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종합예술' 실감나는 부산 남구 명소 3곳

입력 : 2010-03-18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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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취하고 손맛에 놀라고 그림에 정겨워라

▶▶음악이 흐르는 오아시스-'필하모니'

음식은 종합예술이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어떻게 버무리느냐에 따라 다른 맛이 난다. 누구와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서도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맛난 음식을, 멋있는 곳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 한다면 그 이상 행복이 없다. 부산 남구에서 '음식이 예술이자 문화'라는 사실을 실감케 해주는 고마운 집들을 만났다.

올곧은 철학을 가지고 각각 음악, 건축, 미술이라는 전공을 살린 공간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온통 CD·레코드판·공연 포스터 유럽 카페같은 그곳서 먹는 음식맛 그저그만!
지난해 말 부산의 음악카페 3곳을 모아서 소개했더니 시인 한 분이 가장 대표적인 곳이 빠졌다며 슬쩍 야단을 치셨다. 필하모니였다. 사실 필하모니는 오래 전부터 아는 단골집. 잘 아는 사람이 때로는 이렇게 모르는 사람 보다 못한 모양이다. 필하모니에 앉아있다 보면 늘 지금처럼 조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언제나처럼 조용한 게 또 미안해진다. 예술을 무척 사랑했던, 지금은 고인이 된 한 선배가 새파란 기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음악을 모른다는 건 인생의 큰 즐거움을 모르는 것과 같단다." 클래식을 들려주는 음악카페 필하모니를 알면 사는 즐거움 하나가 늘어난다.

들어서면 유럽의 오래된 카페 같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사방은 온통 CD와 레코드판이고 군데군데 공연 포스터가 보인다. 부산 음악계의 산 증인 조영석 대표와 부인 이희선 씨가 반갑게 방문객을 맞이한다. 조 대표는 1981년 중구 광복동에서 필하모니를 시작했다. 불이 나서 홀라당 태워먹기도 했고, 건물주가 부도나는 바람에 길거리로 나앉는 숱한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타고난 낙천주의자 조 대표는 "이왕 망해먹은 거…"하며 늘상 태평이다. 태풍이 불면 송도 바닷가에 가서 볼륨을 최고로 높이고 음악을 듣는다. 차가 파도에 휩쓸려 절체절명의 위기도 겪었단다. 자랑 비슷하게 하는 이 이야기를 듣다 이 씨가 한마디 한다. "나는 장사 마치고 우산 쓰고 가다 바람에 날려갈 뻔했는데, 태풍이 불면 좋다고 송도 가서 음악이나 듣고…." 미식가인 조 대표가 하는 집답게 생맥주도 확실히 맛이 있었다. 다 이유가 있다. 맥주 통에서 처음에 나오는 맥주를 1천700㏄나 버리고 가스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3일 이상은 절대로 놔두지 않는다.

식사류의 메뉴는 간단하다. 버섯해물라이스(1만3천원)와 오븐 스파게티(1만원) 두 종류. 스파게티의 면이 부드럽고 100% 오리지널 치즈를 사용한다. 버섯해물라이스는 재료가 모두 생물이어서 신선하다. 팔보채 같은 느낌도 난다. 남구 대연동 문화회관 앞. 영업시간은 낮 12∼오후 12시. 051-628-2592.

갤러리·소극장·레스토랑·술집 모두 갖춘 곳 "와! 뭐 이리 희한한 골목이 다 있노"
서울에서 인사동 골목을 걷다 참 '한국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산에는 그런 곳이 없을까? 부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꼭 한번 가보라고 이야기할 곳이 생겼다. 2008년 6월에 문을 연 '문화골목'. 2009년 '부산다운 건축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니 객관적으로도 증명이 됐다. 처음 와서 "와! 뭐 이런 희한한 곳이 다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갤러리, 소극장, 레스토랑, 술집을 모두 갖춘 공간이다.

