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싹 빼고 속은 꽉 채운 완전음식, 순대

입력 : 2012-06-14 06:19:37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담백한 맛의 순대가 자랑인 '서울마장왕순대'의 별미 배보쌈수육.

순대는 북녘의 음식이다. 고대 북방 기마민족이 양고기 부산물로 만든 휴대용 식량이 기원이라니 그렇다. 부산 등 남녘의 사람들이 순대에 크게 끌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돼지 등의 창자에 피 따위를 섞어 만든다니, 여성들이 찜찜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순대는 어떻게 보면 완전음식이다. 단백질, 철분과 칼슘이 풍부하고 재료에 따라 비타민이니 식이섬유까지 한번에 섭취할 수 있다. 잘만 만든다면 말이다. 부산에서 제법 괜찮다 싶은 순댓집을 둘러봤다.


#  중앙동 서울마장 왕순대, 담백하고 부드러움, 부산으로 온전히 옮겨온 그 맛!

부산에서 김치공장을 운영했다. 어느 순간 사세가 점점 기울더니 결국 부도가 나고야 말았다. 아는 후배한테서 연락이 왔다. 서울에서 순대를 개발해 팔 거란 이야기. 같이하자 했다. 서울로 올라가 마장동 도선 사거리 우시장 옆에서 후배와 함께 순대를 만들어 팔았다. 이런저런 연구와 고민 끝에 하나의 상품이 탄생했다. '서울마장왕순대'. 그렇게 후배의 순댓집 일을 봐준 지 3년여. "부산서 따로 해 보련다" 그러고는 부산에 와서 '서울마장왕순대' 타이틀 그대로 순댓집을 열었다. 2004년의 일이다.

강원덕(67) 씨가 순댓집을 연 사연은 그랬다. 요컨대,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서울마장왕순대'의 맛 내는 비법에 자신의 노고도 온전히 껴들어 있다는 것이다. "대창을 쓰고, 16가지 재료가 항상 변함없이 일정하게 들어가. 몇 가지만 말하자면, 시금치, 부추, 콩나물, 멥쌀, 찹쌀, 돼지 목살, 당근, 양파, 고추…, 그런 재료의 비율이 맛의 핵심인 거라. 양념 배합이 특별한 건데, 인공조미료 그런 걸로만 맛 내지 않고, 포도주하고, 소주하고, 참기름하고, 조미료 하고 섞어서 만들어."

강 씨의 순대는 부드럽고 담백하다. 소피와 돼지피를 7 대 3의 비율로 섞는 게 비법이라 했다. 돼지피로만 하면 너무 텁텁하고 씹을 때 입 안에 뭔가 남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순대의 맹점이랄 수 있는 특유의 불쾌한 냄새도 없다. 강 씨는 "냄새 제거가 순대의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대창은 맛은 좋은데 냄새가 소창 등 다른 내장에 비해 많이 난다. "냄새 나는 건 대창을 잘못 다뤄서 그래요. 다른 건 종업원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대창만큼은 내가 직접 해야 돼. 못 맡겨. 이물질 제거하는 게 힘들거든. 그래서 남의 일 하는 사람은 대충하고 넘어가 버린다고. 그래서 대창만큼은 내가 직접 다룹니다."

순대 등을 넣어 얼큰하게 끓인 술국.
이 집 별미로 배보쌈수육과 술국이 있다. 배보쌈수육은 순대와 함께 돼지수육이 나오는데, 수육 사이사이에 배를 잘라 넣고 피망, 파, 마늘 등을 다져 소스와 함께 얹어 놓는다. 수육이 식어도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수육끼리 달라붙지도 않는다. 배의 시원한 맛에 수육의 느끼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술국은 삼겹살과 순대를 넣고 얼큰하고 맵게 양념해 들깨, 새우젓 등을 넣어 끓인 국. 구수하면서도 얼큰하다. 왕순대모듬 1만 2천~2만 2천 원, 배보쌈수육 2만 원, 술국 1만 5천~2만 5천 원. 부산 중구 중앙동 4가 78의 3. 부산마린센터 앞. 051-469-6622

# 감천동 장미국밥,  10여 가지 좋은 재료가 듬뿍, 북한식의 영양 순대!

남편은 황해도 사람. 입맛이 꽤 까다로웠다. 세상을 떠나기 전 유독 자주 찾았던 게 고향에서 먹던 순대였다. 하지만 천리타향 객지에서 고향의 맛을 찾기가 쉬운 노릇인가. 김영선(65) 씨는 답답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언제 순대 만드는 걸 봤어야지. 생각다 못해 부산에서 유명하다는 돼지국밥집을 찾았다. 거기서 일을 도우며 순대 만드는 법을 배웠다.
`장미국밥`의 순대는 새우젓을 얹어 먹어야 제맛이다.
그러길 여러 해. 남편은 마침내 김 씨가 만들어 준 순대가 평소 찾던 맛이라며 기뻐했다. 자신이 생겼다. 내친김에 순대 파는 국밥집을 열었다.

