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구나! 후루룩~ 칼국수 넘기는 소리

입력 : 2010-12-02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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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니 국물 있는 음식이 그립다. 뜨끈한 국물과 보드라운 면발의 칼국수. 부엌칼로 국수 자르는 소리를 듣던 기억이 아련하다. 비라도 오는 날에는 더 그립다. 칼국수는 면을 만드는 방식에서 이름을 따왔다. 여기다 어떤 국물, 어떤 웃기를 쓰는가에 따라 정말 다양한 칼국수의 세계가 펼쳐진다. 

가장 한국적인 음식으로 꼽히는 칼국수. 부산에서 추어탕, 장국, 조개, 멸치육수 칼국수로 유명한 대표적인 칼국수 집들을 소개한다.



추어탕과 만난 '원옥 칼국수'

"추어탕 칼국수로 유명한 원옥 칼국수를 몰랐다고?" 소개해준 분이 더 의아해한다. 1976년 문을 연 이래로 30년 넘게 칼국수를 고수해온 소문난 맛집. 칼국수와 추어탕의 접목,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설마 미꾸라지가 귀띔해줬을 리는 없겠지.

원옥 칼국수 건물 근처에만 가도 벌써 구수한 추어탕 냄새가 난다. 배에서는 또 바로 신호가 온다. 가게는 생각보다 넓고 깨끗하다. 추어탕을 싫어하는 사람과 같이 갈 처지라면…. 걱정 마시라. 멸치, 쇠고기, 콩 칼국수는 물론 비빔·잔치국수까지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

여기까지 왔다면 역시 추어탕 칼국수 맛을 보아야 한다. 추어탕을 먹듯이 칼국수 국물에 산초, 고춧가루, 마늘 양념을 집어넣었다. 진한 추어탕 국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속이 바로 싸해진다. 칼국수로 이렇게 강렬한 맛을 낼 수 있다니 놀랍다. 기분 좋은 속 풀림이 금방 느껴진다. 늘 따라 나오는 귀여운 '밥 조금'도 고맙다. 칼국수에 밥까지 곁들여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뭐랄까, 이건 보기 드문 보양 칼국수 같다.

'원조'가 너무 흔한 세상이라 상호를 '원옥(元屋)'이라 지었단다. 오월선 대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려고 연구하다 추어탕 칼국수 집을 열었다. 우리 집은 얻어먹어도, 사줘도 서로 부담이 없어서 좋다"고 말한다. 배부르게, 기분 좋게 먹고 가는 집이다. 추어탕을 좋아하는 분에게는 특히 '강추'.

원옥(추어탕)·쇠고기 칼국수 5천 원, 기본(멸치) 칼국수 4천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부산 금정구 구서1동 420의 53. 금정구청 뒤편 온천천 도로 옆. 051-513-9960.



고추장이 든 장국 '사북 칼국수'

칼국수가 제대로이다. 하지만 이 집을 소개하는 일이 맞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허름한 외관에 어울리게 실내에는 테이블이 4개 뿐이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노부부가 소일거리 삼아 하는 가게. 게다가 사장님 몸이 안좋아 올해에는 문을 닫아두는 날이 많았단다.

메뉴판은 칼국수와 찌개 3종 세트 뿐으로 단출하다. 이 집 칼국수를 처음 보고 놀랐다. 아! 이 시뻘건 색감의 정체가 무엇일까. 알고 보니 멸치 육수에 고추장이 들어가 국물이 아주 얼큰하다. 이렇게 맵게 먹는 칼국수를 강원도에서는 '장국'이라 부른다. 사장님의 딸이 강원도 사북으로 시집가고, 그 곳 사돈에게서 배워서 부산 사람 입맛에 맞추었다. 칼국수 한 그릇에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인생의 매운 맛을 아는 분만 드시라'는 벽의 낙서가 그럴듯하다. 제일 좋은 밀가루를 쓴 덕분에 칼국수의 면도 좋다. 양이 원래는 정말 많았단다. 사람들이 하도 남겨서 요즘은 양이 좀 줄었다. 칼국수에 밥 좀 말아 드시라고 슬그머니 권한다. 지금까지 명함 한 장 안 만들고, 밥 먹으러 오라는 소리 한번 안 하고, 스티커 하나 안 붙이고 장사를 했단다.

