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일찍 오니 입맛과 기력도 빨리 잃는다. 보양식을 찾기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몸에서는 '한 그릇 먹어야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라, 대놓고 보양식을 찾는 것이 조금 머쓱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연포탕'.
'연포탕'을 이름 그대로 풀자면 '연한 두부가 들어간 탕'이지만, 시중에는 두부보다 낙지가 주인공인 해물탕으로 통용된다. 한국민속백과사전에는 '두부를 지져 닭고기, 표고, 석이, 다시마 같은 재료들과 함께 끓인 두붓국으로 상갓집에서나 주로 10월에 먹는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연포탕과는 사뭇 다르다. 지역에 따라 닭고기 대신 소고기나 해산물을 넣기도 한다는 해석이다.
낙지는 가을이 제철이긴 하지만, 각종 해물이 들어간 뽀얀 국물을 들이켜면 기력 충전은 문제 없을 것 같다.
명장동 '구기영 조방낙지'
전복·소라 등 해산물 푸짐
탱탱한 낙지 시원한 국물
넉넉한 인심에 반찬도 깔끔
부전동 '서면낙지'
큼지막한 낙지와 전복
개운한 국물 뒷맛은 칼칼
날치알 추가 볶음밥 별미
23년 동네 장사의 뚝심
명장동 '구기영 조방낙지'
찾는 데 애를 좀 먹었다. 번화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검색도 되지 않는 가게였다. 술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기가 막힌 연포탕'을 파는 곳이라는 추천사 한마디와 전화번호만 달랑 듣고 가게를 찾아 나섰다. 작은 동네의 약간 번화한 골목. 긴가민가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화려한 비주얼의 연포탕이 나오는 순간 쾌재를 불렀다. 조개를 먹으려고 껍데기를 열어 제치는 순간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이건 연포탕이 아니라 해산물 종합선물세트 같다. 낙지, 전복, 그린 홍합, 키조개, 새우, 소라, 꽃게…. 눈에 대충 보이는 것만 나열해도 이 정도다. 푸짐한 연포탕을 불 위에 올려놓으니 낙지의 움직임이 애처롭다. 저렇게 처절한 몸부림을 보고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다 익었다며 손질을 해 주는 음식을 머뭇거리며 한 점 먹었다. 낙지에 대한 애도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게걸스럽게 먹어댈 수밖에 없었다. 부드럽고 탱탱한 낙지, 구수한 맛의 새우, 중독성 강한 육수…. 낙지야, 미안하다!
그렇게 많은 해산물이 들어가고도 맛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 그런데 정작 두부는 빠져있다. 구기영 대표는 낙지 들어간 탕을 연포탕으로 알았단다. 연포탕이 아니라 맑은 국물의 해물탕이 된 이유였다. 이렇게 다양한 해물과 시원한 국물이라면, 연포탕이면 어떻고 해물탕이면 어떠랴!
그런데 차림표에는 '박속 연포탕'이라 적혀있다. 박의 속을 넣었기 때문이다. 박 이외에도 각종 해산물을 넣어 육수를 만든다. 불에 오래 올려두면 짠맛이 살짝 강해지니 먹을 때는 적당히 끓이는 것이 좋겠다.
구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23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마늘 하나도 직접 까서 준비해야 하는 성격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밑반찬 맛도 꽤 괜찮다. 양념게장은 게장 전문집 못지않다. 게장만 별도 포장해서 판매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넉넉한 인심과 깔끔한 반찬이 오랜 세월 가게를 유지한 이유인 듯하다.
박속 연포탕 중 3만 원·대 4만 원.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1시(연중무휴). 부산 동래구 명장1동 63의 41. 도시철도 4호선 명장역 2번 출구 인근. 051-528-7055.
큼직한 낙지와 전복, 깔끔한 맛이 돋보이는 '서면낙지'의 '전복 연포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