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 부른 허민 본명은 허한태

입력 : 2010-10-01 10:09:00 수정 : 2010-10-01 10: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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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백마강' '페르샤 왕자' '마음의 부산항구' 3대 히트곡을 불러 195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허민(사진). 그동안 생몰 연대가 분명치 않은 데다 본명조차 두 가지 이름으로 잘못 알려졌던 부산 출신 가수 허민의 본명과 작고 연대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부산의 대중음악연구가 김종욱 씨는 "10년 간 가수 허민에 관한 정보를 추적한 끝에 부산 구서동에 거주하는 그의 외동딸 허경자 씨로부터 허민의 본명이 '허한태'라는 것과 1929년에 출생해 1974년 작고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중음악연구가 김종욱 씨
허 씨 외동딸에게서 "확인"
1974년 폐렴 사망 사실도


지금까지 그의 본명은 국내 가요사 전문가들조차 '허민락' 혹은 '허민학'으로 알고 있었고, 생몰 연대 역시 전혀 알려진 바가 없을 만큼 그에 관한 자료는 희소했다.

김 씨는 "1960년대 조연급 배우로 활동했던 부산 출신의 조봉산 씨로부터 허민의 딸이 한 번씩 찾아온다는 정보를 전해들은 뒤 연락을 남겼다가 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에게서 허민이 1929년 경남 김해에서 출생해 지난 74년 폐렴으로 별세한 사실도 알게 됐다"고 김 씨는 덧붙였다.

부산에서 활동하면서 1954~57년 전성기를 누린 가수 허민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지금의 70대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허민은 50년대 초 '남조선콩쿠르대회'에서 2등을 한 뒤 한국전쟁 직후인 54년 '백마강'과 '페르샤 왕자'를 비롯한 8곡을 앞뒤로 배치한 첫 음반을 발표했다.

김 씨는 부산에 피난온 가수 한복남이 아미동에 세운 도미도레코드사에서 취입한 허민의 이 음반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 레코드 넘버가 D-101으로 찍혀 있고 '마음의 부산항구'가 실린 또 다른 음반엔 D-201이 찍혀 있는 것으로 봐서 이 음반은 55년도에 나온 것 같다"고 추정했다. 그 후 서라벌레코드에서 취입한 1~2곡의 음원이 더 있는데, 히트곡들은 60년대 손인호, 안다성 같은 가수들이 리바이벌해 다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김 씨는 "전문가를 통해 방송에서 제공되는 정보나 음악 서적의 내용들 가운데 제대로 가려지지 않은 엉터리가 많다"며 "가요사의 작은 진실 하나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각종 자료들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김건수 기자 kswoo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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