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시원하게 때론 따뜻하게 국수 한 그릇 하실라우

입력 : 2010-08-19 16:13:00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경상도에는 밥 대신 국수를 먹을 정도로 국수 문화가 발달했다. 국수는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맛있는 국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사진은 안동의 건진국수.

기행 1. 부산 구포국수

멸치 육수 속 짭조름한 바다
담백하게 한 모금 한 젓가락

구포국수를 생각하면 언제나 '짭짤한' 바다 냄새가 난다.

부산에 살면서 구포국수 맛을 본 적이 없다면,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바다에 한 번도 안 가본 것과 같다.

예전에 국수 하면 두 말 할 것 없이 구포국수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구포의 국수공장은 수십 개에 달했다.

구포는 낙동강 하류의 염분 섞인 바닷바람이 불어와 국수를 자연 건조시키기에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세월이 바뀌면 사람들의 입맛도 달라지는 것일까. 구포 일대에서 구포국수를 만드는 공장은 현재 단 한 곳에 불과하다.

면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어떤 이가 제대로 된 구포국수를 먹고 싶으면 금정구의 '구포촌국수'를 가보라고 했다. 구포가 아니었지만 상호도, 광고 문구도 촌스러워서 맘에 든다.

'저희 구포촌국수는 국수 한 가지만 고집합니다. 국수 한 가지 맛만 고집합니다. 국수 한 가지 정성만 고집합니다.'

메뉴는 오직 물국수 뿐. 당신은 양만 정하면 된다. 보통 3천 원, 곱빼기 3천500원, 왕 4천 원이다.

'왕'이 모자라는 사람을 위해 '대왕'이란 크기로 주문도 받는다. 맙소사! 대왕은 곱빼기 3배의 양이다.

곱빼기로 시킨 국수가 나왔다. 국수 위에는 양념장, 부추, 단무지, 깨, 김 가루가 고명으로 나왔다. 청량고추를 올리니 색이 더 조화롭다.

주전자에 따로 나온 멸치 육수 맛을 보았다. 멸치와 무를 넣어 24시간 고아내 담백하면서 진하다. 국수 한 젓가락 먹고, 육수 한 모금 마시고, 또 한 젓가락, 또 한 모금 먹다보니 한 그릇이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다.

그냥 가면 틀림없이 후회할 것 같아 이번에는 보통으로 다시 한 그릇을 시켰다. 역시나 후루룩하며 없어졌다.

맛있다, 참 맛있다는 소리가 자꾸 나온다. 예전에는 멸치 대신 뭐로 육수를 냈을까. 머릿속에서 멸치 생각이 점점 커진다. 강은교 시인은 여기를 다녀가며 '늘 출렁이소서'라고 썼다.

구포촌국수.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30분. 금정구 남산동 989의 13. 외대구장 올라가는 길 맞은편. 051-515-1751.

기행 2. 의령 의령소바

일본 갔다 돌아온 메밀 면
장조림 더해 어우러진 맛

소바는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뜨거운 국물이나 차가운 간장에 무, 파, 고추냉이를 넣고 찍어 먹는 일본 요리를 말한다.

바닷가도 아닌 경남 의령의 의령소바가 어떻게 이름이 났을까. 알고 보니 의령소바는 일본에서 영향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의령군으로 돌아온 한 할머니가 일본에서 배워 온 소바를 퍼뜨려 의령소바의 원형이 된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 조선에서 건너간 원진 스님이 일본에 메밀과 밀가루를 섞어 국수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줘 지금처럼 일본에 소바가 퍼지게 되었는데.

하지만 의령소바는 일본 소바와는 아주 다른 음식으로 발전했다. 의령소바로 이름난 '제일소바'에 찾아갔다.

우선 냉소바와 비빔소바를 하나씩 시켰다. 냉소바에는 살얼음이 깔리고 쇠고기 장조림, 오이, 배 등이 고명으로 올라온다. 비빔소바도 쇠고기 장조림이 국수와 같이 씹혀서 고소하고 든든하다. 국수만 먹을 때의 허전한 마음이 사라졌다.

다 먹고 나서야 잘못 시켰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령소바는 따뜻한 국물에 말아먹는 온소바를 먹어야 한다. 육수부터 다르다.

냉소바는 소뼈, 온소바는 멸치 육수를 사용한다. 따뜻하게 나온 의령소바는 멀리서부터 진한 멸치 육수의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 육수를 먹고 해장을 하기 위해서 줄을 선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육수 맛이 달라졌다. 좀 전에 가져온 멸치 육수를 부었는데 따뜻한 의령소바의 육수에서는 향긋한, 전혀 다른 맛이 난다. 어찌된 일까.

제일소바 박시춘 대표는 "수프만 끓이면 맛이 없듯이 장조림, 파, 시금치, 면에서 국물이 우러나와 궁합이 잘 이루어진 맛이다"고 설명한다. 멸치 국물에 장조림 국물을 섞어 육수가 되고, 재료들이 같이 어우러져 의령소바의 국물 맛이 된다. 재료가 서로 어울려야 의령소바이다.

주말이면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는데 90%가 객지 손님이다. 의령에는 제일소바를 비롯해 의령소바집 세 곳이 있다. 의령 근처만 가도 그 향기가 날 것 같다

제일소바. 소바, 비빔소바, 냉소바 모두 6천 원. 영업시간은 오전 9시∼오후 8시30분. 경남 의령군 의령읍 중동리 394의 44. 055-572-3863.

기행 3. 포항 모리국수

어부의 지친 속 달래주는
해물탕보다 더한 푸짐함

경북 포항 구룡포항에 가면 모리국수가 있다.

