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잔에 행복을 담아드립니다"

입력 : 2012-07-19 08:06:00 수정 : 2012-07-19 14: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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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 소믈리에 부부의 요리가 있는 포도원 비나포

한국 소믈리에 대회 사상 최초로 2연패를 달성한 '비나포'의 이승훈 소믈리에가 프랑스 와인 '레 오 드 스미스'를 디캔터에 따르고 있다.

한국 최고의 소믈리에 부부가 운영하는 와인&다이닝 레스토랑이 부산에 있다. '비나포'의 이승훈(34) 소믈리에는 지난 5일 프랑스 농식품진흥공사(SOPEXA) 주최로 열린 '제11회 한국 소믈리에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씨는 역대 우승자가 4명이나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 대회에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우승했는데, 이는 대회 사상 최초다. 5위에 입상한 이수정(33) 씨가 '비나포'의 대표이자 이 씨의 부인. 어떤 가게일까, 호기심을 가득 안고 비가 퍼붓던 어느 날 '비나포'를 찾았다.

국내 대회 사상 첫 2연패 이승훈 씨 운영
경성대 인근 '와인&다이닝 레스토랑'
소박한 분위기·합리적 가격·조화로운 맛
"모든 음식들이 와인과 어울리도록…"


'비나포(VINAfo)'는 요리가 있는 포도원이란 의미. 실내는 차분하고 약간의 무게감까지 느껴진다. 부경대·경성대 일대의 분위기와는 상당히 다르다. 왜 여기에 자리를 잡았을까. 이승훈 소믈리에는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다. 이 씨는 "여유 있는 사람만 와인을 즐기는 문화가 안타깝다. 해운대에서 하면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소박한 분위기에서 좋은 와인과 음식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피자나 파스타 및 치즈류가 1만~2만 원 대이다. 와인은 종류와 가격대가 무척 다양하다. 와인에는 최소 마진을 붙여 가게 운영이 가능할 정도면 된단다. 코스 요리(4만 4천 원)를 시키고, 와인은 이 씨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와인과 식사를 즐기는 중간에 가끔 들어온 이 씨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이번 대회는 어떻게 치러졌나.

△ 200여 명이 3월부터 1, 2차 예선을 치러 8명의 결선 진출자를 가렸다. 결선 진출자들은 고객 응대 및 서비스 능력 평가, 메뉴에 따른 와인 추천 능력, 소믈리에로서의 태도 평가 등 소믈리에가 갖춰야 할 기술적인 부분과 덕목을 다양하게 평가받았다.

-소믈리에를 정의하자면.

△와인이라는 음료를 통해 행복을 전달하는 행복전도사다.

-주량은 어떻게 되나.

△ 호기심이 많아 테이스팅을 좋아하지, 리터(양)로는 약하다. 마셔본 종류는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자신이 있다.

-지방에서 도전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사투리도 핸디캡이 되고.

△2008년 대회 참가를 처음 준비할 때 선배들을 많이 찾아다녔는데 하나같이 서울과 부산의 격차가 심해 나가봤자 안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오기가 생겼다. 서울 사람들과 경쟁하면 불리한 부분이 있다. 어떤 이는 그냥 사투리를 쓰라고 말한다. 하지만 표준어를 쓰면 장점이 있다. 소믈리에는 어색해 보여도 표준어를 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심하지 않은 사투리는 되레 정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믈리에 공부는 어떻게 했나.

△ 독학을 했다. 2007년부터 프랑스 등 유럽을 돌며 와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보르도와인협회 인증 강사 자격증과 미국와인교육자협회 와인전문가 자격증(CSW)을 차례로 따면서 실력을 쌓아갔다. 이번 대회에는 프랑스에 유학한 소믈리에도 나왔다. 프랑스에 가서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 노력했다.

-좋은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서는.

△소믈리에는 음식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크게 성장한다. 유명 소믈리에 가운데는 셰프까지 같이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레스토랑은 규모가 크지 않아 누가 빠졌을 때는 대신할 수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다. 나도 스테이크를 직접 구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손님들이 모를 정도는 된다.

-비싼 와인이 좋은 와인인가.

△프랑스 음식에 대한 경험이 없으면 미슐랭 별 세 개 레스토랑에서 먹어도 감동이 없을 수 있다. 한 병에 1천만 원이나 하는 와인을 마셔도 대답이 엇갈린다. 와인을 많이 즐기고 나서 비싼 와인을 마셔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된다.

-저가 와인일수록 디캔팅 해서 먹으라던데.

△저가 와인은 디캔팅을 피하는게 좋다. 디캔팅을 하면 산화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져 처음에는 좋다고 하다가 실망하기 쉽다. 꼭 디캔팅을 원하면 반만 디캔팅 하는 방법도 있다.

- 양산대학 관광계열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던데.

△경험을 바탕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지방 대학에서 강의하다 보면 학생들이 경쟁을 두려워해 타협이나 포기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계속하다 보면 큰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소믈리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오랜 숙성 과정을 거쳐야 좋은 와인이 나오듯이 기본기가 탄탄해야 좋은 소믈리에가 될 수 있다. 조급증을 버리고 꾸준히 도전하라.



이들 부부는 대학교에서 만난 선후배 사이다. 음식에 대한 취미가 같고, 음식에 돈을 아끼지 말자는 주의였단다. 이 씨는 부인이 와인 공부를 하자 뒤늦게 시작했다. 이수정 씨에게 우승 욕심이 없었느냐고 우문을 했다. 역시 소믈리에 답게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일등을 해야지만, 가문의 영광이 더 좋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이날 음식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맛과 분위기를 고려하면 확실히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느낌. 고객에 맞춰 코스를 조정한다니 그때마다 음식이 조금씩 다를 것 같다. 미트 소스를 곁들인 가지 오븐구이는 평범하면서도 조화로워 맛있었다. 샤프란 소스를 곁들인 블랙 타이거 새우는 맛있는 소스 덕분에 통통한 새우의 질감이 더욱 잘 살아났다. 페네 파스타는 졸깃해서 씹는 맛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모든 음식이 와인을 맛있게 마실 수 있도록 맞춰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와인도 음식을 공격, 식사를 방해하지 않았다. 프랑스 와인 '레 오 드 스미스(Les Hauts de Smith)' 2007년 산을 마셨다. 2007년은 그레이트 빈티지(Great Vintage), 포도의 결실이 아주 좋아 와인 품질이 특별히 좋은 해는 아니었다. 그레이트 빈티지의 와인이 무조건 좋다는 것이 아니며, 언제 마시느냐가 몹시 중요하단다. 2007년산은 그레이트 빈티지가 아니라 조숙해 빨리 마실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잠을 자던 와인의 향이 쏟아진다.
피자 1만 5천~1만 6천 원, 치즈 1만~2만 원, 파스타 1만 2천~1만 5천 원, 스테이크 2만 7천 원, 코스 요리 3만 3천~5만 5천 원(2인 이상, 예약 필수). 영업시간 오후 6시~오전 1시. 일요일 휴무. 부산 남구 대연3동 507의 6. 경성대에서 부경대 방향 부경대 정문 맞은편 4번째 골목. 051-627-3484.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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