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요리사, 주방을 지휘한다 주방을 홀렸다

입력 : 2010-03-04 15:19:00 수정 : 2010-03-04 16: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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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하는 모습에 백조 같은 우아함을 느꼈다. 상처 투성이인 그의 발을 보고 우아함 속에 감추어진 고통을 알게 되었다. 맛있는 스파게티가 나오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여성 오너 셰프가 근사해 보였다. 여름에 본 그의 팔에는 화상 자국이 선명했다. 주방은 칼이 날고, 불이 춤추는 전쟁터이다. 그래서인지 요리하면 여자를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여자 요리사는 드물다. 주방이라는 전쟁터를 지휘하는, 부산을 대표하는 여자 요리사 세 사람을 만나봤다. 이야기를 듣고 먹으니 더 맛있다.


금정산 주미씨


"아직도 식당을 하고 있어요?" 부산 금정구 부곡동의 회 보쌈 전문 '금정산' 주미(52) 대표를 만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2남4녀의 막내딸로 자라, 의사 남편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만 보고 하는 이야기이다. 올해로 음식점을 시작한 지 6년째. 아무래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모양이다. 주씨의 어머니는 도시락에다 계란으로 토끼나 꽃밭을 만들어 주셨다. 아이들은 그 도시락을 보고는 탄성을 질러댔다. "음식이 사람들을 기쁘게 해준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지금까지 사서 고생이다. 주씨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할 때부터 요리에 매진해 한식, 일식, 중식, 복어조리 자격증까지 갖추었다. '금정산' 건물의 3층을 그만의 음식 작업실로 사용한단다.

한식은 어머니의 기다림 같은 것

요리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


호기심을 안고 회보쌈(2인 4만원·사진)을 시켰다. 노란색 닭가슴살 샐러드가 먼저 나온다. 일 년간 발효시킨 새콤한 유자소스에 닭가슴살을 무쳐냈다. 팍팍한 닭가슴살, 먹을수록 괜찮다. 파전은 언제나 뜨끈뜨끈해서 좋고(역시 온도가 중요!), 계란찜은 고봉밥처럼 솟아서 마음에 든다. 음식은 정성이 중요하다. 매일 담근다는 김치는 신선할 수밖에 없고, 된장국은 속이 시원하다. 새싹을 올린 메밀국수는 편안하다. 아직 끝이 아니다. 후식으로 나온 차 맛이 격조가 높다. 뭐로 만들었는지 짐작도 못하겠다. 매실, 유자, 사과의 엑기스를 섞은 차란다. 계피와 유자를 섞은 차도 아주 좋다. 비밀은 3층에 있었다. 유자, 매실, 생강을 발효시켜 만든 엑기스가 냉장고에 칸칸이 가득 차 있다.

"한식은 어머니의 기다림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면 이 귀찮고 복잡한 과정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주방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밖에서 기다린 세월이 녹아 들어가 있었다. 주씨는 "한식 뿐만이 아니라 후식의 세계화도 중요합니다. 각종 건강차를 세계화하면 프랑스 와인 못지않습니다"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항상 연구하는 자세가 돋보이는 천상 요리사이다. "직원들과 지지고 볶는 게 그렇게 재미가 있다"니 주변에서 "행복세를 좀 내야한다"는 말을 한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오후 10시. 허심청 허브스카이에서 내려오면 국수골목. 051-556-9911.


포청각 강미옥씨


"거기 포청천 맞아요?" "맞습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긴단다. 이름 한번 특이한 '포청각'(별 뜻은 없었다)의 강미옥(42) 대표. 강씨를 만나러 해운대구 재송동의 가파른 고개를 넘어 찾아갔다. 중화요리는 워낙 힘이 들어 여성이 드물다. 더군다나 조리사 면허증을 가진 여성은 귀하다. 포청각을 찾아 주방에 들어가니 매캐한 연기가 앞을 가려 기침부터 나온다. 강씨가 시뻘건 불 앞에서 익숙한 솜씨로 프라이팬을 돌리고 있었다. 날름날름 하는 불이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불에 많이 데였습니다." 여름에는 또 얼마나 더울까. "여름이 지나면 몸무게가 정확하게 3㎏ 빠집니다. 돈을 안들이고 사우나 한다는 생각을 하면 즐겁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또 먹고 살기 위해 요리를 한다. 기왕이면 즐겁게 하자.