"모리국수가 뭐꼬?" "모리국수도 모리나? 여럿이 모여 냄비째로 '모디'(모아의 사투리)가 먹는다고 해서 모리국수 아니가." 사람들이 음식 이름을 묻자 "나도 모린다(모른다)"고 말해서 모리국수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모리국수는 해산물로 만든 어탕국수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먹어보니 어탕국수보다 오히려 해물탕에 가깝다.

42년 동안 구룡포 읍내에서 '까꾸네 모리국수'를 운영하는 이옥순(67) 씨는 "어부들이 어판장에서 팔고 남은 생선을 판잣집으로 가져와 국수 넣고 끓여달라고 해서 만들어준 게 모리국수의 시작이다"고 말했다.

이 씨는 돈 1만 원을 빌려서 시누이집 마당에서 판잣집으로 시작했다. 아이들 3명 공부시킨다고 스물다섯 젊은 나이부터 몸이 으스러지게 일했단다.

까꾸는 막내딸의 어릴 때 별명. 예쁘다고 동네 사람들이 "까꿍, 까꿍"하다 보니 까꾸네가 되었다.

예전에 구룡포에는 수산물이 넘쳐났다. 배를 타고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부들은 속을 따뜻하게 풀어줄 국물이 무엇보다 필요했을 것이다.

이 씨는 새벽 4시가 되면 국수를 한 '다라이' 삶았다. 생선은 전부 잘 양념해서 냄비에 담았다. 그러면 자기들이 알아서 가져다 연탄불에 끓여 먹었다. 국수가 불어도 상관을 안했다.

이 씨는 냄비에 미리 준비해 놓은 익힌 아귀와 아귀 내장, 홍합, 새우, 미더덕 등을 한 움큼씩 넣었다. 여기다 콩나물, 파, 고춧가루, 마늘로 다진 양념장을 섞어 끓였다. 지금은 철이 아니라 대게가 빠져서 아쉽지만 맛은 비슷하단다.

다른 냄비에서 끓인 국수(풍국면)를 부어 또다시 끓인 후 식탁에 내놓았다. 침이 자동으로 넘어간다. 아이고 좋아라. 이 뜨끈하고 화끈한 것은 무엇인가. 옛날에 먹어본 기억이 나는 것은 또 왜인가.

해물이 많이 들어갔지만 비린 냄새가 전혀 없고 국물이 껄쭉하고 시원하다. 이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국수이다. 막걸리와 썩 잘 어울린다.

까꾸네 모리국수. 1인 5천 원(2인부터). 영업시간은 오전 8시∼오후 8시.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957의 3. 옛 구룡포 종점 세븐일레븐 뒤. 054-276-2298.

기행 4. 안동 건진· 누름국수

고소하게 퍼지는 콩 냄새
그릇 가득 여인네 손 정성

사실 '안동국수'보다 '안동국시'가 훨씬 더 귀에 익었다. 이 시골양반이 어느새 서울까지 진출해 까다로운 서울 사람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단다. 안동국수하면 칼국수로, 건진국수와 누름국수(사진)가 있다고 했다.

이 두 가지 국수를 다 맛보고 싶다고 안동시청에 부탁해 '부숙한정식'을 소개받았다. 한정식 집에서 웬 국수일까. 10년 넘게 안동 음식과 궁중요리를 배우고 연구했다는 부숙한정식 남창숙 대표가 칼국수 빚는 모습을 지켜봤다.

손으로 반죽을 치대는 손 반죽만 30여 분. 다음은 수십 차례에 걸쳐 밀고 펴고하는 홍두깨 작업이다. 차갑게 먹는 건진국수용은 얇게(칼국수의 면발이 그렇게 얇게 나올 줄은 몰랐다). 따뜻하게 먹는 누름국수는 약간 굵게 썰어낸다.

남 대표는 "안동국수는 예부터 여인네들의 정성을 담아 손님들에게 내놓던 귀한 음식이다"라고 말한다. 안동국수에는 정성이 깃들어 있어야 하니 공장에서는 절대 만들지 못하는 물건이다.

콩가루 음식이 많은 안동은 국수에도 밀가루와 콩가루를 2 대 1로 섞어 버무린다. 안동국수는 콩가루가 들어가 더 고소하다. 고소한 냄새가 저 멀리서 난다.

건진국수는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군 다음 건져내 장국에 고명을 얹어 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담백함과 찬물에 식혀낸 면발의 쫄깃함이 한데 어우러져 입천장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난다.

양반 음식인 건진국수에는 격조가 있다. 이전에는 은어를 달여낸 육수에 오색 고명을 얹어 냈다. 요즘에는 주로 닭 육수를 많이 낸다. 양념장으로 간을 맞춰 비벼 먹으니 호사한다는 느낌이 절로 난다.

누름국수는 서민들이 손쉽게 즐겨 먹었던 국수이다. 멸치장국에다 애호박, 파, 나물 등을 썰어 함께 끓여냈다. 맑은 야채국물 속에 든 국수 면발을 꺼내 역시 간장 소스를 부어 비벼먹으니 부드럽게 들어간다. 소박한 느낌이 난다. 비슷한 두 가지 국수에서 서로 다른 느낌을 비교해봐도 재미있다.

부숙한정식. 안동국수 7천 원. 영업시간은 낮 12시∼오후 10시. 1·3주 일요일은 쉰다. 안동시 목성동 38의 8. 안동시청 부근. 054-855-8898. 글=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사진=김경현 기자 view@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