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조기(早期)교육' NO! 유연한 '적기(適期)교육' YES!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영어 교육 전문가 26명과 함께 영어 사교육에 대한 오해 12가지를 규명한 '아깝다! 영어 헛고생'을 발간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이 소책자를 200만 명에 배포하기 위한 운동 출범식 장면.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영어, 어릴 때 배우지 않으면 늦다' '영어 공부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 이런 말 때문에 엄마들은 초조하다. 영어유치원, 엄마표 영어, 조기 유학…. 주변에서 일찍부터 서두르는 걸 보면 이렇게 손놓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 또 불안해진다. 영어 학원이 내 준 산더미 같은 숙제에 아이는 늘 힘들어하지만 과연 효과가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이 골 깊은 '영어 불안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공동대표 송인수·윤지희)이 영어 사교육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한 소책자 '아깝다! 영어 헛고생'을 발간했다. 대학교수와 교사, 학원 강사, 의사, 언론인 등 영어 교육 전문가 26인이 나서 지난 3년간 30여 차례 조사와 연구, 토론을 거쳐 영어 사교육의 실상을 파악한 내용을 총정리한 것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 달 28일 이 책자를 200만 명에게 배포하기 위한 출범식을 가졌다. 책자 내용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이트(www.noworry.kr)에서 누구나 전자책(e-book) 형태로 볼 수 있다. 1권 300원인 소책자는 50부(1만5천원)씩 신청하면 우편 배달해 준다.

언어기능 담당 뇌부위 6세 이후 발달
"빠를수록 좋다는 증거 어디에도 없다"
소통·자립 능력 키워주는 게 더 중요

영어교육에 관한 대표적인 오해는 '시작이 빠를수록 좋다'는 것. 하지만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결정적 시기 이론은 모국어 습득이나 영어를 쓰는 나라에 이민 간 상황을 전제로 한 이론일 뿐 우리나라에서 적용해 효과를 보았다는 학문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나경 전 영어전문학원 강사도 "다섯 살 아이가 2년에 걸쳐 습득한 영어수준을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6개월 정도면 다 터득한다"며 "영어학원에서는 다섯 살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닌 아이와 1학년 때부터 배운 아이가 같은 수준의 반에서 만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강조했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의사들 사이에는 영어유치원 10곳이 생기면 소아정신과 1곳이 생긴다는 농담이 있다"고 했다. 또래들과 충분한 대화를 하며 지적 자극을 만끽해야 할 나이에 간단한 영어대화만 주고 받도록 강제된 환경이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주기 때문이란 것이다. '아깝다! 영어 헛고생'이 짚어낸 영어 교육에 대한 12가지 오해와 진실을 알아본다.

1. 영어교육은 빠를수록 좋고 외국어 습득엔 '결정적 시기'가 있다?=너무 일찍 시작한 영어 공부는 부모와 아이를 모두 지치게 한다. 영어는 조기교육이 아니라 '적기교육'이 중요하다.

2. 우리말 배우듯 유아시기에 하루 30분 영어는 필수?=일상에서 영어를 접하고 사용할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 영어 환경에서 이런 노력은 별 소용이 없다. "언어 기능 담당 측두엽은 만 6세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발달하며 그 이전에는 뇌 발달이 이뤄지지 않아 언어학습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다"고 지적한 서유헌 서울대 의대 교수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3. 6~7세 정도에는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게 좋다?=6~7세는 우리말을 익히면서 추상적 개념과 사고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이므로 자신의 연령보다 낮은 3~5세 수준의 대화를 영어로 주고받는 영어유치원은 자녀의 지적, 정서적 성장에 오히려 해가 된다.

4. 영어 수업이 시작되는 초등학교 3학년 이전에 영어는 미리 해놔야 한다?=초등학교 입학 전 한글을 어느 정도 익히는 것처럼 입학 전에 처음 나오는 기초 어휘와 파닉스 정도를 익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남수(솔빛이네 엄마표 영어 연수 저자) 씨는 "엄마들한테 초등 3~4학년 때 영어를 가르치라고 조언한다"며 "초등 고학년이 되면 이해도 잘하고 학습의욕도 높기 때문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5. 아무래도 영어 교육은 영어 전문학원이 좋다?=아이들의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고 체험을 강조하기보다 숙제를 많이 내주고 선행학습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영어 전문학원은 피해야 한다.

