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는 동안 여름 어떻게 났나

입력 : 2010-08-12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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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냉라면 '히야시주카'

'치치부'의 이상훈 주방장이 고명을 얹은 면 위에 '비장'의 국물을 부어 히야시주카를 완성하고 있다.

덥다. 더위에 지쳐 입맛 떨어지기 십상이다. 점심시간만 되면 뭘 먹을지가 고민. '이건 어때, 저건 어때?' 옆에서 동료가 말하는 메뉴는 다 그저 그런데, 그러면서도 마땅히 먹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때 입맛을 돋우는 색다른 음식만큼 반가운 것이 없다. 이번 주에 소개하려는 '히야시주카(冷やし中華)'도 바로 그런 먹을거리다.

히야시주카. '차가운(히야시·冷やし) 중화요리(주카·中華)'란 뜻이다. 그런데 일본식 면(麵) 요리다. 자장면이 중국집에서 판다고 중국 음식이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다. 마찬가지다. 중국식 요리에서 유래했다고는 하나 현지에서만 독특하게 발달한 음식이라고나 할까. 차가운 면 위에 햄, 오이, 달걀 지단 등 다양한 재료를 얹은 후 시원한 국물을 붓는다. 이 때 국물은 흥건하지 않고 자작한 듯 모자른 것이 보통이다.

일본에서 히야시주카는 여름을 알리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식당 메뉴에 히야시주카가 덧붙여지면 "아! 이제 여름이구나" 할 정도다. 마치 우리나라의 팥빙수(음식은 전혀 다르지만), 혹은 냉면(이건 좀 비슷하다) 같은 지위다. 그런데 최근 부산에서도 이 음식을 종종 볼 수 있게 됐다. 일본식 라면집이 성행하면서부터다. '히야시주카'라는 이름이 어려워 '냉라면'이라는 한국식 이름으로 바뀐 곳도 종종 있다. 그런데 사실 라면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한국의 냉면처럼 현지선 여름 알리는 대표음식

해운대 '치치부'
사케 끓여 국물낸 뒤 푸짐한 고명

서면 '쿠마'
일본 간장으로 맛낸 살얼음 국물


해운대 '치치부'

해운대 마린시티에 있는 '치치부(秩父)'는 전통 일본식 라면집. 이상훈(39) 주방장이 일본 사이타마(埼玉)현의 소도시 치치부로 건너가 6개월간 직접 그 비법을 전수받았다. 주방장의 히야시주카 역시 일본의 치치부에서 만드는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이곳 히야시주카의 가장 큰 특징은 국물이다. 일본 사케를 끓여 알코올을 증발시킨 뒤 여러 양념을 보태 간을 한다. 엄연히 국물인데도 물은 한 방울도 따로 넣지 않는다.

"사케로 국물을 만들면 좀더 깔끔하고 새콤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사케 본연의 그윽한 향도 은근히 남아있으니 일석이조이지요. 다만 사케가 워낙 비싸서…." 주방장의 설명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물은 냉장 보관한다. 이후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즉석에서 삶은 면에 갖은 고명을 올린 후 미리 만들어놓은 국물을 부으면 완성.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돈다. 주방장의 설명을 막고 나선다. "일단 먹고 보지요."

히야시주카의 양이 생각보다 많다. 찬 음식은 아무래도 뜨거운 음식보다 먹기 편하고 또한 많이 먹힌다. 그래서 1.3인분의 양으로 만든다고. 세심한 배려에 또 한 번 감동한다. 한국 사람들, 국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국물도 일본 전통식보다 조금 많이 붓는다고.

겨자를 풀어 국물부터 한 숟갈 떠본다. 시원한 국물의 목 넘김이 좋다. 그런데 국물이 목구멍을 다 넘어간 뒤에도 입 속에서 파릇하게 풀리는 향이 있다. 이거, 정말 좋다. 탄산음료도 아닌데, '톡' 쏘는 느낌이 있는 것도 아닌데, 탄산음료 이상으로 청량하다.

달걀 지단, 돼지고기 등 고명도 푸짐하다. 처음 차려져 나왔을 때, 고명 아래 면(麵)이 보이지 않을 정도. 고명을 뒤져 면을 끌어올려 먹어본다. 쫄깃쫄깃한 씹히는 맛이 일품. 다시 국물 한 숟갈. 게 눈 감추듯 해치울 것 같았지만 먹어도 먹어도 양이 줄어들지 않는다.

한 그릇 9천 원. 비싸지 않냐고? 맛 대비, 양 대비 가격은 결코 비싸지 않다.

이달 말까지 한정 판매한다니 얼른 맛보시길 바란다. 해운대 마린시티 대우월드마크 1층 상가에 위치. 영업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이지만, 8월은 자정까지 연장영업한다. 설날, 추석 당일 휴무. 051-731-7790.

서면 '쿠마'

서면에 5년이 넘도록 일본식 라면을 팔고 있는 가게가 있다. 그만하면 제법 오래됐다. 바로 '쿠마'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7~9월까지는 라면을 팔지 않는다. 라면집에서 라면을 팔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석달 동안 라면 대신 히야시주카만 판다. 이런 가게 처음 봤다.

"한국에서야 '냉라면'으로 소개되지만 라면과 히야시주카는 전혀 다른 음식입니다. 작은 가게에서 두 음식을 동시에 만드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에 여름에는 히야시주카에만 전념하고 있지요." 장춘표(32) 사장의 설명이다. 상호명 '쿠마'는 일본어로 '곰'이라는 뜻. 사장의 별명이란다. 별명답게 우직하다.

처음에는 7~9월에 매상이 뚝 떨어졌단다. 라면 먹으러 왔다가 라면은 안 한다니, 황당해하며 돌아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소의 매상만큼 올라온다고. 사람들 입소문이 무섭다.

이곳 히야시주카의 특징은 살얼음이 낀 국물. 이곳 역시 국물이 흥건하다. 생닭을 삶아 만든 육수에 일본 간장으로 맛을 낸 후 살얼음을 띄운다. 시원하기로만 따지면 팥빙수 못지 않다. 얼음과 함께 먹는 면이라서 그런지 씹히는 느낌이 더욱 쫄깃쫄깃하다. 이 맛에 히야시주카를 먹는 것이리라.

고명은 각종 채소와 토마토. 보통의 히야시주카에 올라오는 돼지고기 고명은 없다. 고기가 없다고 허전해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고기 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서란다. 덕분에 음식값도 싸진다. 한 그릇에 6천원.

다만 일본 간장이 국물 양념의 기본이라서 그런지 국물 맛이 다소 강한 느낌이다. 일본 특유의 국물 맛을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국물 한 그릇을 다 비우기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서면 동보서적 뒤편 옛 공구상가 골목 안에 있다. 주디스태화 신관 뒷 건물에 위치한 파스쿠치 커피점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영업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9시30분까지이나 재료가 떨어지면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 051-805-8882.

글·사진=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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