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그 지독한 유혹

입력 : 2011-03-03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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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홍색 빛깔 좋은 홍어회. 꼬드득 씹히는 그 맛에 부드러운 돼지수육과 시큼한 묵은지가 스며들면 머릿속이 '쨍!' 하며 햇살처럼 밝아진다. 삼합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홍어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홍어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고 어중간하게 말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경상도 청년이 있었다. 목포 인근 어느 섬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거기서 홍어를 처음 접했다. 보리 베기 등 이른바 대민지원을 나갔을 때 주민들이 새참으로 내온 것을 봤다. 그들의 강권에 못 이겨 한 점 입에 물고는 외쳤다. "사람이 먹을 것은 아니다!" 그 괴기스런 냄새란! 쉴 새 없이 양치질을 해대도 그 냄새는 일주일 이상을 입에서 사라지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그 뒤로 그는 홍어 마니아가 됐다. 미치도록 좋아하게 된 것이다. 기묘한 일이었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짐작했겠지만 그 청년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다. 그 때 이후 그는 이즈음 같은 겨울의 끝자락이면 입이 근질근질 해지며, 뒷골에 뭔가 스멀거리는 느낌까지 든다. 지독한 유혹! 홍어가 몹시도 그리운 것이다. 이 기분은 홍어 맛을 아는 사람만 안다.

정부기관인 농림수산식품부도 이즈음의 홍어의 가치를 인정한다. 지난달 28일 홍어를 '3월의 수산물'로 선정한 것이다. 봄을 앞둔 시절, 입맛 없어지는 노곤함을 떨쳐 내는 데 홍어 만한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일정 기간 삭힌 홍어는 톡 쏘는 맛과 특유의 강한 냄새를 지니고 있지만 한 번 맛을 들이면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특히 이른 봄에 보리싹과 함께 홍어 간 등 내장을 넣고 자박자박 끓인 홍어앳국의 그 맛이라니! 농림수산식품부도 '코끝을 쏘는 매운 맛과 시원한 국물맛이 다른 데서는 보지 못하는 남도의 별미'라고 각별히 소개했다.

정수리까지 닿을 얼얼함
이른 봄 노곤함까지 싹~

전라도만의 음식? "노"
부산에서도 제대로네~


부산 동래구 안락2동 홍어전문점 '홍탁'(051-531-5400)의 주인 김금희(51) 씨는 전남 영암이 고향이다. 영암에선 2월 하순이면 보리싹을 넣은 홍어앳국을 즐겨 먹는다. 부산에서 홍어앳국의 맛을 보다니! 몹시도 기대했으나, 아쉽게도 지금 부산에선 보리싹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급 실망! 홍어앳국을 못 먹는 대신 다른 홍어 요리는 원 없이 먹어보자 했다.

홍어회무침. 꼬들한 홍어살이 풋풋한 야채와 어울려 씹히는 맛이 상큼하다. 입 안에 청량한 바람이 분다. 그런데 홍어에서 기대되는 쏘는 맛이 아니다. 홍어회무침엔 삭힌 홍어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김 씨는 "부산 사람들, 특히 여자분들이 좋아 할 홍어 요리"라고 했다.

홍어 애. 애는 물고기 간에 해당하는 부위다. 얼려 먹는다. 상온에선 금방 흩어져 못쓰게 된다. 나오는 즉시 먹어야 한다.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 풀어지는 그 고소한 맛은 "사람 애간장을 녹일 정도"란다.

쏘는 맛이 가장 강한 부위는 코다. 몰캉한 콜라겐 덩어리인 홍어 코를 소금장에 찍어 한 입 넣으니 코끝이 찡하게 울리면서 얼얼함이 정수리까지 닿는다. 얼얼함으로는 홍어탕과 튀김, 찜도 못지않다. 뜨거운 기운이 가시기 전에 먹어야 하는데,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맛이 강하면서도 구수하다.

홍어 요리의 진수는 아무래도 삼합(三合)이다. 홍어회, 돼지수육, 묵은 김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세 가지가 어울려 절묘한 맛을 낸다. 선홍빛으로 윤기 자르르 흐르는 홍어횟살이 꼬드득 씹히는 가운데 부드러운 돼지살이 그 속으로 스며든다. 묵은 김치의 시큼함은 그 두 맛을 감싼다. 삼합은 김에 싸 먹어도 좋다. 텁텁한 탁주가 곁들여지면 흥은 한껏 오른다.

홍어에 딸려 나오는 찬들이 수수했다. 나물, 미나리, 뭐 집에서 먹는 그런 것들인데 별다른 양념이나 치장이 없이 깔끔했다. 친정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어깨 너머로 배웠다는 '홍탁' 주인 김 씨는 항상 잔치하는 기분으로 홍어 요리를 낸다고 했다.

