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성 까다로운 이 부장도… 분위기 따지는 김 대리도… "신년회까지 예약 하고 갈까"

입력 : 2010-12-23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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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붓하게 정 나누기 좋은 송년모임 장소

2010년도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내년이면 나이가…. 어휴! 올해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잘 살았던 것일까? 연말이 되자 이 생각 저 생각이 난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한 번 얼굴을 봐야지, 생각만 했던 사람들도 하나 둘 떠오른다.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아야겠다. 떠들썩하기 보다 오붓하게 송년 모임을 하며 정을 나누기에 좋은 집 3곳을 소개한다.


세월의 맛 진하게 밴 밥과 술…

정이 흘러 넘치는 '통나무하우스'

시간이 흘러야 알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그 전에는 아무리 설명해도 알기 어렵다. 부산 동래구 온천동의 '통나무하우스'는 젊은 사람보다 '베테랑'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술이 목적이라면 홀에 앉아도 되지만 이 집 음식을 제대로 즐기겠다면 방에 좌정을 하라고 권한다.

이 집은 한정식집, 또는 막걸리집 등으로 성격을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가 힘들다. 어쨌든 밥과 술이 흐르는 곳이다. 코스 요리로 이 집 술과 음식을 제대로 즐겨보기로 했다.

피조개가 먼저 뭍에 올랐다. 날것으로는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 살짝 데쳐서 간장에 버무렸다. 이 집과 나물은 잘 어울린다. 나물 3종 세트 외에도 울릉도 모시나물을 된장에 찍어 먹도록 했다. 몸을 위해 좋은 일을 한 느낌이다. 갈치젓갈로 담근 깍두기 김치는 시원해서, 잡채는 따뜻해서 좋았다. 바삭바삭한 가자미구이는 남자들이 좋아하고, 해물들깨찜은 여자들이 좋아한다. 이 대목에서 동동주 한 사발이 빠질 수 없다.

이제 2라운드 시작. 지금 한철인 과메기무침을 시작으로 두툼하게 썬 홍어와 수육이 뒤를 따른다. 술을 치는 소리가 점점 더 빨라진다. 평소 구경하기 어려운 음식들이 줄을 잇는다. 들척지근한 돌굴, 돈이 있어도 못 구한다는 군수도 여기서 만났다. 전복은 맛을 살리기 위해 송이와 같이 나왔다.

남에게 주방을 안 맡긴다는 남해 출신 사장님 면회를 신청했다. 이곳에서 '영자'로 통하는 김은훈 대표는 "일식집 가서 방문 걸어 잠그고 먹으면 답답하지 않느냐. 우리집 음식은 매일 다르다. 항상 장을 직접 보고 차에 실어야 안심이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돈은 많이 못 벌었어도 진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행복하단다.

엄마가 아기들에게 만들어 주듯이 소금간만 해서 작게 싼 김밥이 마지막 코스로 나왔다. 이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정이 담겨서 그럴까.

코스요리 3만∼5만 원, 수육 3만 원, 홍어삼합 5만 원, 스페셜김밥 1인분 2천 원. 영업시간 오후 3시∼오전 2시. 일요일 휴무. 금강공원 입구 온천극장 주변 대도약국 골목. 051-555-8777.



머슴이 차려주는 남도 홍어삼합

손해는 안 보는 집 '신토불이 보쌈'

해운대 '신토불이 보쌈' 윤휘상(40) 대표의 명함에는 직함이 '머슴'이라고 적혀 있다. 소처럼 크고 쌍꺼풀이 진 눈을 굴리며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머슴이라니. 알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보쌈과 머슴은 잘 어울린다. 보쌈김치는 양반집에서 많은 사람을 부려 김장을 하면서 비롯되었다. 일꾼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겨울철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돼지를 잡아 삶고 즉석에서 버무린 김치와 곁들여 동네 잔치를 한 것이다.

보쌈은 이렇게 김치가 맛이 있어야 한다. 아삭하고 감칠맛 나는 이 집 김치가 좋다. 보쌈김치도, 겉저리도 아닌 딱 중간이란다. 윤 씨 어머니의 솜씨다. 아니나 다를까, 고향이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라도 순창, 거기서도 내동마을이란다. 고추장하면 순창이 이름이 났지만 만들기는 내동에서 다 만든단다. 순창 고추장 살 때 내동에서 왔다면 5천 원을 까준다나. 이 집 쌀이나 양념도 다 순창에서 가져온 것이다.