6. '엄마표 영어'로 성공하는 아이들이 많다던데…불안해='엄마표 영어'로 성공할 수 있는 사례는 극소수다. 성공을 위해서는 여러 복잡한 내용이 맞아야 하는데 대부분 실패하고 아이와 사이만 나빠진다. 엄마표 영어가 성공하려면 엄마가 영어 실력을 갖춰야 하고 정보력, 학습관리 능력, 시간투자가 필요하다. 아이도 학습 능력을 갖추고 순응적이며 성실한 성향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추기는 쉽지 않다.

7. 초·중학교 때 영어 원서 읽기가 유행이다?=영어 원서를 활용한 학습은 일상적으로 영어를 접할 기회가 없는 우리나라와 같은 환경에서는 유용한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영어 원서를 활용할 때 자신의 실력보다 쉬운 책을 읽는 게 도움이 된다.

8. 영어에 대한 흥미를 길러주려면 영어 캠프에 보내야 한다?=영어캠프는 잘 이용하면 영어학습에 도움이 되지만 비싸고 강도 높은 학습프로그램 중심 캠프는 영어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게 되므로 피해야 한다.

9. 초등 1~2학년 조기 유학은 필수?=그 동안 초등학생 유학의 상당수는 특목고 입학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는데 외고 입시 변화로 조기 유학 이점이 사라졌다. 조기 유학 후 돌아오면 한국 교육을 못 따라가는 사례도 많다.

10. 토익과 텝스를 미리 해 놓으면 고입과 대입에서 유리하다?=어학원의 전형적인 과장광고다. 올해부터 외고 등 특목고 입시가 바뀌어서 이제 인증시험 점수가 필요 없다. 실제 지난해 텝스에 응시하는 초·중학생 숫자가 전년 대비 19%나 감소했고 대입에서도 이런 시험이 적용되는 비율은 상당히 낮다.

11. 갈수록 회화 중심의 실용 영어 능력이 중요하다?=회화 중심의 실용영어 중요성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영어학습 상황에서는 풍부한 읽기가 바탕이 될 때 말하기나 쓰기 실력이 늘 수 있다.

12. 글로벌 시대에 경쟁하려면 초중고 때 영어를 끝내놓아야 한다?= 초중고 때 길러야 하는 핵심능력은 따로 있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미래 글로벌 리더는 소통 능력과 자립 능력이 더 중요하다"며 "영어 전문학원을 쫓아 초중고 시기에 영어사교육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글로벌 리더의 가능성을 오히려 꺾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진로에 맞춰 필요가 생겼을 때 집중적으로 노력하면 더 효과적으로 영어능력을 갖출 수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02-797-4044~6.

강승아 기자 seung@busan.com

영어공부 이젠 이렇게

① 초등 3학년 이후 시작하는 게 훨씬 효율적. 영어는 적기교육이 중요.

② 영어 조기교육은 잃는 것만 많은 비합리적 선택.

③ 초등 저학년 때까지는 우리말 독서로 배경지식 쌓고 독서 습관 기르기. 우리말 독서는 이후 영어교육을 위해서도 필수.

④ 초등 고학년 영어는 '앞으로'식 선행보다 자녀 수준보다 쉬운 영어 동화책을 아이가 스스로 골라 읽도록 지도.

⑤ 중학교 부터는 한 달에 20~30쪽 분량의 짧은 영어 스토리북 한두 권 권하기.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고 영어 학습 동기와 지속성 생기는데 도움이 된다.

⑥ 고비용, 학습 위주 국내외 캠프 피하기. 방학을 이용해 흥미와 체험 위주 캠프에 참여하는 것은 권할 만하다.

⑦ 유학은 부모로부터 독립 가능한 고교 이후 장래 계획과 함께 고려해야.

⑧ 초·중학교 시기 공인 인증시험 대비는 고교 입시에 필요 없고 대입 비중도 매우 제한적. 입시 전략 차원에서도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⑨ 관심과 필요에 따라 영어로 된 다양한 글을 찾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실용 영어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회화 실력도 풍부한 영어 읽기가 바탕이 돼야 효과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⑩ 진로에 대한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게 하고 관심 영역에 몰입할 수 있도록 격려. 이렇게 하다 영어의 필요성에 눈뜨게 되면 영어 실력은 급속히 늘 수 있다.

↓'아깝다 !영어 헛고생' 영어교육 전문가 26인이 말하는 '영어 이젠 이렇게 공부하세요'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