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는 없다 외식업은 냉혹한 전장 이 남자의 소신

입력 : 2010-05-27 15:50:00 수정 : 2010-05-27 16: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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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맛집을 취재하며 신기한 우연(?)에 마주쳤다. 각각 따로 정보를 듣고 취재하기 위해 방문했던 식당 두 곳의 주인이 같은 사람이었다. 상호는 물론이고 업종, 지역이 다른데 주인이 한 사람이다. 알고 보니 이 주인은 부산과 경남 양산에서 모두 5곳이나 되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외식업 CEO'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갑자기 경계심이 생겼다. '식당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걱정 때문이다. 어쨌든 여러 사람들이 추천한 식당 주인이다 싶어 그만의 맛 철학을 듣고 싶었다. 두 식당은 사상구 괘법동 서부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위치한 '이병우 설농탕'과 부산진구 당감동 백양터널 입구에 자리잡은 '백양골'이다.


사람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듯 싶다. 오늘 소개할 두 맛집의 공통점인 주인, 박진수(45)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식당 주인 치고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대기업 회장 비서실, 기획조정실에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기업에 소속된 프로 스포츠단의 살림을 맡기도 했다. 그가 살림을 맡는 동안 1만 5천여 석의 경기장을 몇 번이나 채웠고 국가대표 축구팀의 공식 응원단 '붉은 악마' 탄생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대기업 회장 비서실 등 화려한 경력
4년간 40만㎞ 달리며 전국 맛집·식자재 분석

치밀한 준비 후 '이병우 설농탕' 개업 대박
부산 경남서 음식점 5곳 성공 경영


그가 풀어 낸 삶의 궤적은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16남매 중 15번째로 태어난 이야기부터 요모조모 소설로 써도 될만큼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는 음식 이야기, 맛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본인의 이야기보다는 현재 그가 미쳐(?)있는 맛 이야기를 써 달라고 했다.

'40만㎞'. 회사를 나와서 음식점을 준비하며 4년간 전국의 맛집을 찾아 달렸던 기록이다. 그는 혼자서 운전을 하며 전국의 소문난 맛집, 서비스가 뛰어난 집, 색다른 메뉴와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곳을 찾아다니며 분석했다. 식당 뿐만이 아니다.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 또 그만큼 달렸다. 신안 천일염, 산청의 채소 등 현재 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자재의 산지는 그의 탐구 여행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대기업에서 철저하게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치밀하게 준비하는 법, 냉혹하게 결과를 예상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걸 음식업에 적용했습니다.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조리사는 아니었지만 뛰어난 조리사를 찾아내서 손님의 취향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그걸 감동적인 서비스로,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박 사장은 식당의 운영을 한 마디로 정의했다. '리듬 속의 전율'이란다. 종업원들은 리듬을 타며 신나게 서비스를 하고 고객은 식당의 서비스, 맛에 전율을 느끼고 감동을 안은 채 돌아가야 한다. 박 사장은 지금 이병우 설농탕 체인점 사업도 준비 중이다. 박 사장표 '리듬 속의 전율' 식당을 좀 더 많은 지역으로 전파하겠다는 생각이다.

"식당은 가장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운영을 해야 합니다. 체인 사업을 하는 것도 그렇게 정직하고 행복한 식당 동지들을 모으겠다는 의도지요."

인터뷰를 마치며 저녁에는 서울로 출발한다고 했다. 어린이에 대한 서비스가 뛰어난 식당을 찾아냈다며 거기를 돌아보고 분석해야 한단다. '추진력 최고'라는 박 사장의 별명을 떠올리며 조만간 부산에도 괜찮은 어린이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식당이 생기겠다 싶었다.


장사진 이루는 그의 맛집들

이병우 설농탕

철저한 준비 끝에 박 사장이 내 놓은 첫 작품이 사상의 '이병우 설농탕'이다. 6년 전 문을 연 이 집은 사시사철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룰 정도로 성공을 했다.

이 집의 맛은 2명의 음식 장인에 의해 탄생했다. 상호에서 알 수 있듯 서울에서 설렁탕의 원조로 불리는 이병우 할머니가 그 중 한 사람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박 사장이 이병우 할머니에게서 전수받은 것이 설렁탕이 아니라 깍두기 담는 비법이라는 것.

"할머니 설렁탕집에 갔는데 깍두기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완전 새로운 세상이 열리더군요. 아, 이건 무조건 우리 가게에 선보여야겠다 싶었어요. 근데 그 집 설렁탕은 부산 사람들 입맛과는 조금 달랐어요. 좀 싱거운 느낌이더라고요. 부산 사람들은 탕은 진하고 오래 우린 국물맛을 제맛으로 치거든요."

진한 설렁탕 맛을 낸 사람이 또 한 명의 음식 장인, 김정석 조리이사이다. 박 사장은 김 이사에 대해 '이 시대 최고의 명장'이라고 칭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모 갈빗집의 조리장이던 김 이사를 박 사장이 최고 대우로 스카우트 해 왔다.

그리고 유명한 돼지국밥집 옆에 가게를 열며 정면승부를 했다. 진하고 담백한 설렁탕과 깊이있는 깍두기의 조화가 대박을 터트렸다. 조리이사의 특기였던 냉면과 보쌈까지 내 놓았다. 설렁탕집에 웬 냉면과 보쌈인가 싶었는데 조리 명인, 김 이사의 솜씨는 역시 진가를 드러냈다. 직접 맛을 보니 한약재에 매콤한 고추가 곁들여진 육수가 입맛을 사로잡았다. 설렁탕집이지만 현재 설렁탕, 냉면, 보쌈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팔리고 있다. 설렁탕 6천 원, 냉면 5천 원, 보쌈 2만 원. 연중무휴, 24시간 운영. 051-325-5550.

백양골

당감동 백양터널 입구에 자리잡은 숯불구이 전문점 '백양골'. 박 사장은 이 집에 대해 '자부심과 자존심, 역사가 얽힌 곳'이라는 다소 과한(?) 표현을 썼다. 이 곳에서 박 사장은 9대 째 살고 있다. 박 사장 집안의 역사와 조상의 땀이 배인 이 곳에서 4년 전 '꼬질'이라는 이름으로 고기 식당을 시작한 것이다.

"16남매를 기르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처음엔 '꼬질'이라는 상호를 붙였죠. 꼬장꼬장했던 그 양반의 성품처럼 깐깐하게 좋은 음식을 따져서 내 놓겠다는 의미였죠. 근데 사람들은 '꼬질'이라는 말에서 더럽다는 의미를 떠올리더라고요. 그래서 얼마간 고전을 하다가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김해부터 강원도 횡성에 이르기까지 '좋은 고기 찾기 삼만 리'를 통해 최상의 고기를 찾아냈다. 고기의 질은 인정받았는데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고객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던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이름을 바꾸며 다시 도전을 한 것이 지금의 '백양골'이다.

보성의 돼지 사육 농장에서 최상의 녹차 삼겹살을 찾아냈고 수입 고기 중 한우와 대적할만한 고기 질을 확보하며 가격은 대폭 낮췄다. 6천~8천 원대로 질 좋은 쇠고기, 돼지고기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일단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조리이사의 탄탄한 실력이 돋보이는 양념 고기는 단번에 인기 메뉴로 등극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묵이나 샐러드류는 여기서 직접 개발한 소스, 양념으로 버무려져 맛깔스럽다. 소양념 꿀갈비 6천900원, 갈비살 5천900원, 보성녹돈삼겹살 7천500원. 연중무휴. 오전 10시~오후 10시. 051-898-3344. 글·사진=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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