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치커피, 12시간 우려낸 정성… 그 깊고 그윽한 향에 홀렸다

입력 : 2012-04-05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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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빈' 박청희 대표가 더치 커피 추출 장치 앞에서 더치 커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얼음물로 12시간에 걸쳐 추출되는 더치 커피는 카페인 함량이 현저히 낮아 부드럽고 맛이 깊다.

'버니빈' 박청희 대표가 더치 커피 추출 장치 앞에서 더치 커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얼음물로 12시간에 걸쳐 추출되는 더치 커피는 카페인 함량이 현저히 낮아 부드럽고 맛이 깊다.

예전에 정일근 시인이 어느 일간지에 남긴 글 중 문구 하나가 눈에 콱 들어왔던 적이 있다. '지금 내 앞의 감동의 한 잔은 신의 커피다.' 신의 커피? 그런 게 있나? 얼마나 맛있으면….

정 시인이 말한 바는 '더치(Dutch) 커피'였다. 그는 처음 더치 커피를 맛보고는 감동했는데, 그 표현이 이랬다. '병마개를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커피향이 퍼져 나온다. 참을 수 없는 이 향취를 여신의 유혹이라 표현을 해도 좋을 것이다.' 비가 오는 날 우연히 친구 집에서 더치 커피를 처음 접했는데, 좋은 와인을 마시는 느낌이었단다. 와인을 '신의 물방울'이라 하지 않나. 그래서 더치 커피는 '신의 커피'가 되는 것이다.


#깔끔하게 정제된 맛, 여운이 오래 남아

더치 커피 원액을 뜨거운 물에 타는 모습.
정 시인이 한 잔의 커피에 왜 그리 매혹됐나, 그 이유를 부산 송정의 커피 전문점 '버니빈'(051-704-9030·부산 해운대구 송정동 86의 2)에서 짐작케 됐다. 바깥 간판에 '원두커피 볶는 집'이란 타이틀을 내걸었으나, 박청희 대표는 '커피문화원'이라 불러 달라 했다. 다양한 커피를 시험하고 즐기는 곳이란 의미다. 그는 한국 커피 문화의 대세는 더치 커피로 갈 거라 전망했다. 깔끔하게 정제된 더치 커피의 매력이 한국 사람 입맛에 맞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와인병처럼 코르크 마개 장치가 된 유리병을 들고 왔다. 안에 든 게 더치 커피 원액이라 했다. 마개를 열자, 정 시인이 말했던 바, 커피향이 퍼져 나왔다. 향에 껄끄러움이 없다. 잡내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를 뜨거운 물에 적당한 비율로 섞으면 비로소 마실 수 있는 커피가 된다. 약간 신 듯한 맛? 코스타리카 산이라 했다. 아주 정제된 느낌이다. 커피 볶을 때 나오는 기름기, 그런 게 없다. 조금은 밋밋하다 싶은데, 그래서 오히려 깔끔한 뒷맛이다. 단조롭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 맛. 튀지 않는 커피다. 보통의 핸드 드립으로 만든 코스타리카 커피는 달콤한 가운데 신맛이 강하다. 같은 재료인데도 전혀 다른 커피가 된 것이다.


#얼음처럼 찬 물로 12시간 추출

더치 커피는 유래가 있다. 17세기 인도네시아 커피를 유럽에 팔던 네덜란드 상인들. 항해하는 동안 커피를 마시고 싶었으나 요동치는 배 위에서 불을 피워 커피를 끓이기는 쉽지가 않았고 자주 할 수도 없었다. 찾아낸 방법이 뜨거운 물이 아닌 찬물로 장시간 우려내는 것. 그렇게 네덜란드인에 의해 유래됐으나 현재의 추출법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박 대표는 더치 커피 추출 장치를 보여줬다. 제일 위에 물을 담는 수조, 가운데 커피가루를 넣는 커피탱크, 아래는 추출된 커피를 담는 용기, 그렇게 이뤄져 있다. 수조와 커피탱크 사이엔 밸브 장치가 있는데, 여기서 물방울이 3초에 한 방울씩 떨어진다. 그렇게 떨어진 물방울이 커피가루를 통과하며 추출된 커피액이 다시 한 방울씩 용기로 떨어져 모이는 것이다.

