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으로 꽉 잡았습니다

입력 : 2010-07-29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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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맛집 주변에 있다고 기죽지 않느냐고요? 천만에!

얼마전 여름 휴가로 부산을 찾은 지인을 따라 꽤나 유명하다는 A 식당엘 갔다. 지인은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들러볼 요량이었단다. 가게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이 그 명성을 잘 설명하고 있었다. 기다리기를 10여 분. 슬슬 진력이 난다. 그 때 눈에 들어온 맞은편 B 식당. A 식당과 거의 같은 메뉴였지만, A 식당과는 달리 길게 늘어선 줄 따윈 없다. 문득 저 식당의 살아가는 법이 궁금해졌다. 

'1등 맛집' 주변에서 같은 메뉴로 경쟁하고 있는 식당. 마치 '엄친아'의 이웃에 사는 고등학생의 기분일테다. '옆집에 누구는 모의고사 성적이 얼마라더라.'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소문난 춘천 막국수

사직동 '소문난 주문진막국수'옆
메밀로만 만든 면 그윽한 맛 자랑

'1등만 기억하는 세상.' 모 코미디언의 유행어다. 코미디언의 우스갯소리로 넘겨버리기엔 마음 한편이 뜨끔하다. 살아가면서 1등 한 번 해봤던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어데 세상에 1등만 있다더냐? 한 사람의 1등을 위해, 하나의 1등 기업을 위해 수많은 2, 3등이 존재한다. 1등에 가려진 2, 3등이야말로 바로 우리 자신이고, 우리네 이웃이다. '1등 맛집'이 별거냐? 열심히 자신만의 맛을 만들어내는 식당이 바로 '1등 맛집'이다. 이번 주는 유명한 식당을 애써 지나쳐 그 옆 식당의 문을 두드려봤다.

■사직동 '소문난 춘천막국수' ('소문난 주문진막국수' 옆)

사직야구장 옆 '소문난 주문진막국수'(이하 주문진)라면 알만한 사람은 다들 아는 유명한 맛집이다. 허름하고 좁은 가게에서 시작해 이제는 번듯한 건물을 올렸을 정도. 그러다보니 점심 시간엔 10~20분 줄 서기는 기본이다.

그런데 지난 2006년 '주문진' 건물로부터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소문난 춘천막국수'(이하 춘천)라는 작은 가게가 들어섰다. "가족들이 함께 '주문진'에서 외식을 했어요. 그런데 내가 만들어도 못지 않게 만들 자신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을 설득해 가게를 열게 됐죠."

주인 강유진(49·여) 씨의 말이다. 막국수 가게를 열게 된 계기란다. 거기까진 좋다. 그러나 굳이 일부러 '골리앗'의 동네에 들어와 싸움을 거는 '다윗'의 깜냥은 뭘까? 범인(凡人)의 상식으론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강 씨는 역발상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부산 전역에서 사직동으로 막국수를 먹으러 온다는 점에 주목했죠. 그 사람들을 우리 가게로 끌어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근의 유명세를 이용해보자는 심산이었죠."

그래서 '주문진'에 줄이 늘어선 것을 보면 오히려 기분이 좋단다. 저 사람들 중 기다리다 지치면 '춘천'으로 올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 '춘천'에 발을 들인 손님은 단골로 만들 자신도 있었다. 그것은 맛에 대한 자신이었다. 강 씨의 남편 김효식(55) 씨는 개점 전 몇달간 막국수의 진미를 배우기 위해 춘천으로 유학(?)을 다녀오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위에 이 집만의 비법을 만들었다.

우선 전분을 섞지 않고 메밀로만 면을 만들기 때문에 맛이 그윽하다. 전분이 없어 찰기가 조금 떨어질 수도 있지만 삶은 즉시 얼음물에 담가 찰기를 살렸다. 게다가 화학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다시마, 보리새우 등 맛을 내기 위한 천연 식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젊은 사람들보다 중년층에게 더욱 인기다.

2년 째 넘어서면서 조금씩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옆집 만큼은 아니지만 장사도 꽤 된다. 막국수 5천 원.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 연중 무휴. 051-502-8588.


장원 왕순대 돼지국밥

대연동 '쌍둥이돼지국밥' 맞은 편
기름기 없는 뽀얀 국물 담백한 맛

■대연동 '장원왕순대돼지국밥' ('쌍둥이돼지국밥' 맞은편)

대연사거리 인근 '쌍둥이돼지국밥'(이하 쌍둥이)은 '전국구' 식당이다. 손님들 중에는 외지 사람들이 절반이다. 돼지국밥이라는 음식이 부산·경남의 음식이다보니 타지에서 부산에 온 김에 돼지국밥 한 번 먹어보자며 찾아오는 손님이 많기 때문.

그러나 '쌍둥이' 맞은편 도로 건너에 '장원왕순대돼지국밥'(이하 장원)을 아는 사람은 부산 안에서도 그다지 많지 않다. 문 앞에는 2004년도 본보 '맛집' 기사가 붙어 있다. 그런데 이 집과는 전혀 관계 없는 기사다. 특이하다. 알고보니 맛을 전수받았단다. 그래도 특이하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지난 2006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인근의 '전국구' 국밥집을 상대로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는 식당. 그 전에도 그 자리에 국밥집이 있었지만 1년이 채 안돼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당시 식당 개업을 준비하며 그 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조연자(59·여) 씨가 가게를 이어받았다.

망해나가는 식당을 인수한 데에는 인근 '쌍둥이'와는 다른 자신만의 국밥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선 '소문난 춘천막국수'가 옆집의 유명세를 자기네 것으로 이용했다면, '장원'의 조 씨는 그저 초연하다.

"그 집(쌍둥이)은 그 집대로 장사하는 거고. 저야 저대로 장사하는 거죠. 우리집 국밥이 맛있으면 우리집으로 오는 거고. 입 맛이야 다 다르니까. 처음엔 '배짱 좋다'는 말 좀 들었죠. 그런데 와보시면 다들 맛있다고 그래요."

일단 돼지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국물이 보기에도 뽀얀 것이 한 술 뜨니 담백하다. 국물만 먹어서는 돼지국밥인지 곰국인지 모를 정도. 국물을 끓이는 동안 심할 정도로 기름을 걷어낸다고 한다. 24시간 영업 방침도 눈길을 끌었다. 밤늦게 옆집을 찾아왔다가 영업이 끝난 것을 알고 이 집으로 오는 손님들이 꽤 된단다. 그러고보면 말은 초연하게 해도 옆집이 신경에 쓰이긴 쓰이나보다. 돼지국밥 5천 원. 연중무휴. 051-624-6242.

글·사진=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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