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가면] 팔각정

입력 : 2012-02-23 16:17:00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밤·은행·완두콩 등 잡곡이 촘촘히…밤하늘의 별밥이네

낮에 먹었던 밥이 밤이 되니 생각이 났다. 풍성한 반찬, 부드러운 고기, 언제나 좋아하던 술이 아니라 의외였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었던 사진을 꺼내 보았다. 사진에 담긴 밥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밤, 은행, 완두콩 등 잡곡은 밤하늘의 별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겨울비가 내리던 날 약속 장소인 범어사 근처 '팔각정'에 갔다. 분명 처음 가는 집인데 장소가 낯이 익었다. 소나무, 우물, 연못, 그리고 돌 사자상까지.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이 집은 몇 번인가 주인이 바뀌더니 '팔각정'으로 거듭 났다. 예전에 비하면 밝고 현대적으로 바뀌었다.

이날 영양정식, 오리불고기, 유황오리 한방백숙을 골고루 맛보았다. 영양정식에 딸려 나오는 반찬 종류가 꽤 많아 놀랐다. 반찬을 안주 삼아 충청도 한 양조장에서 가져 왔다는 동동주를 마셨다. 달짝지근하지만 마시다 보면 못 일어난다는 '앉은뱅이 술'이다. 비도 오는데….

유황오리 한방백숙은 고기도 육수도 만족할 만큼 좋았다. 오리는 밥상으로 내려와 부드럽게 세로로 다리를 찢었다. 진한 육수는 끝도 없이 들어갔다. 온천탕에 들어갈 때의 기분이 딱 이랬다. 아이고 좋다! 시원한 탄성이 속에서 터져 나왔다. 어쩐지 불의 냄새가 난다고 했더니 90일간 유황을 먹인 오리라 그런 모양이다. 2007년 서울국제음식박람회에 출전해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은 작품이다. 양파, 당근, 감자, 시금치를 넣고 양념한 오리불고기도 상추에 싸서 먹으니 잘 어울린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밥을 보고는 식욕이 당겼다. 찰기가 찰찰 흐르는 밥이 참 맛있다. 이 밥 때문에 온다는 사람들까지 있다. 김현경 (65) 대표에게 어떻게 해서 밥이 이렇게 맛이 있는지 물었다. 김 대표는 "미안하지만 우리 집은 추가밥을 시키면 4천 원을 받는다. 대한민국에서 추가밥 4천 원 받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한다. 찹쌀이 좀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100% 찹쌀밥이다. 주방에는 밥만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다른 데 신경을 쓰면 밥이 자칫 안 될 수 있어서 그렇다. 맛있는 밥을 짓기란 이렇게 어렵다.

우리는 자주 잊지만 밥상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밥이다. 농부시인 김종구는 '밥 숟가락에 우주가 얹혀있다'는 시에서 '밥은 해의 살점이고, 바람의 뼈고, 물의 핏덩이고, 흙의 기름이다'라고 노래했다. 밥이 사람을 대접하고, 또 밥이 대접을 받는 집이다. 식사 후에 야외 카페에서 정원을 보며 무료로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영양정식 1만 3천 원(점심특선 1만 1천 원), 오리불고기 3만 5천 원, 유황오리 한방백숙 5만 5천~6만 5천 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부산 금정구 남산동 81. 남산초등학교 옆. 051-582-8866.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