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 가격 · 분위기 … "참 잘 먹고 왔습니다"

입력 : 2012-04-05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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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맛이 특별하다

청양고추를 얹은 오리 왕소금구이(위)와 흑임자를 넣은 오리 한방 죽.

 오리고기가 몸에 좋다는 말은 종종 들었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다이어트에 좋다거나 면역력 증진에 효과가 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주변에 오리고기 예찬론자들의 말을 열심히 들으면서도, 오리고깃집에 갈 때는 좀 까탈스럽게 굴었다. 전생에 폭발물 탐지견이었나 싶을 정도로(?) 극도로 발달한 후각 때문이다. 특유의 냄새가 거슬리지 않고 맛도 괜찮은 집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얼마 전에 꽤 괜찮은 오리고깃집을 발견했다.

구서동 '영동오리'

오리 혀로 시작해 '보약'으로 마무리 …


자신의 일을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오리구이를 파는 일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부산 금정구 구서동 '영동오리'의 정태준 사장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그것도 '종합 예술'이란다. 흔한 광고 문구 같지만, 맛과 서비스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니 예술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청양고추를 얹은 오리 왕소금구이(위)와 흑임자를 넣은 오리 한방 죽.
예술의 맛(?)은 약간 당황스러운 음식부터 시작됐다. 왕소금구이를 주문하자 오리 혀가 먼저 나왔다. "오리는 혀에 뼈가 있는 몇 안 되는 동물로, 경련을 자주하는 아이들에게도 좋고…." 고기를 불판에 얹으며 직원이 친절하게 오리 혀의 효능에 대해 설명해 준다. 오래 구워야 해서 불판에 제일 먼저 올리는데, 맛은 제법 쫄깃하고 고소했다.

고기는 살짝 얼어 있었다. 불판 위에 고기를 수북이 놓고 청양고추를 그 위에 얹는다. 청양고추로 냄새도 잡고, 칼칼한 맛을 내기 위해서란다. 직원이 옆에서 고기를 구워 주는데, 이유가 있었다. 육즙이 고기 안에 잘 배도록 요령이 필요해서다. 그 요령이란 불판 위에서 고기를 집게로 살살 만져주듯 뒤집고 흔들면서 굽는 것이었다. 고기 굽는 방식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익힌 고기 먹는 법도 직원이 옆에서 일러준다. 1인당 1만 원꼴의 비교적 저렴한 오리고깃집에서 이렇게 '밀착 서비스'를 받기는 처음이다. 아무튼 그냥 먹는 것보다 상추에 고추장아찌와 양파 등을 함께 싸 먹는 것이 맛있다고 일러준다.

소금구이 오리고기는 직원의 정성스러운 손놀림 덕분인지 육질이 부드러웠다. 청양고추 덕분에 맛이 깔끔했다. 쌈을 싸서 먹으니 맛도 풍부해진다. 간이 제대로 된 고추장아찌, 된장에 버무린 아삭한 고추, 새콤달콤한 겉절이는 각각 따로 먹을 때보다 함께 먹으니 더 맛이 있다.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조합이다.

오리고기를 먹은 뒤엔 식사로 한방 죽을 주문했다. 흑임자가 듬뿍 들어가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한 상 잘 먹고 나가려는데, 직원이 "보약 드시고 가라"며 발길을 잡는다. 웬 보약? 식혜나 수정과 같은 후식을 내놓으면서 보약처럼 몸에 좋다고 붙인 이름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정말 한약처럼 생긴 것을 들고 와서 그릇에 부어준다. 일종의 십전대보탕이라며 오리 머리와 각종 한약재를 넣고 달였다고 했다.

오리 혀를 내놓을 때부터 범상치 않다고 했더니, 마무리도 참 개성적이다. 약재 한 사발을 들이키고 나니 "참 잘 먹었다"는 인사가 저절로 나왔다.

오리 왕소금구이·양념숯불구이 1마리 2만 원. 오리 한방 죽 2천 원.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연중무휴). 부산 금정구 구서동 162의 10 구서동 보람병원 뒤. 051-516-5292.


대연동 '초원의 집'

입에서 살살 녹는, 녹차로 찐 담백함


'초원의 집'이라는 가게 이름이 참 서정적이다. 녹차 음식 전문점인데다, 가게가 들어선 빌딩 이름도 초원빌딩이라 그렇게 지었단다. 초원의 푸른 기운을 품은 오리고기의 맛이 자못 궁금했다. 

부추가 듬뿍 들어간 오리찜(위)과 녹차를 넣은 면으로 만든 들깨 칼국수.
이 집에 오기 전 아주머니들 계모임 장소로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한껏 기대를 했다.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 어머니들이 좋아하는 곳이라면 분명 맛과 가격, 그리고 분위기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었으리라.

이 집 차림표에는 특이하게 오리구이나 훈제 오리가 아니라 오리찜이 맨 위에 적혀 있다.

주저 없이 주문했는데, 막상 나온 것은 양념 불고기였다. 어찌 된 일인가 하니, 오리를 한 번 쪄낸 후에 다시 갖은 양념과 재료를 넣고 볶아 낸 것이란다.

음식 맛은 먹기도 전에 눈과 코로 전해졌다. 싱싱한 부추와 오리고기가 소복하게 쌓인 오리찜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향긋한 부추 냄새도 솔솔 올라왔다. 입안에 침이 고이면서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리고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식감 때문에 그야말로 입에서 살살 녹는다. 고춧가루 양념을 했는데도 맵지 않고 순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견과류를 갈아서 넣었나 싶을 정도로 뒷맛은 고소하다. 고추냉이로 살짝 간을 한 무채와 함께 먹으니 개운하다.

오미숙 대표는 녹차를 비롯해 각종 재료를 넣은 육수에 오리를 찌는 것이 비법이라고 했다. 그 비법이 맛을 내는데 일등 공신이긴 하겠지만, 오 대표의 기본 내공이 바탕이 된 듯했다. 밑반찬의 정갈한 맛을 보니 그랬다. 바삭한 파래 전은 찰지고, 굴이 든 깍두기나 평범한 듯 보이는 김치도 밥도둑이다.

식사 후 양념에 밥을 볶아 먹거나 들깨 칼국수를 추가로 주문해 먹는 것이 보통이다. 들깨 칼국수는 녹차로 만든 면을 쓴다. 밥과 면,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맛이다.

오리찜뿐 아니라 돼지 보쌈도 맛나서, TV에 맛난 보쌈집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 집에 오면 돼지고기와 오리고기 사이에서 고민깨나 해야 할 듯하다.

오리찜 소 3만 원, 중 3만 5천 원. 대 4만 원.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9시 30분(첫째·셋째 일요일 휴무). 부산 남구 대연3동 245의 225 남부경찰서 인근 대우그린아파트 맞은편. 051-628-3055.

글·사진=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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