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은 곳이 맛도 좋네… '건축과 만난 음식학개론'

입력 : 2012-05-10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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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녹색의 정원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는 '엘 올리브 가든'.

김정운 명지대 교수가 쓴 책 '남자의 물건'을 보면 만년필을 사 모으는 그에게 은행 지점장하는 친구가 타박을 한다. 김 교수는 "넌 죽을 때까지 200원짜리 볼펜이나 쓰다 죽어라"고 저주를 퍼붓는 장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음식도 그런 것 같다. 늘 좋은 음식을 먹을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좋은 날 어쩌다 좋은 곳에 가면 행복하다. 부산에서 최고의 레스토랑을 찾다 보니 공교롭게도 건축과 연결되어 있었다. '건축과 만난 음식학개론' 편이다.

엘 올리브 가든 망미동

■ '엘 올리브 가든'
 

그렇게 잘 자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 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큰 나무로 성장하더니 이제 넉넉한 뜰을 품고 손짓을 한다. 부산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자리 잡은 '엘 올리브'가 바로 옆 크리에이티브센터에 최근 '엘 올리브 가든'(이하 '가든')을 연 것을 보고 든 생각이다. 기존의 '엘 올리브'가 편안한 개념의 레스토랑이라면 '가든'은 좀 더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에 가까운 차이가 있다. 13세 미만은 부모와 함께라도 출입 금지다. 타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도 음식을 제대로 즐기라는 배려다. '가든'은 이미 센터 내 '이인 아트홀'에서 매달 한 차례씩 정기 공연을 열고 있다. 또 요리교실도 열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각오다.

가든에서 가꾼 꽃나무
그대로 허브요리에 사용
아로마와 함께 시작하는
아름답고 품격 높은 코스

'가든'은 이름처럼 예쁘다. 정원에는 먼나무, 돌단풍, 물망초 등 나무와 꽃이 잘 가꾸어져 있다. 요리에 들어가는 허브도 여기서 나온다. 자리에 앉으니 창밖으로 보이는 신록이 청량하다.

코스 요리 위주의 '가든'을 즐겨보기로 했다. 엘 올리브의 식전 빵은 언제나 좋다(왜 빵집은 안 여나 몰라). 로즈마리였던가, 말린 허브를 내놓더니 여기다 핑크빛 물을 붓는다. '아로마 플레이트', 먼저 향을 먹으라는 것이다. 명지 갈미조개와 제주산 '딱새우'가 든 토마토 수프는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전복 요리에는 여백의 미가 담겼다. 음식은 이렇게 오감으로 먹는다. 라자냐 생면 파스타 위에 '오늘의 생선' 도미가 올랐다. 파스타와 생선이 이렇게 궁합이 잘 맞을 줄이야. 셔벗으로 입을 한번 가셔주고는 메인인 안심 스테이크다. 스테이크는 두말하면 잔소리. 아름다운 디저트까지, 끊임없이 입맛을 끌어올린다. 정신 차리고 보니 살짝 얄미운 생각까지 든다. 실컷 먹었는데도 기분 나쁜 포만감이 없다. 아주 잘 계산된 양이다. 공간은 사람의 품격에 분명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같은 요리사의 음식도 이렇게 차이를 가져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엘 올리브 고성호 대표는 "건축으로 요리를 재해석했다"고 심플하게 말했다. 원재료의 물성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고, 따라서 마법의 소스 따위는 없다. 엘 올리브는 수영강, 바다, 광안대교와 멀지 않다. 부산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소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이 되고 싶단다. '이인'은 '利人'으로 홍익인간과 비슷하다.

코스 요리 6만 7천 원, 7만 8천 원, 9만 5천 원. 부가세 10% 별도. 영업시간 오후 6시~자정(식사는 오후 9시 30분까지). 부산 수영구 망미동 206의 5. 수영강변 좌수영교 인근. 051-750-2200.


라벨라치타 광안리

■ '벨라치타' 시리즈


광안리 해수욕장 입구에 상당히 흥미진진한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내부 인테리어는 물론 외양도 심상치 않다. 꽃을 가득 실은 지프를 벽에다 그대로 쳐박아넣었다. 어떤 분이길래 이런 파격을. 이야기를 듣고 보니 좀 이해가 간다. 모태는 지금도 이 자리에 있는 '도시갤러리'다. 갤러리를 하면서도 음식에 관심이 많아 해운대 씨클라우드호텔에 '벨라치타'를 열었다. 벨라치타는 이탈리아 음식을 제대로 한다고 소문이 났었다. 그래도 성이 안 찼던지 도시갤러리 주변으로 '라벨라치타', '벨라페스타' 같은 자매 레스토랑을 잇따라 여는 중이다.

건물 가운데에 정원이 자리잡고 있는 복합문화공간 `라벨라치타`.


'도시갤러리'에 들어선
미로 같은 복합문화공간
피자부터 최고급 코스까지
층별로 색다른 맛과 멋

복합공간이라 쓸모가 많다. 가장 많이 알려진 1층의 '라벨라치타'에서는 피자나 파스타 같은 단품 요리를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좀 조용한 장소를 원한다면, 혹 와인이라도 기울이자면 2층(특히 '지안'이라 부른다)이 제격이다. 야간에는 광안대교가 보이는 전망도 좋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공간이 코스 전문 이탈리안 레스토랑 '벨라페스타'다. 방이 4개에 불과한데 포근한 동굴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난다. 시간이 걸리는 요리를 하기에 적어도 하루 전 예약이 필수. 코스 요리는 단 한 종류, 가격은 11만 원에 부가세 10% 별도이다. 가격면에서 부산 최고 수준이다. 이해를 하자고 들면 음식 값에 예술 감상비도 포함된 것 같다. 벽에 걸린 그림, 음식을 담아 내놓는 그릇까지 모두 유명 작가의 작품이다. 어떤 그릇에 음식을 낼지도 매일 신중하게 선정한단다.

유학파 셰프가 분자요리,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진공포장 저온요리 같은 최신 유행의 솜씨를 발휘한다. 안심 카르파치오가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아주 얇다. 아스파라거스로 기둥을 만들고 위에다 채소를 올려 광안대교라고 만들어 놓았다. 바닥에 깔린 노란 치즈는 모래를 상징한단다. 상견례나 파티장으로 많이 이용된다. 프러포즈 행사도 열어준다. 부산에서 이같은 금액으로 음식점 유지가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다는데 벌써 문을 연지 1년이 되었단다.

음식을 먹고 나서는 정원을 거쳐 미로처럼 생긴 이 건물을 한 바퀴 돌아봐도 재미있다. 도시갤러리에서는 늘 전시회가 열린다. 요즘 들어 하우스웨딩도 곧잘 열린단다. 경성대 근처의 '문화골목'을 만든 최윤식 씨가 설계 및 인테리어를 담당했단다. 역시다.

라벨라치타 및 지안 기준. 코스 요리 5만, 7만 원. 점심 세트 1만 8천 원. 영업시간 낮 12시~자정. 부산 수영구 광안2동 202의 2. 파크호텔과 투썸플레이스 광안점 사이. 051-711-0010.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사진=블로거 '울이삐'(busanwhere.blog.me)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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