올해 24년째 된, 부산 사하구 감천사거리 길모퉁이에 있는 '장미국밥'은 그렇게 문을 열게 됐다. 김 씨는 자신의 순대를 아바이순대라 했다. 그런데 기실 강원도 속초 등에서 만들어졌다는 아바이순대는 보지도 못했단다. 그래도 굳이 아바이순대라 한 것은 남편이 생전에 일러준 북한식 순대가 자신이 만드는 순대와 같았기 때문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순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피순대가 그것인데, 돼지 창자 속에 피를 넣을 뿐 내용물로 당면 등은 별로 넣지 않는다. 그에 비해 아바이순대라 불리는, 북한식 순대는 여러 종류의 곡물과 채소 등을 피와 섞어 만든다.

여하튼 김 씨는 순대가 맛나려면 일단은 들어가는 재료를 아낌 없이 많이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청 시래기를 위주로 파, 숙주, 두부, 돼지고기, 좁쌀, 수수, 조 등 10여 가지가 들어간다. 그럼 한 끼 식사로 모자람 없이 푸짐한 순대가 된다.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냄새가 덜한 소창을 쓴다. 김 씨의 대를 이어 '장미국밥'을 운영하고 있는 아들 정재운(39) 씨는 "소금으로 한 번 씻어내고, 뒤집어 또 씻고, 그러길 몇 차례 반복한다"고 했다. 그런 순대를 김치에 싸서 새우젓을 조금 올려 먹으면 깔깔하게 씹히는 가운데 고소한 맛이 배어 나온다.
맑은 국물이 시원한 순대 국밥.
이 집 이름에 '국밥'이 들어간 만큼 순대 국밥이 괜찮다. 국물이 연한 갈색으로 맑다. 시원하게 들이켜진다. 잡내는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 순대 국밥은 따로 끓여 내는 육수에 순대를 담아 내는데, 이 집은 아예 육수를 끓일 때 순대도 함께 넣어 끓인다. 그래야 국물에 순대 특유의 맛과 영양분이 눅진하게 녹아 맛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순대 2만~3만 원. 순대 국밥 7천 원. 부산 사하구 감천1동 455의 13. 051-292-4249.


# 서면 도모, 달콤한 가운데 짭조름함, 일본식 오징어순대!

이카메시(イカ飯)라는 음식이 있다. 일본 홋카이도 등에서 유명하다. '이카'는 오징어이니, 곧 오징어밥이란 뜻인데, 밥이라기보다는 우리식 오징어순대에 가깝다. 속초 등에서 유래된 우리식 오징어순대가 오징어 안에 이런저런 다양한 재료를 섞어 넣는 것과는 달리 이 일본식 오징어순대는 찹쌀만 다져 넣는다.
일식주점 `도모`의 이카메시. 우리의 오징어순대와 흡사하다.
부산 서면 부전2동 주민센터 인근에 있는 일식주점 '도모'에서 그 이카메시의 맛을 봤다.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쫀득하면서도 입안을 묵직하게 만드는 그런 맛. 오징어 향이 사람 식욕을 한껏 돋울 수 있음도 비로소 알았다.

'도모'의 주인은 김영호(44) 씨. 어머니가 일본에서 사는 까닭에 어려서 일본에서 생활했다. 자연스레 일본 음식을 접하게 됐고, 일식 요리사 생활을 20여 년 했는데, 초밥집이나 일식주점 등의 주방장을 지냈다. 올해 초 테이블 겨우 다섯 개의 가게를 열었다. 작지만 자신의 첫 가게. '요리'로서 안주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부산에서 드문 안주용 요리를 생각하다 이카메시를 떠올렸다. 일본에서 도시락으로 판매되는 것도 자주 봤고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기도 했던 것이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아카메시, 이거 만들기가 만만치 않다. 오징어는 물오징어를 쓰는데,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안된다. 일본에선 찹쌀만 쓰는데, 김 씨는 찹쌀과 멥쌀을 6 대 4의 비율로 함께 쓴다. 찹쌀로만 하면 너무 차져서 안주로는 맞다 않는다고 본 것이다. 쌀은 하루 정도 불려서 사용하고, 이 쌀을 오징어 속에 넣고 냄비에 담은 뒤 간장, 맛술, 청주, 설탕 등으로 만든 조림장을 끼얹은 후 약불에서 60여 분 자작하게 졸이면 쌀이 알맞게 익으면서 오징어 향이 짙어지고 와인색으로 변한다.
일본 요리답게 이카메시를 정갈하게 차려낸 모습.
기름기가 전혀 없어 맛이 깔끔하다. 시간이 꽤 걸리는 요리고, 안주로는 귀하게 대접받아야 할 것이다. 주문 받아 즉석에선 만들기는 어렵고, 미리 만들어 식으면 랩에 싸서 보관해 둔다. 김 씨는 '도모'를 작지만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주점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이카메시는 그런 김 씨의 바람에 딱 맞는 안주다. 작지만 꽤 공을 들인 예쁜 안주. 그는 이카메시와 함께 갑오징어로 만드는 물회가 자신이 자랑하고 싶은 요리라 했다. 이카메시 1인 분 1만 원. 부산 부산진구 부전로 20번길 32의 5. 051-808-6688. 글·사진=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