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 명지대 교수가 쓴 책 '남자의 물건'을 보면 만년필을 사 모으는 그에게 은행 지점장하는 친구가 타박을 한다. 김 교수는 "넌 죽을 때까지 200원짜리 볼펜이나 쓰다 죽어라"고 저주를 퍼붓는 장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음식도 그런 것 같다. 늘 좋은 음식을 먹을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좋은 날 어쩌다 좋은 곳에 가면 행복하다. 부산에서 최고의 레스토랑을 찾다 보니 공교롭게도 건축과 연결되어 있었다. '건축과 만난 음식학개론' 편이다.
엘 올리브 가든 망미동
■ '엘 올리브 가든'
그렇게 잘 자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 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큰 나무로 성장하더니 이제 넉넉한 뜰을 품고 손짓을 한다. 부산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자리 잡은 '엘 올리브'가 바로 옆 크리에이티브센터에 최근 '엘 올리브 가든'(이하 '가든')을 연 것을 보고 든 생각이다. 기존의 '엘 올리브'가 편안한 개념의 레스토랑이라면 '가든'은 좀 더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에 가까운 차이가 있다. 13세 미만은 부모와 함께라도 출입 금지다. 타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도 음식을 제대로 즐기라는 배려다. '가든'은 이미 센터 내 '이인 아트홀'에서 매달 한 차례씩 정기 공연을 열고 있다. 또 요리교실도 열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각오다.
가든에서 가꾼 꽃나무
그대로 허브요리에 사용
아로마와 함께 시작하는
아름답고 품격 높은 코스
'가든'은 이름처럼 예쁘다. 정원에는 먼나무, 돌단풍, 물망초 등 나무와 꽃이 잘 가꾸어져 있다. 요리에 들어가는 허브도 여기서 나온다. 자리에 앉으니 창밖으로 보이는 신록이 청량하다.
코스 요리 위주의 '가든'을 즐겨보기로 했다. 엘 올리브의 식전 빵은 언제나 좋다(왜 빵집은 안 여나 몰라). 로즈마리였던가, 말린 허브를 내놓더니 여기다 핑크빛 물을 붓는다. '아로마 플레이트', 먼저 향을 먹으라는 것이다. 명지 갈미조개와 제주산 '딱새우'가 든 토마토 수프는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전복 요리에는 여백의 미가 담겼다. 음식은 이렇게 오감으로 먹는다. 라자냐 생면 파스타 위에 '오늘의 생선' 도미가 올랐다. 파스타와 생선이 이렇게 궁합이 잘 맞을 줄이야. 셔벗으로 입을 한번 가셔주고는 메인인 안심 스테이크다. 스테이크는 두말하면 잔소리. 아름다운 디저트까지, 끊임없이 입맛을 끌어올린다. 정신 차리고 보니 살짝 얄미운 생각까지 든다. 실컷 먹었는데도 기분 나쁜 포만감이 없다. 아주 잘 계산된 양이다. 공간은 사람의 품격에 분명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같은 요리사의 음식도 이렇게 차이를 가져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엘 올리브 고성호 대표는 "건축으로 요리를 재해석했다"고 심플하게 말했다. 원재료의 물성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고, 따라서 마법의 소스 따위는 없다. 엘 올리브는 수영강, 바다, 광안대교와 멀지 않다. 부산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소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이 되고 싶단다. '이인'은 '利人'으로 홍익인간과 비슷하다.
코스 요리 6만 7천 원, 7만 8천 원, 9만 5천 원. 부가세 10% 별도. 영업시간 오후 6시~자정(식사는 오후 9시 30분까지). 부산 수영구 망미동 206의 5. 수영강변 좌수영교 인근. 051-750-2200.
라벨라치타 광안리
■ '벨라치타' 시리즈
광안리 해수욕장 입구에 상당히 흥미진진한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내부 인테리어는 물론 외양도 심상치 않다. 꽃을 가득 실은 지프를 벽에다 그대로 쳐박아넣었다. 어떤 분이길래 이런 파격을. 이야기를 듣고 보니 좀 이해가 간다. 모태는 지금도 이 자리에 있는 '도시갤러리'다. 갤러리를 하면서도 음식에 관심이 많아 해운대 씨클라우드호텔에 '벨라치타'를 열었다. 벨라치타는 이탈리아 음식을 제대로 한다고 소문이 났었다. 그래도 성이 안 찼던지 도시갤러리 주변으로 '라벨라치타', '벨라페스타' 같은 자매 레스토랑을 잇따라 여는 중이다.
건물 가운데에 정원이 자리잡고 있는 복합문화공간 `라벨라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