돈 안들이고 사우나 여름엔 3㎏ 빠져

손목 많이 써 오른손 늘 고생


하필이면 왜 중화요리일까. "반찬을 많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 시작했는데 잘못했습니다. 중화요리는 너무 힘들어 여자가 할 게 못됩니다." 배달 담당인 남편 김근배(44)씨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대로 다 이야기한다. 역시나 포청천이다. 중식 프라이팬은 들어보니 상당히 무게가 나간다. 손목 스냅을 사용해 안에 든 음식을 저어줘야 하기에 오른손이 늘 고생이다. 가끔 김씨가 고생하는 강씨의 팔과 어깨를 주물러준단다.

힘들여 만든 음식이 나왔다. 먼저 쟁반자장(2인분 9천원·사진). 싱싱한 해물이 아주 많이 들어갔다. 보드랍게 씹히는 뽀얀 이 녀석은 한치다. 양도 많아 둘이서 먹으면 잔치 기분이 날 것 같다. 풍성한 팔보채(2만5천원), 달착지근하면서도 아삭한 탕수육(1만4천원)도 좋다. 특미로 '불나라자장'이란 게 있다. 아주 맵게 나와 입에서 그냥 불이 난단다. 이름이 재미있다.

힘들지만 때로는 보람도 느낀다. "배달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서 내놓으며, 그 위에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쪽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럴 때면 보람을 느끼고 진짜 힘도 납니다." 다음부터 그 집에 음식 가져갈 때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살맛나는 세상이다. 배달이 전문. 영업시간은 오전 11시30분∼오후 9시. 1, 3주 화요일에는 쉰다. 재송 제일교회 앞. 051-781-5100.


파라다이스호텔 김수현씨


드라마 '파스타'가 이탈리아 요리사의 주가를 끌어 올리고 있다. "에이, 거기 러브 라인은 거짓말이던데요." 한 마디로 묵사발을 낸다. 도대체 누구?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이탈리아 레스토랑 꼴라비니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 김수현(30)씨다.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세계 최고 수준의 요리학교인 파리의 르 코르동 블루에 입학해 4년 가까이 요리와 제과·제빵 공부를 했다. 드라마가 엉터리거나 그가 공부만 했거나…. 코르동 블루의 생활은 재미있었단다. "여자 60명, 남자 40명이 한 학년이었는데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파티를 자주 했어요. 저는 불고기나 잡채, 일본 친구는 생선회, 스페인 친구도 전통요리를 만들어서 왔죠. 힘든 줄도 모르겠던데요." 조교 생활을 하며 학비를 벌어 쓰고, 노동허가증을 받아 파리에서 1년간 일을 했다.

주방엔 남녀 구분 없어

요리는 내 인생, 미래 차근차근 준비


요리사가 된 이유를 물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먹는 걸 좋아했어요." 이렇게 대답하면 듣는 기자, 당황하기 마련이다. 김씨의 아버지가 외국 출장 갔다 올 때마다 항상 과자나 빵 같은 먹을거리를 많이 사가지고 오셨단다. 견문을 넓히라고 가족끼리 해외여행도 많이 나갔다. 새로운 음식을 볼 때마다 이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고 공부했었단다. 요리사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일은 어디서나 힘들지 않나요"라며 빤히 얼굴을 쳐다본다. 힘들다. 말문이 막혀서 힘들다. 하긴 남의 돈을 받고하는 일 중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랴.

이번에는 여자 요리사의 가장 큰 핸디캡, 결혼해서도 일을 계속할 거냐고 물었다. "아까워서 그만두지 못한다. 우리 주방의 철칙이 '요리사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미슐랭 가이드에 오르는 여자 요리사들의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특급호텔에도 여자 총주방장이 생겼다.

이제서야 그가 만든 크림소스 스파게티(사진)가 나왔다. 이탈리아 요리답게 질긴 면에 뻑뻑할 정도로 진한 소스가 입에 착 감긴다. 새우나 홍합 등 해산물도 최고다. 그는 전채요리, 피자, 파스타가 자신이 있단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물었더니 "요리는 내 자신이다.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정해야 할 순간까지 준비하겠다"고 대답한다. 세상이 점점 맛있어진다. 해산물 크림소스 스파게티 2만원대. 낮 12시∼오후 3시, 오후 6∼10시. 051-749-2274.

글·사진=박종호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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