"어렸을 적 친정아버님이 큰 정미업을 하셔서 집에 항상 식객이 10~15명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평소 잘 차려 먹었지요. 풍성하게, 그러나 깔끔하게. 비싼 재료를 담는 대신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을 담은 요리. 저는 하루에 다섯 테이블 이상 손님을 안 받아요. 너무 많으면 다음날 일하는데 지장이 있고 또 손님한테 소홀하게 되거든요."

잔치는 정성으로 손님들의 흥을 돋워야 하는 자리다. 손님은 충분히 대접받은 기분을 안고 돌아가야 한다. 홍어의 미덕은 거기에 있다는 게 김 씨의 생각이다. 가격은 시세에 따라 변동이 있는데 삼합이 소 3만원 대 5만 원, 홍어탕 1만 원, 홍어튀김 2만 원 정도. 안락2동 한전 동래지점 맞은편.



사실 홍어전문점이라 해도 '홍탁'같은 작은 음식점에서는 홍어를 직접 들여와 숙성시키는 과정을 갖지는 못한다. 불과 10여 평의 매장에 그런 시설을 들이지도 못하거니와, 무엇보다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내 홍어전문점들은 홍어를 삭혀서 공급해 주는 도매점과 따로 계약을 맺고 있다. '서월선 홍어와 탁주'(051-311-7090·부산 사상구 감전2동)는 그중 대표적인 곳이다.

광주가 고향인 김황수(53) 대표는 말한다. 홍어가 예전에는 전라도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전국적인 국민 음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그가 거래하는 곳 중 홍어를 전문으로 하는 집은 부산에서만 50여 곳. 다른 음식점에도 안정적으로 나가고 있고, 일반 가정집에도 홍어회와 홍어찜, 홍어무침 등을 배달(홍어회 1.8㎏ 한 상자 6만원)해 준다.

"맛도 맛이지만, 홍어가 그처럼 사람 몸에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어요. '자산어보' 등에는 뱃속 질병이나 천식에 효험이 있다지요. 수년 전 일본 와세다대학 연구팀이 우리 공장에서 한 3일 정도 연구해 갔어요."

김 대표에 따르면 요즘 시중에 나오는 홍어의 60%는 아르헨티나 산이다. 나머지는 뉴질랜드, 우루과이, 미국 산이고, 한 때 많았던 칠레산은 10% 미만이라고 했다. 어획량이 줄면서 칠레 정부가 수출을 금지한 때문이다. 국내산은 요즘엔 거의 구경하기 어렵다고 했다.

"활어라면 아무래도 칠레 산이 아르헨티나 산에 비해 찰진 거는 있어요. 국산하고 비슷하죠. 하지만, 일단 냉동시키면 그 차이는 거의 없어집니다. 칠레에서 냉동 안 시키고 들여올 수 있나요? 문제는 숙성을 얼마나 잘 시키느냐에 있어요."

김 대표는 8~10㎏짜리 홍어를 영상 7∼11도로 13일에서 15일 정도 숙성시킨다고 했다. 그게 홍어를 제일 맛나게 한다는 것이다.

"흔히 홍어 좀 먹어 본 분들이 쎈 거 찾습니다. 하지만 그게 꼭 좋은 건 아닙니다. 원래 제 고향에선 홍어 냄새가 약간 날 때를 제일 좋은 걸로 칩니다. 또 냉동 홍어는 삭히는 데 한계가 있어요. 오래 삭히면 센 맛이 더 나겠지만, 냉동 홍어는 일정 날짜 이상 삭혀 버리면 썩어 버립니다. 삭히는 것과 썩는 것은 다르지요."

경상도 사람들이 홍어를 쉽게 접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릴 때 고향을 떠나 초등학교부터 학교를 다 부산에서 나왔어요. 동문 행사 때마다 홍어를 지원합니다. 그런데 꺼리던 친구들이 한 번 홍어를 접하고 난 뒤에는 열이면 열 다 열렬한 마니아가 돼버립니다."

요컨대, 일단 한 번 맛부터 보라는 이야기다. 냄새가 걸린다고? 김 대표는 홍어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황토 숙성 등 여러 방법을 찾아 봤지만, '냄새 없는 홍어는 홍어가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단다. 냄새는 분명 독하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맛은 다른 무엇에 쉽게 견줄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비호감의 호감, 역설의 맛이라고 하겠다. 그 신비한 체험을 위해서라면 썩 유쾌하지 않은 꼬리꼬리한 냄새쯤은 감수해야 하는 필수 비용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글·사진=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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