홍어삼합을 시키면 이 집 음식을 다 맛볼 수 있다고 했다. 홍어는 부드러웠다. 심하게 쏘는 맛은 없어 누구나 먹을 수 있을 정도. 마니아에게는 좀 더 센 것으로 선보인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다. 전라도 출신답게 일주일에 두 번은 홍어를 먹으며 손님들에게 한 점 한 점 나눠주다 보니 홍어를 찾는 손님들이 늘었다. 홍어는 수입과 국산을 절반씩 섞어서 쓴다. 국산은 존득하면서 빨간 빛이 난다. 좋은 품질에 좋은 가격이다.

수육의 맛은 시간 싸움에서 결정난다. 제대로 안 삶아진 수육은 뼈다귀 해장국에 들어간다. 이게 또 해장용으로 괜찮다. 수육 먹을 때 살코기만 찾으면 뭘 모르는 사람이다. 단골들에게 기름을 조금씩 먹이기 시작했더니 지금은 기름이 많은 것으로 달라고 요구한단다.

윤 씨의 어머니는 "흙을 묻혀 들어오는 공사장 인부의 신발을 먼저 닦아주라. 그러면 음식이 맛이 있다는 소리를 하고 나간다"고 가르쳤단다. 알고 보니 윤 씨는 특급호텔 일식요리사 출신. 3대째 맛과 전통이 제대로 이어지는 곳이다. '그냥 먹을 만한 집' '손님이 손해는 안 보는 집'이라는 게 그의 평가다.

보쌈 2인 2만 2천 원, 홍어삼합 소 4만 원, 점심특선 보쌈정식 1인 6천 원. 영업시간 낮 12시∼밤 12시. 해운대구 중동 세이브존 정문 옆. 051-731-1441.


불친절하면 불러 꾸짖어 주세요

재료에 이름을 거는 '점례네'

'점례네'라는 해운대 고깃집 이름을 들은 지 꽤 되었다. 한 번 들으니 까먹지도 않는다. 알고 보니 김형훈(32) 대표의 어머니가 서점례 씨이다.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하는 음식점. '불친절하면 점례를 불러 꾸짖어 달라'고 크게 써붙여놓았다.

배추김치, 무김치, 오이지를 먹을 만큼 덜어 먹게 하고 있다. 음식을 안 남기면 500원을 내어준다니 열심히 먹어야겠다. 만만찮은 가격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큰 맘 먹고 이 집 고기 맛을 보기로 했다.

명물로 자리 잡은 간장게장이 입맛을 돋운다. 간장게장은 셔벗처럼 아삭거린다. 시원함과 고소함이 입 안에 퍼진다. 큼직한 계란말이는 옛날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오늘의 주인공, 고운 자태로 등장. 소문대로다. 살짝 불을 쬐어 부드러워진 안창살이 입 안에서 구르다 녹아내린다. 이 느낌이었다. 고기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식사로는 육회비빔밥이 이름이 났다. 색깔 좋은 육회비빔밥을 김에 싸먹으니 더 좋다. 꽃게 된장에는 빨간 꽃게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갔다. 육회비빔밥과 꽃게 된장은 썩 잘 어울리는 땅과 바다의 커플이다.

한우 고기는 전북의 무진장(무주·진안·장수)에서 투플러스 등급으로만 가져온다. 지육(枝肉) 상태로 통으로 쓰다보니 속을 염려가 없다. 등급의 고기를 구하지 못하면 고기 대신 밥만 파는 뚝심도 보인다. 꽃게는 진도산으로 일년치를 감천의 냉동창고에 보관시키고 있다. 배추는 해남에서 가져와 기장의 공장에서 직접 김치로 담근단다.

이날 김 대표나 '점례네'는 지난 10일에 문을 연 서울 강남역점에 가 있어 만나지 못하고 전화 통화를 했다. "비싸다, 사장이 자리를 자주 비워 맛이 변했다"는 최근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김 대표는 "조금 더 비싸더라도 재료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저를 대신해 칼을 잡는 점장 손님 위주로 새로운 고객이 늘었다. 내년에는 압구정점을 열 계획이다"라고 대답했다. 음식은 80% 이상을 재료가 좌우한다.

꽃등심 130g 2만 8천 원, 모둠 500g 10만 원, 육회비빔밥 1만 원, 왕꽃게 된장찌개 1만 원. 휴무 없이 24시간 영업. 도시철도 장산역 인근 하이마트 옆. 051-742-1588.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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