이 집 사장님은 "일을 안 하면 몸이 더 아프다. 우리 아저씨랑 밥만 먹고 살면 되는데 가게 문을 열면 어쨌든 밥은 먹게 된다.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돈 벌어서 빵도 사먹는 재미로 장사한다"고 말한다. 또 "술을 좋아하는 우리 아저씨가 가게에서는 절대 술을 못 팔게 한다"고 뒷담화도 살짝 해준다.

칼국수 3천500원. 된장·김치·돼지찌개 3천500원.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7시. 일요일 휴무. 부산 해운대구 중동 1394의 81. 해운대구청 후문. 051-744-0117.



조개 국물이 시원한 '만도리'

이름도 특이한 '만도리(萬道裏)'. 칼국수만 딱 떼어내서 소개하려니 사실 미안하다. 이 집은 남해산 우럭조개를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조개 전문점이어서 그렇다.

일단 가게가 아담하고 분위기가 토속적이어서 마음에 든다. 입구에는 흰 고무신, 검정 고무신, 아기 고무신이 다정하다. 골방, 큰방, 정랑, 이렇게 방도 3개. 황토벽에 온돌은 따끈따끈하고, 은은한 우리 음악에 마음이 편해진다.

조개 칼국수와 조개 해장국 하나씩을 시켰다. 밥에 따라서 나오는 반찬 좀 보라. 마늘종, 무말랭이, 오이지, 김무침 등 반찬이 정갈하면서 종류도 많다. 칼국수의 조개 국물은 참 시원하다. 자극적이지 않고 수수하며 담백한 맛. 넉넉하게 들어간 우럭조개와 미역에서 우러난 육수에 쫄깃한 칼국수가 썩 괜찮다. 이 칼국수에는 바다가 한 그릇 들었다고 해야겠다. 우럭조개는 따로 초장을 찍어먹어도 좋다. 특히나 여자들이 좋아한다. 국물이 생각나면 일부러 찾아가는 집이란다. 진한 국물을 원하는 사람 가운데는 더러 심심하다는 불평도 나온다.

그릇은 전부 도자기를 쓰고, 다 먹고 나니 비싼 칡차를 대접한다. 정성이 느껴지는 집이다. '만도리'는 손님들이 많이 오라고 이름을 그렇게 붙였단다. 조개 파전과 동동주로 한 잔하기에도 그만이다.

조개 칼국수 5천 원, 조개 파전 1만 원, 조개 해장국 7천 원, 조개 떡국 5천 원.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10시. 1·3주 일요일에 쉰다. 부산 부산진구 가야2동 474의 8. 가야공원 올라가는 입구. 051-898-3003.



멸치 육수가 제대로 '옛맛 칼국수'

면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면식수행을 하는 두 분이 '옛맛 칼국수'를 칼국수 넘버원으로 꼽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디에도 이 집 전화번호가 안 나온다. 물어서 힘들게 찾아갔다. 칼국수 집답지 않게 가게가 아주 깔끔하다. 찾아간 시간이 오후 2시 30분이 넘었는데도 손님들이 많다. 이 집도 특히 여자 손님들이 많다.

칼국수를 입에 대자마자 멸치 맛국물 냄새가 물씬하다. 이 그리운 맛! 옛날에 집에서 해먹었던 칼국수와 가장 흡사한 맛이다. 이 뜨끈한 국물이 속을 확 지져준다. 어이구 좋다, 어이구 좋아. 칼국수다운 칼국수이다.

칼국수는 끓이는 방식에 따라 면을 국물에 넣고 끓이는 제물 칼국수, 면을 삶은 후 찬물에 헹구었다가 뜨거운 국물을 붓는 건진 칼국수로 구분된다. 제물 칼국수는 면에 간이 배는 장점이 있지만 면이 거칠어지는 단점이 있다. 또 제물 칼국수는 밀가루가 국물에 풀어져 탁해지고 생밀가루 냄새가 나기 쉽다. 이 집은 전형적인 제물 칼국수이지만 전혀 텁텁하지가 않다. 칼국수 외길 30년 내공의 힘이다. 면도 좀 풀렸지만 먹을 만하다. 김정식 대표는 "멸치 다시를 많이 넣어서 진하게 국물을 우려낸다. 그것 말고는 다른 비법 같은 것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배달해 달라고 귀찮게 해서 전화번호도 안 밝힌단다.

칼국수 3천 원, 비빔 칼국수 4천500원, 김밥 1천5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8시30분. 부산 동래구 온천2동 1435의 18. 내산초등학교 정문에서 도시철도 동래역 방향 30m. 051-554-3870.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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