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의 깊은 맛, 산성마을서 느끼다

입력 : 2010-03-18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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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뒤끝이 아직 차지만 이젠 봄을 노래할 때다. 금정산을 품은 마을, 금성동 산성마을에도 완연히 봄이 찾아 왔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에선 봄의 향기가 풍기고 양지 바른 곳에 고개 내민 꽃들이 반갑기만 하다. 봄을 머금은 산성마을에서 입까지 즐거워지는 미각 여행을 하고 왔다.

"오리고기, 제대로 함 해보자" 베델의 백향목

산성마을로 취재를 간다고 하니 걱정의 소리부터 들린다. "거긴 죄다 똑같은 음식점들인데요. 염소고기, 오리고기! 맛도 비슷한데 어디를 가요?" 대체로 이런 반응이다.

사실 기자도 이 집을 알기 전까지는 비슷한 생각이었다. '베델의 백향목'. 이름부터 특이한 이 집은 여러모로 즐거운 공간이다. 이 집을 제대로 알려면 우선 공동 경영자인 김성자, 김진수 사장부터 소개해야 한다.

인상 좋은 아줌마로 보이는 김성자 사장. 알고 보니 그녀는 전국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오리고기를 납품하는 ㈜베델농산의 대표이다. 전국 오리고기 판매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오리고기 분야에선 1인자란다. 김진수 사장은 서울 특급호텔 식음료 매장 총지배인을 거친 정통 호텔리어 출신이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서비스가 몸에 배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촌 남매간인 두 사람이 3년 전 김성자 사장의 고향인 산성마을에서 의기투합한 것이다.

"20여년간 많은 음식점에 오리를 공급했죠. 그런데 늘 아쉬움이 있더라구요. 좀 더 맛있는 요리로 탄생할 수 없을까 싶더라구요. 결국 제가 직접 나선거죠. 재료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었구요. 오빠가 경영 전반을 맡아주시기로 했고. 사실, 조리에 관해서도 믿는 구석이 있었어요."

알고 보니 백향목의 주방을 맡고 있는 김민영 조리장이 김진수 사장의 아들이다. 호텔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세계 요리대회에서 몇 번의 수상 경력이 있는 실력파 조리사이다. 서울 유명 음식점에서 활동 중인 그를 아버지가 스카우트한 셈이다.

세 사람의 조화는 오리 음식을 통해 진면목을 발휘했다. 몇 가지 음식을 두루 맛볼 수 있는 오리 코스 요리(오리 생고기, 불고기, 훈제 바베큐, 한방 전복 누룽지 백숙)를 주문해봤다.

간이 살짝 배인 생고기부터 한 점 베어 물었다. 고소하고 쫄깃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고기 자체의 향과 맛이 뛰어나 그 어떤 장도 필요가 없다. 양파와 버섯이 곁들여져 씹는 질감도 즐겁다. 매콤 달콤한 맛의 불고기는 양념의 비율이 기가 막히다. 주방의 내공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훈제 바베큐의 부드러운 질감과 깔끔한 뒷맛도 매력적이다.

고기의 즐거움이 끝나면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한방 전복 누룽지 백숙'이 등장한다. 전국 요리대회에서 입상하고 행사장을 찾았던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극찬했다는 음식이다. 20가지 한약재와 전복, 오리가 들어가 맛과 영양 두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음식이다.

쫄깃한 찹쌀 누룽지와 구수한 백숙 국물, 전복과 한약재의 향이 깊게 들어가 있다. "와~ 와~, 이거 제대로인데요"라는 말이 연신 나온다. 4가지 코스요리 1인분 2만원(6인 이상). 생오리 한방 전복 누룽지 백숙 4만5천원. 연중 후뮤. 오전 11시~오후 9시. 051-517-9252.

한의사가 감탄한 쌍화차 금정산 향기 가득 쑥수제비 물꼴
산성마을의 유일한 찻집 '물꼴'은 화명동에서 산성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자리잡고 있다. "찻집이 생겼다가 금방 사라져요.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거든요." 남지 않는다는 찻집을 10년 넘게 운영해 오고 있는 엄주환 사장.

그는 사실 음악인이다. 밴드 주자로 화려한 인생을 살다가 나이가 드니 고향이 그립더란다. 그래서 지난 1997년 산성마을 초입에 있던 축사를 개조해 작은 음악카페로 꾸몄다. 그게 '물꼴'의 시작이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쑥수제비와 쌍화차, 대추차이다. 금정산에 지천으로 나는 쑥을 캐서 말리고 갈아 수제비를 만든다. 호박과 감자를 듬성 듬성 썰어 시원하게 끓인 쑥수제비는 금정산의 향기까지도 담고 있는 듯 하다.

아는 한의사가 가르쳐준 쌍화탕은 엄 사장 손을 거쳐 물꼴 특유의 쌍화차로 발전했다. 쌍화탕 비법을 가르쳐준 한의사가 지금은 되레 이 맛을 어떻게 내는지 감탄을 할 정도가 됐다. 경북 자인산 대추를 오랜 시간 달여 완성한 대추차 역시 이 집에서 꼭 맛보길 추천하는 메뉴이다.

"차는 제가 직접 끓이고요. 음식은 모두 모친의 손맛이에요. 소박한 어머니의 손맛 덕분에 고향의 느낌이라는 말도 자주 들어요. 이런 음식이 그리울 때도 있잖아요." 쌍화차, 대추차 5천원, 쑥수제비 5천원. 연중무휴. 오전 10시~오후 10시. 051-517-6170.

글·사진=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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