갤러리 '석류원'(100년 된 석류나무는 골목의 상징)에서 그림 감상을 한 뒤 레스토랑 '다반(茶伴)'에 들어갔다. 새우 샐러드(샐러드 1만2천∼2만원)에 와인을 곁들였다. 직접 담근 피클이 시원하다. 시푸드 크림스파게티(1만∼1만3천원)에는 싱싱한 해물이 가득 들었다. 음식이 담백해서 마음에 든다. 2층의 소극장 '용천지랄'에는 연극을 보려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있다. 그 바로 옆이 음악카페 '노가다'이다. 무려 2만장이나 되는 LP판이 빼곡히 꽂혀 있다. 살벌하게 톱, 삽, 망치는 왜 걸어놓았을까? 오래된 음악이 많아서 '노가다(老歌多)', 최윤식 대표의 직업이 '노가다' 건축가이다.

층고가 높고 시원해서 외국인들이 특히 좋아한단다. 산미구엘 같은 맛있고 합리적인 가격의 생맥주를 마시기에 좋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붉은색과 자개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민 오리엔탈 바 '색계'. 그 과감한 색감이 유혹으로 다가온다. 그 옆에서는 오뎅바가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푸근한 민속주점 '고방'은 막걸리를 한 잔하기에 좋다. 지하에는 노래방 '풍금'이 기다린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잡동사니로 꾸며놓은 노래방은 장담컨대 없다.

지금의 문화골목 앞에서 음악카페를 운영하던 최 대표가 마주한 주택 네 채를 허물어 만들었단다. 온고지신이 즐겁다. 아침이면 새가 목욕하고, 하늘소와 개구리가 찾는 도심 속 쉼터이다. 최 대표는 "이걸 지키는 게 의무라고 생각한다. 지켜내야 할 게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경성대 건너편 센추리 오피스텔 2 블록 뒤. 다반의 영업시간은 낮 12시∼오후 12시. 051-625-0730.

결혼식·돌잔치 등 행사에 맞춰 디스플레이 "개인 미술관 열어서 요리 직접 하는 게 꿈"
예전에는 갤러리의 문턱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좋은 그림을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이가 있었다. 갤러리에다 레스토랑을 접목시켜보기로 했다. 지난 2000년에 이렇게 탄생한 '갤러리 앤 키친 포'가 10년이 넘었다. 힘든 세월을 견디니 열매가 열린다. 갤러리카페가 하나 둘 생겨나고, 이곳을 드나들다 본격적인 컬렉터가 된 사람들까지 생겨났다(부작용에 주의!). 모든 게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빨리 음식을 먹으려면 인스턴트로 갈 수밖에 없다.

생맥주를 시켰다(사실 분위기는 와인이 어울려 보인다). 500㏄(3천원)는 주석잔, 300㏄(2천원)는 꽃무늬 유리잔에 나왔다. 잔이 예술이다. 같은 음식도 어떤 그릇에 담아서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비로소 여유를 가지고 그림을 둘러보았다. 자체 소장한 유명 작가의 그림이 계절에 따라 번갈아 전시되고, 기획전은 일 년에 6번 열린단다. 결혼식, 약혼식, 돌잔치 같은 행사가 열리면 그림을 비롯해 디스플레이를 맞게 바꿔준다.

해산물 샐러드의 일종인 '마레 샐러드'(샐러드 류 8천∼1만원)가 나왔다. 신선한 야채와 부드러운 연어는 맥주 안주로도 그만이다. 직접 여기서 담는 피클은 아삭거린다. 메뉴 종류가 생각보다 많다. 안 먹어본 걸로 먹어보기로 했다. 메로 스테이크(2만7천원)가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생선은 역시 뼈까지 빨아먹어야 맛이다. 커피도 직접 만든 도자기 잔에 나온다. 맛있다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비쌀 것 같다는 선입관에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와보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단다.

레스토랑이 아니라 왜 키친일까? 박경숙 대표는 "내가 못 먹는 음식은 절대 내놓지 않는다는 신조로 엄마가 요리하는 부엌을 지향한다. 개인 미술관을 열어서 요리를 직접 하는 게 꿈이다"고 말한다. 리조또(1만원), 파스타(1만∼1만2천원), 스테이크(3만5천원), 코스요리 5만원. 남구 대연동 소방서 맞은편 현대오피스텔 1층.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오후 11시. 마지막 일요일에는 쉰다. 051-626-8636..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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