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먹거리의 변신 살롱 같은 막걸리집과 '독립선언'한 전(煎)

입력 : 2012-02-02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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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바 같은 '막걸리 살롱'에 가면 전국의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막걸리와 전(煎), 그리운 것들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막걸리 열풍을 타고 막걸리집이 속속 생겨난 덕분이다. 좀 다른 분위기에서 막걸리를 마셔보기로 했다. 또 그동안 막걸리 뒤만 따라다니던 전이 얼마 전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나섰다. 

막걸리집과는 별도로 전집도 가보기로 했다. 막걸리와 전이 각각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다. 이러다 막걸리와 전이 서로 먼저라고 다투지나 않을까.


와인바 같은 부전동 '막걸리 살롱'

전국 막걸리 총출동
날씨 좋은 날엔
분위기 있는 야외 테라스에서…


서민 문화의 상징인 막걸리와 고급 문화를 대변하는 살롱이 한집에서 만났다. 사실 '막걸리 살롱'은 분위기 좋은 카페나 와인바 같다. 예쁜 야외 테라스까지 갖춰 날씨 좋은 날에는 밖에서 한잔 하기에도 그만이다. 무작정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분만 빼고 대개는 막걸리집의 변신이 반갑게 느껴진다.

막걸리는 지역마다, 또 양조장마다 맛이 다르다. 애주가들은 좋아하는 막걸리를 현지에 가서 자주 사올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살롱'에 오면 전국의 다양한 막걸리를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부산의 '산성막걸리'와 '생탁'부터 시작해 충북 진천의 '덕산', 충남 공주의 '공주알밤', 당진 '연꽃백련', 천안 '현미막걸리' 등 전국의 대표 선수들이 다 모였다.

'살롱'이 자랑하는 스페셜 유기농 막걸리도 있다. 꿀에 절인 전남 고흥 유자를 넣은 유자 막걸리, 고창 복분자 진액이 든 복분자 막걸리는 어떨까. 꿀 막걸리는 강원도의 양봉장에서 가져온 꿀을 바로 눈앞에서 섞어준다. 숙취가 없어 여성들이 특히 좋아한단다. 다양한 막걸리에서 다양한 문화가 꽃핀다.

'살롱'이 손꼽는 해물전, 전주 가맥식 황태구이, 두부와 삼겹김치볶음을 안주로 시켰다. '웨하스'같은 식감이라던 전주 가맥식 황태구이는 너무 바삭했다. 두부와 삼겹김치볶음을 식지 말라고 버너에 올려주는 점은 좋았다. 평범한 안주보다는 다양한 막걸리에 더 점수를 준다.

가게 안에는 젊은 여자 손님이 많다.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손님도 대개 여성이다. 박인경 대표가 같은 여성의 취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일까.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이 막걸리집을 한다는 사실이 뜻밖이다. "와인은 몸에 안 받아 못 먹는 대신 막걸리를 좋아해요. 전북 정읍에서 생산되는 '송명섭 막걸리'를 특히 좋아해서 갖다 놨는데 찾는 사람이 없어 메뉴에서 사라진 게 많이 아쉬워요." 단맛이 전혀 없어 쉽게 친해지기 힘든 송명섭 막걸리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술 좀 마시는 것 같다. 주방은 박 씨의 어머니 담당이다. 2010년 10월 14일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메뉴판이 "술 한잔 하실래요"라고 묻는다. '살롱'이라면 언제든지…. 외국 손님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곳으로도 괜찮겠다.

부추전 등 각종 전 1만 원, 황태구이 8천 원, 두부와 삼겹김치볶음 1만 1천 원. 영업시간 오후 4시~오전 2시. 부산 부산진구 부전2동 219의 1. 엔젤호텔 맞은편. 051-808-8870.




좋은 재료만 쓰는 남천동 '남천전집'

깻잎 · 동태 · 굴 · 호박 · 새송이 · 시금치가 '뜨근뜨끈' '아삭아삭'


'남천전집'이용기 대표가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 모둠전을 선보이고 있다.

전(煎)이란 생선이나 고기, 채소 따위를 얇게 썰거나 다져 양념을 한 뒤 밀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진 음식을 통틀어 말한다. 그동안 전은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막걸리를 졸졸 따라 다녔다. 세상이 많이 변해 전이 독립을 선언하며, 전 전문점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대개는 깔끔하기만 한 프랜차이즈 전집이어서 아쉽다. 전에는 뭔가 좀 인간적인 냄새가 필요하지 않을까.

자동차 세일즈를 하다 어느 날부터 연극배우로 변신한 친구가 극단 근처에 위치한 이 작은 전집을 소개해 주었다. 제철을 맞은 노란 배추가 달다. 배추는 얼마든지 가져다 먹어도 괜찮다. 다 못 먹은 배추는 나중에 배추전을 해 주었다. 물컹한 배추전에서 예전에 몰랐던 특별한 맛이 느껴졌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럴까.

막걸리도 한 잔 곁들이지 않을 수 없다. 깻잎전, 동태전, 호박전, 새송이전,돈저냐(동그랑땡)가 골고루 나오는 모둠전을 시켰다. 호박전은 부드럽고 달콤하다. 갓 구워서 먹으니 뜨끈뜨끈해서 모든 전이 다 맛이 있다. 맛이나 좀 보라며 시금치전을 주었다. 시금치와 밀가루밖에 안 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단맛이 날까. 가미가 안 된 재료 본연의 맛이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전집, 이날은 이용기 대표 혼자라 더 바쁘다. "저는 요리사 출신이 아니라 안 좋은 재료를 쓰면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비결은 재료에 있었다. 배추는 이 씨의 고향인 하동에서 가져온다. 굴전에는 생굴, 돈저냐에도 생고기를 사용한다.

전을 뒤집는 이 씨. 법대를 나와 산 속에서 3년, 서울 신림동 고시원에서 5년 등 10년 가까이 고시 공부에 매달렸단다. 미안하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은 판·검사님보다 지금 더 잘 어울린다. 이 씨의 가장 큰 걱정은 즉석에서 전을 구워내는데 걸리는 시간이란다. 칼칼하고 깔끔한 오뎅탕은 전 먹고 나서 특히 일품이다.

먼저 자리 잡은 어르신들이 취재를 거들었다. "우리 엘리트 사장이 이거 할 사람이 아닌데, 장사가 잘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걱정이야. 설 직후라 집에 음식이 많은데도 장사 잘되나 궁금해서 한번 와 봤지." 시금치전이 입 안에서 아삭, 아삭 소리를 내었다.

모둠전 1만 2천 원, 생굴전·해물파전 1만 원, 땡초부추전 7천 원. 부산 수영구 남천동 556의 17 대성상가 A동 102호. 남천해변시장 탑마트 골목. 영업시간 오후 5시~오전 2시. 2, 4주 일요일 휴무. 051-612-1181.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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