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우련의 미국LA뉴욕미술기행] <24> 움베르토 보치오니 '공간속에서의 연속적인 단일 형태들'

입력 : 2010-08-26 15:47:00 수정 : 2010-08-27 0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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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옷자락 곡선에 담긴 '시간의 연속성'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조각 '공간속에서의 연속적인 단일 형태들'은 걸어가는 사람의 속도감, 즉 시간 속의 운동성을 율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속도와 운동, 움직임을 회화적 기계적으로 표현한 이탈리아 미래파의 선언이랄 수 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마치, 바람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퍽 닮았다. 우리는 바람을 눈으로 보지 못한다. 바람은 형상이 없다. 나뭇잎과 창문이 흔들리는 것, 살갗에 선뜻하게 닿는 감촉으로 다시 살아야겠다고 느끼는 것. 그것으로 바람이 분다는 것을 알 뿐이다.

시간도 그렇다. 시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아침이면 해가 뜨고, 음식이 상하고, 사랑이 변하고, 사람이 늙는 것. 그것으로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흐르는 것을, 느낀다.

칸트 훗설 하이데커 아인슈타인 베르그송…. 굳이 시간에 대해 설파한 그 많은 철학자들의 이름을 대지 않더라도 '시간이란 흐르는 것'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속도에서 파생하는 것'이라고 했고, 베르그송은 '운동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속성'으로 보았다.

시간이란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는 느낄 수 없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가지를 묘사할 때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 같다는 표현을 쓴다. 시간이란 이렇듯 동력이 있을 때 느껴지는 것이다.



미래파 선언 "속도와 운동의 세기가 될 것"

이탈리아 미래파 작가들의 사유는 이 시간의 흐름과 운동의 연속성에서 시작된다. 1909년 시인 마리네티는 '미래파 선언'에서 20세기는 속도와 운동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디카로 걸어가는 사람을 연속적으로 찍어서 되돌려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력이 생기고 그 운동의 연속성이 한눈에 잡힌다.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파가 공간 속에서 단절된 동작을 드러내고 있다면 움베르토 보치오니를 중심으로 한 미래파는 사물의 형태나 운동을 단절되어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연속되는 것으로 본다.

보치오니는 "입체주의 화가들이 움직이지 않고 얼어붙은 사물의 정적인 면만을 그린다"고 비판했다. 그는 회화나 조각에서 시간성에 대한 물체의 연속성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인 미래파를 입체파보다 한 수 위라고 자부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는 이탈리아 미래파 작가들의 작품이 한 공간에 모여 전시되고 있었다.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대표적인 조각작품인 '공간 속에서의 연속적인 단일 형태들'(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 1913, 청동, 111.2×88.5×40cm)은 얼른 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봇처럼 생겼다. 하지만 이 작품은 로봇이 아니라 걷고 있는 인체 조각이다.



휘날리는 옷자락의 유동적인 곡선

보치오니는 1912년에 '미래주의 조각:기술선언'을 발표하면서 조각을 시작했는데 1913년에 들어서면서는 걷고 있는 인체에 지나칠 정도로 치밀하고 더욱 과감한 운동의 표현을 시도했다.

'미래주의 조각:기술선언'에서 "기계의 엄격한 금속성을 나타내는 직선이 압도적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휘날리는 옷자락이 마치 '흐르는 듯한 유동적인 곡선'으로 표현되었다. '직선'이 아니라 경쾌하고 유동적인 '곡선'과 힘찬 표현이 차라리 조화롭게 표현되었다. 이런 표현은 마치 화염과 같은 다리의 모습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걷고 있는 인체의 팔과 다리는 마치 바람에 펄럭이며 밀려나는 것처럼 돌출되기도 하고 패어들어가기도 하면서 여러 단면으로 심하게 분할되어 있다. 이것은 걸어가는 사람의 속도감, 즉 시간 속의 운동성을 율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속도를 표현하기 위해서 움직임이 큰 부분을 여러 겹으로 겹쳐서 그리거나 조각한 분할주의 기법을 사용했다.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오프닝 세리머니에서도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미래파의 분할주의 기법이 쓰였다, 스타디움 위로 슬쩍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던 분할된 빛이 바로 이탈리아 미래파 작가들 작품의 움직임과 연속성을 모티브로 한 것이었다. 그날 새벽에 현지에서 생중계를 하던 아나운서가 "스타디움 위로 움직이는 저 물체는 이탈리아 미래파 작가들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100년 전인 1910년대에 이미 회화에서 시간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새로운 회화의 길을 개척해나간 이탈리아 미래파의 그 앞서간 정신성에 새삼 감탄했었다.



