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의 달곰한 선물 '부산 바다의 별미 삼총사'

입력 : 2011-12-15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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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바다의 별미 삼총사

물김에 싸먹는 꼬시래기(문절망둑) 회

김옥선(67) 씨. 부산 강서구 명지동 중리 포구에서 간판도 없는 허름한 판자 건물에서 횟집을 하는 할매다. 그 흔한 명함도 없어 말하길, "여서 간판 없는 엄마집, 그람 다 알어!" 그런다. 집 찾기가 만만찮은데, 강서구어업인복지회관을 찾으면 건너편에 중리 포구가 보인다. 할매 휴대폰(011-1757-1582)이 있지만 잘 받을지는 의문!

굳이 김 할매를 찾은 건 명지 김에 싸먹는 꼬시래기 회 때문이었다. 명지 김은 낙동강 하구에서 난다 해서 낙동 김이라 불리는데, 날 추운 이즈음이 제철이다. 김 할매 아들이 직접 김 양식을 한다.

꼬시래기는 문절망둑을 일컫는 경상도 말이다. 지역에 따라 망둥이, 문절이, 망동어 따위로 불리기도 한다. 꼬시래기, 엄청 고소한 놈이란 뜻이겠다. 그 고소함을 낙동 김 특유의 향기로 싸먹는 것이다.

투명하다 싶은 정도로 맑은 갈색의 꼬시래기(문절망둑은 아무래도 재미 없는 단어다). 보통의 미꾸라지만 한 크기와 굵기의 놈들이 햇빛을 받아 팔딱였다.

김 할매는 한 채 떠서 망태기 같은 것에 넣어 사정 없이 빨래하듯이 박박 문질렀다. 그렇게 해야 비늘이 떨어져 나가고 깨끗해진단다. 깨끗해진 놈들을 한 점 한 점 회로 떠 낸다. 칼질에 망설임이 없다.

가는 물김도 두 손으로 씻어냈다. 씻어냈다기보다는 빨아 놓았다는 게 적확하겠다. 빨아 놓은 김에선 윤기가 흘렀다. 김 할매는 김을 두 뭉텅이로 갈라 하나는 이런저런 양념을 넣어 무쳤다. 꼬시래기 싸먹을 것. "꼬시래기라 카는 기 비렁내도 안나고 기름기가 반지르르 해. 요걸 요즘 나오는 냄시 좋고 싱싱한 초벌 물김에 싸 묵으믄 억수로 맛나거든예. 우리 명지선 오래 됐어예, 이리 묵는 기. 별미가 된 거라요."

김 할매가 먼저 상에 내놓은 건 김국. 뜨끈하고 구수해서 속이 싸~ 하게 풀어지는 느낌. 꼬시래기 회와 생 물김, 물김 무침, 물김회무침(양념해 무친 김에 회를 넣어 다시 무친 것), 상추, 배추를 비롯해 밑반찬이 나왔다.

입맛대로 먹으면 된다 했다. 회 몇 점을 생 물김 또는 물김 무침에 싸서 된장 찍은 마늘과 함께 상추나 배추에 넣어 먹든지, 이도 저도 귀찮으면 물김회무침을 쌈 싸서 먹든지.

물김회무침은 배와 설탕이 들어가 제법 달았다. 간혹 양념 잘된 물김회무침에 밥을 쓱쓱 비벼 먹는 이도 있단다.

어떻게 먹든 맛이 복잡했다. 꼬시래기회는 보통 '세꼬시'라고 뼈가 씹히게끔 써는데, 사각사각 씹히는 가운데 고소한 맛이 입 안에 확 퍼진다. 그 뒤에 은근히 남는 물김의 싱싱한 향. 이날 함께 갔던 일행은 "바다의 가장 원초적인 맛을 봤다" 했다. 회 또는 회무침은 양에 따라 4만~5만 원 받는다.




'야시시'한 바다 향 갈미조개 수육

겨울바다의 맛에는 역시, 조개가 빠질 수 없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확 풀어주는 맛! 부산의 바다, 특히 명지 앞바다에 갈미조개가 있다. 이미 전국적인 명물이 됐다.

부산 명지IC에서 녹산공단 쪽으로 5분 정도 차로 달리면 왼편에 명지 동리 포구가 나온다. 갈미조개 요릿집이 여럿 들어 서 있다. 그중 하나가 '불타는 조개구이'(051-271-3537)다. 이름이 '야시시'한데 이 집 갈미조개 수육이 별미라 들었다.

주인 최복선(63) 씨는 갈미조개에서 달큰한 맛이 난다고 했다. 단맛이 꽤 난다는 것이다. 조개에서 무슨 단맛이 날까 싶은데, "민물과 바닷물이 겹쳐진 낙동강 하구 일대에서 생산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물 바뀜의 과정에서 단련이 돼 육질이 연해지고, 또 뭍과 바다의 영양분을 고루 섭취했을 거란 이야기다.

최 씨가 차려내 온 갈미조개 수육(3만~5만 원)은 그 속살이 연분홍빛으로 참 고왔다. 적당히 삶긴 그 연분홍빛 속살에선 또 좋은 바다향이 났다.

씹히는 촉감이 촉촉하면서도 탱탱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육즙에서, 과연 단맛이 은은하게 배어 나왔다. 달큰하다는 최 씨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맛과 촉감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갈미조개를 특히 좋아한단다. 그들은 주로 초밥 위에 얹어 먹는데, 이 수육의 맛에는 미치지 못할 터이니 조금은 불쌍하다는 말도 최 씨는 덧붙였다.

