지글, 굴즙이 흘러 김치에 밴다. 김에 김치와 굴을 싸 한입 가득 먹는다. 입안이 온통 바다다. 문득 고개를 드니 노을진 바다에 석양이 몰려왔다. 선조 25년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몰아치던 기세로 벌겋게 강하게 안골포를 몰아치고 있다. 파도는 흑백사진의 톤으로, 그러나 움직인다. 출렁출렁 맛고개를 넘실거린다.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저녁 무렵, 불현듯 누군가 그리워진다면, 그 그리움이 혹 바다라면 진해 안골포로 가자. 그곳에는 거제 가배 앞바다에서 8t 트럭에 껍질째 실려 막 도착한 생굴과 그 굴을 까는 바닷가 할머니의 굽은 허리와 그 할머니에게 온기를 전하는 드럼통으로 만든 화목난로와 생굴과 굴구이와 소주 한 잔이 있다.

경남 진해시 안골동 안골포에 굴하우스가 집단적으로 들어선 것은 5~6년전. 원래 이 지역에서 굴 양식을 하였으나 신항만 개발 등으로 바다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공사가 시작되니 온 바다를 누비던 숭어 아나고 노래미 도다리 쭈꾸미 홍게 등이 사라졌다. 개안(갯벌)이 매립되니 산란장이 사라지고, 산란장이 사라지니 물고기가 자취를 감췄다. 바다에서 살던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굴 도매업. 추운 겨울날 패각 제거 작업을 하다보니 굴하우스가 차려졌다. 굴 까는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먹고 갈 수는 없냐고 물었다. 이제 해변의 굴하우스는 모두 20개. 1번부터 시작하지만 순번을 뒤에 받은 이는 번호 선택권이 있어 61번도 있고 99번도 있다.

11번 굴하우스를 운영하는 이백연(58) 여사는 김해에서 시집와 30년을 바다에서 살며 바다를 일궜다. 아이들도 번듯하게 성장했다. 매일 전국 각지로 생굴을 택배 한다. 1㎏에 1만원. 굴하우스를 찾는 손님들에게는 굴구이(1만원) 생굴회(1만원) 굴라면(3천원)을 낸다. 다시 바다와 일할 수 있어 늘 즐겁다. 굴하우스 마다 특미가 있어 굴국밥 굴볶음밥 등을 맛볼 수 있다. 오후 10시에 문을 닫음. 11번 굴하우스 011-9478-2290.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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