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포탕, 낙지한테 미안해도… 체력 충전 딱이네요

입력 : 2012-06-14 07: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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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물 종합선물세트 같이 푸짐한 '구기영 조방낙지'의 '박속 연포탕'.

더위가 일찍 오니 입맛과 기력도 빨리 잃는다. 보양식을 찾기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몸에서는 '한 그릇 먹어야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라, 대놓고 보양식을 찾는 것이 조금 머쓱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연포탕'.

'연포탕'을 이름 그대로 풀자면 '연한 두부가 들어간 탕'이지만, 시중에는 두부보다 낙지가 주인공인 해물탕으로 통용된다. 한국민속백과사전에는 '두부를 지져 닭고기, 표고, 석이, 다시마 같은 재료들과 함께 끓인 두붓국으로 상갓집에서나 주로 10월에 먹는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연포탕과는 사뭇 다르다. 지역에 따라 닭고기 대신 소고기나 해산물을 넣기도 한다는 해석이다.

낙지는 가을이 제철이긴 하지만, 각종 해물이 들어간 뽀얀 국물을 들이켜면 기력 충전은 문제 없을 것 같다.

명장동 '구기영 조방낙지'

전복·소라 등 해산물 푸짐
탱탱한 낙지 시원한 국물
넉넉한 인심에 반찬도 깔끔

부전동 '서면낙지'

큼지막한 낙지와 전복
개운한 국물 뒷맛은 칼칼
날치알 추가 볶음밥 별미


23년 동네 장사의 뚝심

명장동 '구기영 조방낙지'

찾는 데 애를 좀 먹었다. 번화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검색도 되지 않는 가게였다. 술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기가 막힌 연포탕'을 파는 곳이라는 추천사 한마디와 전화번호만 달랑 듣고 가게를 찾아 나섰다. 작은 동네의 약간 번화한 골목. 긴가민가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화려한 비주얼의 연포탕이 나오는 순간 쾌재를 불렀다. 조개를 먹으려고 껍데기를 열어 제치는 순간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이건 연포탕이 아니라 해산물 종합선물세트 같다. 낙지, 전복, 그린 홍합, 키조개, 새우, 소라, 꽃게…. 눈에 대충 보이는 것만 나열해도 이 정도다. 푸짐한 연포탕을 불 위에 올려놓으니 낙지의 움직임이 애처롭다. 저렇게 처절한 몸부림을 보고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다 익었다며 손질을 해 주는 음식을 머뭇거리며 한 점 먹었다. 낙지에 대한 애도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게걸스럽게 먹어댈 수밖에 없었다. 부드럽고 탱탱한 낙지, 구수한 맛의 새우, 중독성 강한 육수…. 낙지야, 미안하다!

그렇게 많은 해산물이 들어가고도 맛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 그런데 정작 두부는 빠져있다. 구기영 대표는 낙지 들어간 탕을 연포탕으로 알았단다. 연포탕이 아니라 맑은 국물의 해물탕이 된 이유였다. 이렇게 다양한 해물과 시원한 국물이라면, 연포탕이면 어떻고 해물탕이면 어떠랴!

그런데 차림표에는 '박속 연포탕'이라 적혀있다. 박의 속을 넣었기 때문이다. 박 이외에도 각종 해산물을 넣어 육수를 만든다. 불에 오래 올려두면 짠맛이 살짝 강해지니 먹을 때는 적당히 끓이는 것이 좋겠다.

구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23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마늘 하나도 직접 까서 준비해야 하는 성격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밑반찬 맛도 꽤 괜찮다. 양념게장은 게장 전문집 못지않다. 게장만 별도 포장해서 판매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넉넉한 인심과 깔끔한 반찬이 오랜 세월 가게를 유지한 이유인 듯하다.

박속 연포탕 중 3만 원·대 4만 원.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1시(연중무휴). 부산 동래구 명장1동 63의 41. 도시철도 4호선 명장역 2번 출구 인근. 051-528-7055.

큼직한 낙지와 전복, 깔끔한 맛이 돋보이는 '서면낙지'의 '전복 연포탕'.

푸짐한 해산물에서 남도의 맛이

부전동 '서면낙지'


한낮의 더위 속에 옆 테이블에서는 낙지볶음을 먹고 있었다. 벌건 고추장 양념을 야무지게 비비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군침이 돈다. 저걸 주문할 걸 그랬나?

이웃의 식탁을 탐하고 있는데, 낙지 두 마리가 힘차게 요동치고 있는 '전복 연포탕'이 나온다. 큼지막한 전복 두 마리도 냄비 뚜껑에 찰싹 달라붙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생존의 몸부림이 안쓰러우면서도, 생물의 싱싱함에 흡족한 이중적인 감정은 뭐람?! 하여간 녀석들의 움직임으로 봐서는 여간 싱싱한 게 아니다. 생생한 현장을 사진으로 남기려 뚜껑을 살짝 여는 순간, 낙지 한 마리가 재빨리 탈출을 시도했다. 순식간에 다리를 냄비 밖으로 빼내는 녀석을 간신히 다시 집어넣었다. 빨판으로 떡 버티고 냄비 행을 거부하는 녀석을 보니, 소도 일으켜 세우는 낙지라는 말이 실감났다.

전복과 낙지의 크기에 흐뭇하다. 새우나 꽃게, 조개 등 다른 해산물도 적당히 들어 있다. 거기에 미나리와 콩나물, 그리고 두부가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다. 적당히 끓으면 채소과 해산물에서 우러난 국물 맛이 시원하다. 고추와 마늘이 들어가 뒷맛은 칼칼하다.

개운한 국물 맛을 즐기려면 끓이는 도중에 뚜껑을 여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 끓인 콩나물국처럼 비릿한 냄새가 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먹기 전에 꿈틀거리는 생물의 움직임을 직접 목격한 탓인지, 싱싱한 낙지와 전복의 맛이 그대로 전해졌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 무침과 김치는 소박하지만 맛이 제대로다.

국물이나 밑반찬 맛에 내공이 느껴진다 했더니 40년 동안 음식점을 해온 이력이 숨어 있었다. 전라도 해남이 친정인 강명애 대표의 손맛도 한몫했다. 고향에서는 연포탕이라 하면 낙지와 두부, 채소 한두 가지만 넣어서 간단하게 만들었단다. 연포탕을 제대로 해 보자는 생각에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부산식 연포탕을 개발했다. 그래서인지 푸짐한 해산물 육수의 화려한 감칠맛과 정갈한 남도의 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연포탕의 채소와 육수를 이용한 볶음밥도 별미다. 고추장 양념과 날치 알을 추가해 밥과 함께 볶아 준다. 계란이나 김을 넣지 않고도 충분히 고소한 맛이 났다. 밥알 한 톨이라도 남기지 않으려고 숟가락으로 바닥을 박박 긁게 된다. 연포탕과 볶음밥 한 그릇을 잘 먹고 나오니 따가운 햇살도 견딜 만했다.

전복 연포탕 소 3만 5천 원·대 4만 5천 원.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10시(연중무휴). 부산 부산진구 부전2동 170의 26. 쥬디스태화 신관 뒤편. 051-808-0584.

글·사진=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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