커피탱크 한 통엔 400g의 커피가루가 들어가고 거기서 추출되는 커피 원액은 2천500㏄ 정도다. 이 과정이 12시간 걸린다. 중요한 건 시간 외에 물이다. 더치 커피는 찬물로 추출한다. '버니빈'에선 물 대신 아예 각얼음을 넣는다. 여기에 더치 커피의 비밀이 있다.
'버니빈'에 진열된 수십 종의 커피 원두.


#와인처럼 숙성된, 맛과 향이 응축된 커피

더치 커피로 만든 아이스 커피.
커피의 카페인은 추출하는 시간이 짧을 수록 그 양이 줄어든다. 고압으로 빠르게 추출하는 에스프레소에 카페인이 일반 커피의 절반 정도인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커피 카페인은 섭씨 80도 정도에서 물에 녹는 성질이 있다. 찬물로 추출하면 카페인 추출량이 현저히 줄어든다. 얼음물은 더 그렇다. 그리해서 나온 더치 커피의 카페인 함량은 에스프레소의 1/3 정도다.

또 차가운 물이 내려오면서 커피 고유의 향들을 응축시킨다. 더치 커피 원액 자체는 그다지 향이 나지 않으나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향이 화악 퍼진다. 그 느낌이 좋아 더치 커피를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12시간 오랫동안 추출하다 보니 커피의 온전한 맛을 제대로, 또 숙성시켜 뽑아낸다는 점도 더치 커피의 장점이다. 와인처럼 깊은 맛이 난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비와 재료만 갖춘다고 좋은 더치 커피가 되는 건 아니다. 박 대표는 로스팅, 즉 커피 볶는 기법에 나름의 비법이 있다 했다. 그 때문에 자기 집 커피 맛이 유독 부드럽다는 것이다. "공복에 마셔도 전혀 속이 쓰리지 않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거기에 볶은 커피를 가루 낼 때에도 입자를 여러 종류로 달리해 만든다. 그래야 추출했을 때 커피의 균일한 맛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한 포씩 갖고 다니며 즐길 수도

'버니빈'에서 만드는 더치 커피의 종류는 코스타리카를 비롯해 파푸아뉴기니,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인도네시아 만델링, 콜롬비아 산 등 10여 가지. 일반의 핸드 드립으로 만든 커피와 비교하자면 대체로 텁텁함이 적고 향이 입 안에 오래 남는다는 특징이 있다. 더치 커피의 원액을 맛보니, 크림과 같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났다. 이를 뜨거운 커피로 즐기려면 원액 30㏄ 정도에 물 100~150㏄ 정도를 섞으면 된다. 아이스커피로 할 경우 물과 원액을 1 대 1 정도로 하면 된다. 얼음이 녹으면서 희석되기 때문이다.

일반 드립 커피에 비해 더치 커피는 비싸다. '버니빈'의 경우 매장에서 마시는 경우 일반 커피는 3천~4천 원인데 비해, 더치커피는 7천 원이다. 원액을 유리병 안에 넣어 팔기도 하는데, 양이 200㏄ 정도로 많아 한 번에 다 마시지 못할 경우 코르크 마개가 있다해도 산화해버려 맛과 향이 변질되는 폐해가 있었다. 그래서 박 대표는 최근에 팩 안에 원액을 30㏄ 정도 진공포장해 넣은 스틱형 더치 커피를 개발했다. 30㏄는 한 번에 타 먹기 좋은 양이다. 가격은 10개들이 한 박스에 1만 2천 원. 박 대표는 석 달이 지나도 맛과 향이 변하지 않더라고 했다. 글=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사진=김병집 기자 b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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