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요리하는 유학파 젊은 남자들 "파스타의 세계는 넓다"

입력 : 2012-03-15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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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창녀의 파스타'.

문득 요리란 인생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재료를 쓰더라도 반드시 그 맛이 좋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변변찮은 재료를 가지고도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결과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 달려 있다. 

서면과 부경대 근처에서 요리로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요리를 하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젊어 보인다. 세월이 좀 더 지나면 지금과 다른 어떤 맛이 날까.


부전동 파스타집 '비토'

'비토'의 김상진 셰프.

'가내수공업 양식당'이라는 특이한 소개, 수염에 뒤덮인 주인장의 자화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블로거들 사이에서 요즘 화제인 서면의 파스타집 '비토' 이야기다.

오너 셰프 이름이 김상진(36)이란다. 귀에 익었다 했더니 연산동 '그린스푼'의 셰프였던 그 김상진이다. 그가 경영하는 첫 가게. 홀 한쪽에 각종 요리 책이 꽂힌 '오픈 사무실'을 마련해 두었다. 테이블도 몇 개 안 되는 작은 가게인데.

차림표를 보면 이 아저씨(결혼 3년차)의 정신세계가 보인다. '할머니 라구요' '늙은 창녀(푸탄네스카)의 파스타' '깔보지마라 파스타' '좋아? 졸라! 파스타' '대구멸치공방전' 등등. 이것 참 부끄러워서 주문하겠나. 파스타를 시키면 식전빵 및 수프, 식후에는 허브티까지 주니 부끄러워도 참자.

메뉴에는 그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할머니'는 이탈리아 ICIF 요리학교 다닐 때 교수님댁 할머니가 해 주신 파스타를 떠올리며 만들었다. '늙은 창녀'는 시간에 쫓기던 그녀들이 집안에 있던 재료로 대충 만들어 먹은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할머니'가 '늙은 창녀'보다 맛있다고 느꼈다. '할머니'는 페투치니(Fettuccine)라는 굵은 면을 사용했다. 굵은 면이 식감도 좋고, 소스를 쪽쪽 빨아들여 맛도 더 낫게 느껴진 덕분이다.

'좋아? 졸라! 파스타'.

면을 직접 만들어 쓰는데 특히나 생면은 졸깃하다. '비토'는 기본이 '알덴테(면발이 단단하게 삶긴 상태)'이다. '깔보지마라 파스타', 이름이 왜 이럴까. 까르보나라 파스타는 우리나라에서 입맛에 맞게 변형이 많이 되어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치즈와 계란 노른자로 박력있게 맛을 내 깔보면 큰코 다친다. '좋아? 졸라! 파스타'에는 쇠고기 채끝살이 어우러졌다. 파스타에 스테이크 먹는 느낌이 곁들여졌으니 좋을 수밖에.

김 셰프는 음식을 하며 떠오른 이런저런 생각을 늘 메모를 해두었단다. 오너가 된 김 셰프, 냉장고도 일부러 작은 걸 들여놓고 매일같이 장을 보러 가는 부지런을 떤다. 그는 "이전에는 실험을 좋아해 요리로 너무 있는 척해서 사람들이 어려워한 것 같다. 지금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요리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불필요한 장식이 빠진 지금이 이전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참, '비토(vito)'는 김 셰프가 이탈리아 있을 때의 이름이자, 제일 흔한 마피아 이름이란다. 어쩐지.

파스타 1만~1만 4천 원, 샐러드 5천 원. 음료수 3천500~6천 원.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10시. 월요일 휴무.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168의 15. 밀리오레 맞은편 '죽마을' 골목 직진하다 첫 번째 골목에서 좌회전해서 2층. 051-806-5868.



대연동 '카페 비알오'

수제 햄버거.

형제 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나이가 들면서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카페 비알오', 아무래도 카페다 보니 음식이 좀 약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자매도 아닌 형제가 카페를 열었다', '형은 요리, 동생은 커피'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비알오(Bro)'는 영어로 '형제(Brother)'의 약자다. 유럽 스타일의 진한 커피와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과 디저트를 제공하는 로컬 카페를 지향한다. 카페의 로고까지 형제가 잔을 들고 등을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 역시 형제는 많이 닮아 보였다. 호주에서 요리를 전공한 형 김상진(33) 씨가 만든 음식을 동생 태호(28) 씨의 서빙으로 즐겨보기로 했다.

파스타의 세계는 참으로 넓다. 스파게티를 만드는 국수 면만 알았지 '라자냐'처럼 판때기로 된 파스타가 있는 줄은 몰랐다. 라자냐는 판 파스타 위에 여러 재료를 넣고는 모차렐라 치즈를 뿌리고 토마토 미트 소스에 버무렸다. 풍부한 재료가 내는 흐뭇한 맛이다. 카페 음식이라 양은 많은 편이 아니다. 모든 음식이 수제다. 예쁜 수제 햄버거 위에 덮인 샛노란 치즈를 보는 순간 식욕에 불이 반짝반짝 들어왔다. 먹어도 별 부담이 없다. 기왕 먹는 김에 '치즈한 치아바타'까지 손을 댔다. 치아바타는 이탈리아 말로 납작한 슬리퍼라는 뜻. 겉은 딱딱하고 속은 쫄깃하다. 이런 식감이면 슬리퍼라도 씹어 먹겠다.

상진 씨는 취미로 요리를 하다 요리학교를 가게 되었다고 했다. 부산에서 대학 다닐 때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다. 동생 태호 씨는 2006년 처음 접한 에스프레소의 맛에 취한 뒤 커피에 빠져 미국에서 큐그레이더(커피감정사) 자격까지 취득한 바리스타이다. 카페 안에는 이렇게 음식과 커피 관련 책이 반반씩 사이좋게 놓여 있다. 웬만한 부부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 형제. 나중에 레스토랑과 카페 구분을 하더라도 계속해서 같이 있고 싶단다. 디저트로 맛본 요거트가 달콤하다.

꿈을 실현해 가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즐겁다. 부산에 개성 있는 카페가 늘어나는 게 좋다. 메뉴가 많지 않아 상진 씨의 음식 솜씨를 더 많이 구경하지 못한 점은 좀 아쉽다.

라쟈냐+음료 9천 원, 햄버거+음료 9천~1만1천500 원, 샌드위치류 5천 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1시. 부산 남구 대연동 458의 1. 부경대 쪽문 앞(담벼락 끝자락). 051-624-8120. 

치킨 랩 샌드위치.
치즈한 치아바타.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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