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국수, 탱탱한 면과 양념 '매콤한 궁합' 끝내줘요

입력 : 2011-11-03 15:27:00 수정 : 2011-11-03 15: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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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해진 날씨에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서 국숫집을 찾았다. 그런데 막상 국숫집에서 주문한 건 비빔국수였다. 따뜻한 온기보다 강렬한 자극이 필요했던 것일까? 국숫집 주인들도 요즘 이상하게 물국수보다 비빔국수가 더 많이 나간단다. 

그러고 보니 요즘 비빔국수라는 간판을 단 가게들도 종종 보인다. 구수한 국물도 좋지만, 매우면서도 새콤달콤한 비빔국수는 뿌리치기 힘든 매력이 있다. 이참에 아예 개성 강한 비빔국수를 찾아 나섰다.


발효 양념의 부드러운 맛

■남천 해변시장 '수라비빔국수'

비빔국수는 보통 고추장을 기반으로 식초와 설탕을 섞어 기본 양념을 만든다. 거기에 배를 갈아 넣거나 참기름을 첨가하는 등 기호에 맞게 맛을 완성한다. 그런데 이 집의 비빔국수 양념은 고추장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고춧가루를 기본으로 한 칼칼한 맛과 입안에 감도는 은근한 과일의 풍미가 이색적이다.

비빔국수를 주문하자 이내 이봉헌 사장이 면을 삶아 앞치마와 함께 국수 한 상을 내어준다. 앞치마는 비빔국수의 양념이 옷에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작은 서비스였지만 일반 국숫집과 달리 비빔국수 전문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릇 안에는 비빔양념이 자작하니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붉은 양념 위에 중면으로 삶은 국수가 소담하게 올려져 있다. 흰 양파와 붉은 고춧가루, 푸른 상추 등 선명한 색감이 식욕을 자극한다. 듬뿍 들어간 깨소금과 김 가루를 쓱쓱 비볐다. 차갑게 식힌 면발의 탱탱함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중면의 두께 때문에 면발이 더욱 탄력 있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사장이 2년 동안 연구 끝에 개발했다는 양념이었다. 고춧가루의 깔끔한 매운맛 속에, 은은한 뒷맛이 느껴졌다. 이 여운의 맛은 각종 과일 소스를 수 개월 동안 발효시킨 결과였다. 입안을 확 휘어잡는 카리스마의 매운맛이 아니라 부드럽게 입안에 퍼지는 군더더기 없는 맛이 매력적이다. 이 양념을 만든 이 사장은 사실 카이스트 출신의 생명공학도였다. 마흔을 앞두고 상념이 많았던 어느 날, 강원도 여행길에서 우연히 비빔국수 한 그릇을 먹고 마음이 움직였다. 비빔국수는 면 요리 중에서도 일종의 틈새 같았고, 남들과 다른 맛을 낸다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의 엄청난 반대에도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각오를 꺾지 않았고, 결국 7개월 전 이 자리에 비빔국수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국수이니 자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국수가 건강에 좋다는 것은 확신한다고 했다. 좋은 재료 때문만은 아니었다. 양념의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유산균이 얼마나 사람 몸에 이로운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의 국수를 먹어본 이들 중에는 변비를 고쳤다며 계속 찾는 이도 있다. 비빔국수를 내걸었지만 함께 나오는 물국수의 육수 맛도 만만치 않다. 순하고 구수한 맛이 평범하지 않았다. 간장이나 소금 등을 사용하지 않고 3가지 액젓으로 만들었단다. 이 육수와 비빔국수의 궁합도 환상적이었다.

비빔국수 4천500원. 물국수 4천 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일요일 오후 8시). 부산 수영구 남천1동 296의 4. 남천 해변시장 안. 051-611-6372.



정신 번쩍 드는 매운 맛

■부평시장 '국숫집'


"매운맛 좋아하지 않으면 주문하지 마세요."

부평시장 한 귀퉁이의 간판도, 이름도 없는 국숫집. 비빔국수를 주문하자 주인은 강력한 경고를 준다. 매운맛에 자신 있다는 손님 한 무리가 호기롭게 비빔국수를 주문한다. 그들이 국수를 채 다 먹지도 못하고 남기며 하는 말. "어제 먹은 술이 확 깨네."

이 풍경을 지켜보며 왠지 모를 긴장감 속에 주문한 비빔국수를 기다렸다. '상상 이상의 매운맛'이라는 주인의 엄포에 두려움이 더해 조금 덜 맵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주인의 대답. "노력해볼게요."

그 노력은 국수의 양으로 나타났다. 면의 양을 늘려 매운 맛을 좀 줄여준 것. 약간의 안도감으로 국수를 비비는데, 콩나물과 김치도 살짝도 들어 있다.

호흡을 가다듬고 한 젓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맵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말하는 도중에 청양고추의 매운맛이 입안에 확 번졌다. 그래도 음식을 남기는 것이 마음에 걸려 계속 젓가락질을 했다. 입안이 온통 얼얼해졌다. 어찌나 매운지 누가 혀를 자근자근 밟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참 신기한 게 매운맛의 화끈함이 찜찜함을 남기지는 않았다. 청양고추의 칼칼한 매운맛에는 뒤끝이 없었다. 보통 매운 음식점에 가면 청양고추보다 더 매운 베트남고추나 후추 등 다른 향신료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집은 청양고추의 화끈한 맛 하나로 깔끔하고 강렬한 매운맛을 낸다.

이렇게 가학적인(?) 음식을 파는 이유는 뭘까? 7년째 이곳에서 장사 중인 권숙 사장은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운 국수를 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호기심 때문에 멀리서 찾는 이들이 많단다. 매운 양념을 하느라 손이 아플 지경이 되자, 얼마 전에는 많이 못 먹도록 일부러 더 맵게 했는데 오히려 손님이 더 늘었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비빔국수를 안 하고 싶지만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다고도 했다.

어쩌겠는가? 그 매운맛에 홀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 듯했다. 비빔국수를 먹고 탈이 나서 병원에 갔다가 다음날 다시 찾는 이도 있었다. 비빔국수의 매력적인 매운맛 때문에 주인의 손은 당분간 편한 날이 없을 것 같다.

비빔국수 3천 원, 김치국수·콩나물국수 2천5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일요일 오후 5시). 부산 중구 부평동 2가 11. 부산은행 부평동지점 뒤 . 051-241-1929.

글·사진=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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