이탈리아 미래파 '기계와 금속에 대한 경배'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되어 있는 미래파 작가들의 작품 중에 자코모 발라의 '가로등'은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된다.

이것은 순수 미래주의 작품 중 최초의 작품이다.

밤거리를 밝히는 가로등 램프를 배경으로 중심부에서부터 불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데, 그 운동성을 반복적인 빛의 그물로 강렬하게 표현하여 태양광선의 착시 효과를 만들어낸 서정적인 작품이다.

자코모 발라는 보치오니를 가르친 스승이지만 보치오니의 요청으로 미래파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그의 대표작으로 '줄에 매인 개의 리드미컬한 운동'이 있다. 스치듯 바삐 움직이는 애완용 개의 재빠른 발동작을 네 개가 아니라 열 개가 넘는 발로 그리고, 주인여자의 걸음걸이도 함께 재치있고 위트가 넘치게 그린 그림이다.

그에 비해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조각작품과 함께 전시된 3편의 연작 중 하나인 '심리상태(States of Mind 1)-표제:이별'(1911, 캔버스에 오일, 70.5×96.2cm)는 추상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은유로 차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봐야 했다.

이 작품은 '심리상태' 연작 중에서 가장 공을 들였는데 20세기의 기차역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기차역은 모네와 같은 19세기 화가들도 즐겨 그린 소재였다.

이 그림이 그들의 그림과 다른 것은 기차의 엄격한 금속성을 주 모티브로 삼아 기계문명 시대의 표현에 보다 더 중점을 두고있는 미래주의 화풍이란 것이다.



산업주의의 철을 소화할 내장을 가져야 할 것"

1909년에 프랑스 신문에 실린 '미래주의 선언문'은 낡은 것에 대한 부정과 "예술가는 산업주의라는 철의 양식을 소화할 수 있는 내장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했을 정도로 기계문명의 역동성을 예찬했다. 이 그림도 화면 가운데에 기차가 자리하고 있어서 화면을 지배하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기계로 보인다. 화면 중앙에 기관차 번호인 노란색 6943이란 숫자가 주는 느낌도 그렇다.

바람에 휩쓸린 비처럼 사선으로 찍힌 격한 붓질 사이로는 마치 밝은 차창에 비쳐지듯 떠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나타나 있다.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포옹하는 장면이다. 그것들은 타원형을 이루면서 혼란스러운 붓질로 표현되었다.

기차에서 뿜어내는 연기가 흩어지는 이러한 추상적인 표현은 헤어지는 사람들의 감정 표현에 효과적으로 느껴진다. 그림 속에는 그저 사물을 재현하는 식의 묘사는 거의 없다.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추상적인 리듬과 동력선이다.

움베르토 보치오니는 처음에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출판까지는 아니지만 실제로 소설을 쓴 전력이 있고 지방신문에 평론을 기고하기도 했다. 또 미래주의 회화론이라든지 미래파 작가들의 작품 전시용 카탈로그에 서문을 썼다고 하니 그가 미래파의 이론적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미래파 회화는 운동성으로 시간을 표현

이탈리아의 미래파가 세계대전과 보치오니의 죽음 이후에 서서히 소멸되긴 했지만 실패한 유파라고 말할 수는 없다. 멈추어있는 회화에서 운동성을 통하여 시간을 인식할 수 있는 회화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평면상에 흔적이나 형태가 갖는 이미지를 통해서 움직임을 느끼게 되는, 시간속의 운동성을 표현하는 방법을 끈질기게 찾아나간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 때문에 미래파가 후세에 남긴 영향력은 아주 근원적이고 장기적으로 이어졌다.

미래주의는 입체주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독일 표현주의와 모스크바 전위미술, 활판인쇄술, 유럽의 1920년대 건축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예술 그 자체를 뛰어넘으려는 니체적 초인주의의 본질을 행동지침으로 삼았던 미래파의 철학적 사유만큼은 어떤 유파보다 더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1882~1916)

이탈리아 레조니칼라브리아에서 가난한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생시절부터 미술과 문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한때 언론인으로 일했다. 회화 수업 초기에 당대의 모든 표현 방식을 섭렵했다. 자코모 발라에게서 회화 수업을 받았으며 1910년 마리네티 등과 미래파 선언에 서명하고 이론가로서 미래파 운동의 중심에 섰다. 1911년 이후 조각을 시작하여 1912년에는'미래주의 조각 선언'을 발표했다. 1916년 군대에서 훈련 도중 낙마하여 입은 부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화가로서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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