내친 김에 샤부샤부(3만~5만 원)도, '불타는' 구이(2만~4만 원)도 맛보자 했다. 샤부샤부는 조개살도 조개살이지만 국물이 시원했다.

구이는 숯불화로 위에 이뤄졌다. 불판 위에 조개를 얹어 놓고 또 양은 도시락을 별도로 놓아두는데, 조개를 조금만 오래 두면 실제로 '불타'버리니까 적당히 육즙이 올라 올 때 조개살을 옮겨 놓는 역할을 한다. 그럼 도시락 안에서 흥건해진 육즙이 보글보글 끓는데, 최 씨는 "그게 보약"이라 했다. 피로가 싹 가시고, 남자 정력에도 그만이고, 여자 피부에는 직효이며…, 그렇게 좋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란다. 그 국물에 밥 말아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어도 별미가 된다 했다. 맛을 보니, 알싸하면서도 시원하고, 또 진한 느낌! 즙이 졸아들수록 혀를 바싹 감싸안는 듯했다.

최 씨는 조개를 생으로 따로 팔기도 한다. 1㎏에 껍데기채로는 5천 원, 속살만으로는 2만 5천 원에 판다. 물이 팔팔 끓을 때 조개를 넣어준 뒤 국자로 슬슬 저어주면 얼마 안 있어 조개가 입을 쩍 벌리는데, 그때 꺼내주면 속살이 야들야들해진단다. 국물엔 아무 것도 넣지 말아야 하는데, 조개 자체에서 충분한 맛이 우러 나오기 때문. 그렇게 만든 국물은 따로 저장해 두고 다른 요리의 맛국물로 쓰면 좋다 한다.




'바다 꽃'으로 풀어낸 말미잘 매운탕

촉수는 꽃잎처럼 하늘거리고 입은 암술처럼 옹다문다. 얼핏 꽃이다. 말미잘은 그래서 바다의 꽃이라 불린다.

그런데 이 말미잘로 요리를 한다?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으나 부산 기장군 칠암 해변에 말미잘 요리를 한다는 집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희한한 그 말을 듣고 안 가볼 수 있나!

'부자집'(051-727-7534·부산 기장군 일광면 신평리 45의 4). 거창한 이름과 달리 조금은 오래 돼서 낡은 음식점이다. 해양경찰서 칠암출장소를 찾으면 인근에 보인다. 고향이 충남 서산이라 '서산댁'으로 불리는 주인 조성의 씨. 환갑, 진갑 다 지났다며 나이 밝히길 꺼리는 그는 말미잘 요리를 자신이 직접 개발했다 한다.

"예전에 복어 장사를 30년쯤 했어. 우리 아바이(남편) 젊을 때 배 있었거든. 돈 많았어. 칠암에 집을 짓기로 했는데, 인부들 밥 해 주면서 말미잘을 몇 마리씩 넣어서 매운탕 해 준거야. 그런대 매번 이것만 끓여 달라는 거야. 그래서 가게 손님들께도 한 번 해줘 봤지. 다 맛있대. 그래서 시작했지."

조 씨가 내온 매운탕을 보니 온전히 말미잘로 된 것이 아니라 붕장어(아나고)를 반반씩 섞어 끓인 것이다.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었다. "여러 연구를 해 봤는데, 아나고가 말미잘과 궁합이 제일 잘 맞아. 매운탕 국물도 아나고 뼈를 밤새 고아 만든 것이고."

말미잘을 한 술 떠 입에 넣어보니 묘했다. 처음엔 보들보들 씹히더니 나중엔 꼬들꼬들해졌고, 첫맛은 고소했으나 뒷맛은 콤콤했다. 부드러운 붕장어살과도 잘 어울렸다. 된장과 고춧가루, 양파 외에 별다른 건 넣지 않는다 했다. 말미잘 자체에 간이 다 배어 있어 다른 양념을 더하면 맛이 이상해진다는 것이다.

조 씨 성격이 남자같다. 말이 재미있다. "어때, 생각보다 괜찮지? 여자들, 말미잘 그러면 징그럽니 뭐니 하며 지랄하고 갔다가 나중엔 왜 이런 걸 안 사주냐고 또 지랄들 한대. 간에 좋고 소변이 탁할 때 먹으면 싹 정화되는 게 말미잘이야. 말미잘 요놈 전복 고둥 이런 거 다 잡아 먹거든. 영양가 높아. 여자 몸에 그만큼 좋은 거지. 장어는 남자 몸에 좋다지? 그래서 난 이 매운탕을 신랑각시 매운탕이라 그래. 생긴 것도 꼭 그렇잖아."

이 매운탕 먹으려면 가능한 한 예약하고 오라 한다. 잘 안 잡힐 때가 있으니 잘못 오면 허탕치기 십상이기 때문. 말미잘도 말미잘이지만 밑반찬이 꽤 깔끔하고 맛이 깊다. 멸치 혹은 갈치와 함께 삭힌 깍두기가 특히 별스럽다. 조 씨 혼자 장사하기 때문에 그런 밑반찬은 손님들이 스스로 가져다 나르는 경우가 많다 한다. '신랑각시탕!' 1인분 1만 1천 원.

글·사진=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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