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좋아하는 '소박한 밥상'

입력 : 2011-04-28 15:50:00 수정 : 2011-04-29 15: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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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제철 맞는 강원도식 곤드레밥

감자바우곤드레밥

'보릿고개'라는 말을 책에서만 배운 세대들에게 '곤드레밥'은 생소한 음식이다. 곤드레밥은 강원도의 대표 음식으로, 춘궁기 때 음식 양을 늘리기 위해 곤드레 나물을 넣어서 죽을 해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

곤드레는 표준명이 고려엉겅퀴로 도깨비엉겅퀴, 고려가시나물이라고도 한다.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술 취한 사람의 몸짓과 비슷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곤드레 나물은 춘궁기가 시작되는 5월 즈음이 제철이다. 이맘때 나는 어린 잎을 채취해 말려서 나물로 사용한다. 요즘 '웰빙 음식'으로 부각되면서 부산에서도 맛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생겼다. 그중 강원도식 곤드레밥을 선보이는 '감자바우 곤드레밥'과 정갈한 맛이 돋보이는 '세실맛집' 두 곳을 소개한다.



■촌스러운 맛의 감동-감자바우 곤드레밥

감자바우곤드레밥

밥위에 찐 곤드레나물… 은은하고 구수

"어릴 때 질리게 먹었는데 내가 이 장사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지요."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문순복(56) 대표는 2년 전 감전시장 한 귀퉁이에 5평 남짓한 '감자바우 곤드레밥' 가게를 열었다. 메뉴에는 정식과 곤드레밥 두 종류만 올라와 있다. 매일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한다는 안내문도 붙어 있다.

문 대표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음식점 메뉴로 곤드레밥을 선택한 것도 가장 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정직하고 담백한 성품이 음식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부산 지역의 다른 곤드레밥집은 대개 들기름에 곤드레 나물을 볶아 다된 밥에 비벼서 내놓는다. 그런데 이 집은 밥을 지을 때 한 번 삶아서 말린 곤드레 나물을 얹어 찌는 방식으로 곤드레밥을 만든다. 문 대표는 이 방식이 '강원도 식'이라고 했다. 그는 돌솥 안의 곤드레밥을 손수 대접으로 옮겨주었다. 돌솥에 물을 부어 누룽지 숭늉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집 곤드레밥의 특징이다. 향이 거의 없는 곤드레 나물 맛이 더해진 밥은 은은하게 구수했다. 나물의 질감도 부드러웠다.

보통 곤드레밥은 이 위에 간장 양념장이나 된장을 섞어서 먹는다. 대접 옆에 놓인 간장 양념장을 넣어서 비벼 먹으니, 무덤덤한 맛에 양념장 특유의 맛이 더한다. 옆에 놓인 강된장을 비벼 먹어도 별미다. 강된장은 일반적인 된장과는 사뭇 다른 향이 느껴졌고, 뒷맛이 개운했다. 이 된장을 좋아하는 이도 많단다.

반찬은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소금을 쓰지 않고 소량의 간장으로 간을 해서 재료 자체의 맛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굽지 않고 조린 꽁치는 비린내 없이 깔끔하고, 양념에 버무린 방풍초는 사각거리는 식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간장이 아닌 비법의 소스에 절인 장아찌도 독특한 맛이다. 수수한 찬과 밥이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밥맛에 반한 이들 중에 멀리 거제도에서 찾아오는 이도 있고, 돈을 대어 줄 테니 시내에서 장사해 보라고 권하는 이도 있었다. 문 대표는 "사람이 욕심을 내면 안 된다"며 현재 손님들에게 잘하고 싶다고 했다. 밥 짓는 이의 수수함이 밥맛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곤드레밥 7천 원. 정식 6천 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3시. 토·일요일 휴무. 부산 사상구 감전동 132의 1. 감전시장 사거리. 051-324-7588.



■깐깐한 정성으로 만든 정갈함-세실맛집
세실맛집 곤드레밥
  
정갈한 맛… 분위기 좋고 속이 편한 밥집

분명 밥집이라고 했는데, 예쁜 카페 같은 곳만 눈에 들어온다. 나지막한 나무 펜스 너머로 작은 정원이 보인다. 간판을 보니 '세실맛집 곤드레밥'이라고 적혀있다. 밥집이 맞았다. 나중에 들으니 이곳은 음식점 전에 찻집이었단다. 일부만 손을 대고 그대로 운영해 그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창가 쪽 테이블에서는 정원의 싱그러운 풍경을 감상하기 좋았다. 전채 요리로 딸기를 금방 갈아 드레싱으로 얹은 싱싱한 샐러드가 나왔다. 강한 딸기향의 걸쭉한 소스부터 '웰빙'의 기운이 한껏 느껴졌다. 밥이 나오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갓 지은 밥맛을 위해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밥을 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나온 상차림은 정원만큼이나 화사하다. 붉은 꽃이 새겨진 그릇은 이태금(64) 대표가 별도로 주문해 제작한 것이다. 그릇 위에는 정갈하게 반찬이 담겨있다.

이 집 곤드레밥은 '감자바우 곤드레밥'과는 달리 들기름에 나물을 한 번 볶아 밥과 비벼져 나왔다. 양념장도 간장과 참기름 위주의 깔끔한 맛이다. 적당히 짭조름한 감자바우 양념장과 달리 심심하다고 할 정도로 맛이 순했다. 양념장뿐 아니다. 곤드레밥과 반찬 모두가 순한 맛이다. '맛을 내야겠다'는 강박이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맛이다.

이유는 이 대표의 입맛에 있었다. 그는 위가 좋지 않아 인공조미료가 많이 든 음식이나, 재료가 좋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대번에 탈이 났다. 음식점에서 약속이 잡히면 자신이 먹을 음식은 싸서 다닐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먹었을 때 속이 편한 음식을 팔자'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 알게 된 게 곤드레 나물이었다. 음식에 쓰는 곤드레 나물도 거친 것들은 일일이 손으로 걸러내어 여린 것들만 쓴다. 깨끗하게 여러 번 씻는 것도 부드러운 나물 맛의 비결이다.

'분위기 좋고, 속이 편한 밥집'으로 주위에 소문이 나면서 모임 장소로 인기다. 특히 서너 명의 여성들이 오면 곤드레밥과 해물파전을 주문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외에 훈제 오리 요리도 판다. 곤드레 밥 8천 원. 해물파전 1만 2천 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일요일 휴무. 부산 수영구 남천동 45의 11. 남천동에서 금련산청소년수련원 올라가는 길. 051-623-9898. 글·사진=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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