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 세상 어떤 진미로도 대신할 수 없는 음식이 있습니다

입력 : 2012-09-27 07:54:58 수정 : 2012-09-27 1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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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농가 맛집 '고두반'은 직접 농사지은 재료를 이용해 만든 음식을 직접 만든 도자기 그릇에 정성스럽게 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다. 한가위의 풍성함을 이야기해 주는 말이다. 우리네 한식은 한가위를 닮았다. 때로는 지나치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한정식 상을 받고 나면 "와!" 하는 감탄부터 나온다. 맛있는 밥을 내놓는 부산과 경주의 한식집을 찾아갔다. 밥이 보약이라고 믿고 손님을 대접하는 곳들이다.

대연동 '예가'

수수 기장 찹쌀 들어간 삼색밥에
아삭한 식감 살아 있는 12가지 찬
화학조미료 안쓰고 가격도 저렴


종갓집 맏며느리가 매일 차리는 밥상은 어떤 모습일까? 넉넉한 인심에, 깊은 손맛은 기본일 것 같다. 부산 남구 대연동의 한식집 '예가'에서 그 밥상을 만났다.

주문을 하려고 보니 차림표가 없다. 어찌해야 될지 몰라 망설이는데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가격은 6천 원, 메뉴는 정식'이렇게 고정되어 있단다.

가격을 듣고 찌개에 반찬 몇 가지 나오는 가정식 백반이겠거니 했다. 이윽고 나온 상차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정갈하게 차린 12가지 반찬이 차례로 나왔다. 가짓수에 놀라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수수, 기장, 찹쌀이 들어간 삼색밥이 나왔다. 기대도 안한 맞선 장소에서 진국인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삼색밥.
가격 대비 최강의 밥상을 보니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반쯤은 반해 버렸다. 삼색밥은 구수하고, 차지고, 깔끔했다. 정월대보름에나 맛보았던 귀한 밥이라 맛이 더욱 좋았다.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더니 반찬은 딱 '엄마표'의 맛이다. 콩나물, 오이지, 버섯무침은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었다. 살짝 매콤한 양념을 입힌 생선구이와 돼지불고기도 밥도둑이다. 반찬 하나라도 빠트리지 않고 챙겨 먹으려니, 손놀림이 분주해진다. 마지막 디저트 식혜까지 참 야무지게(?) 잘 먹었다.

가게는 해군 장교 출신의 이동엽 대표와 어머니 박지후 씨가 운영하고 있다. 이 대표는 국가에 충성하듯, 손님들을 대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가게를 열었다. '한번 상에 차려진 음식은 절대 재사용하지 않는다'거나 '화학조미료는 쓰지 않는다'는 등의 운영 원칙은 그런 마음에서 나왔다.

어머니 박 씨는 종갓집 맏며느리의 내공을 음식에 담았다. 일 년에 열한 번의 제사도 거뜬히 치르는 솜씨로 제사 음식 주문도 받고 있다.

음식 장만을 위해 매일 오전 6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한다. 그날 음식은 당일 만드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 생각하면 힘든 줄 모르겠더라고요." 역시 종갓집 맏며느리다운 대답이다.

정식 6천 원(제사 음식 주문은 20만 원부터).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7시(재료 떨어지면 문 닫음). 일요일 휴무(추석 연휴 기간 29일~10월 3일 휴무). 부산 남구 대연동 1768의 13. 남구청 옆. 051-635-8785.

글·사진=송지연 기자 sjy@busan.com


약선음식전문점 `정림`은 마린시티에 레스토랑 같은 한정식집을 열었다. 사진은 코스 요리의 애피타이저 모음.
해운대 마린시티 '정림'

칼로리 낮은 채식 위주 코스요리
야생초와 효소 음식에 활용
비빔밥·청국장 정식 등도 인기


해운대 마린시티의 신세계SSG는 부산에서 우수한 품질의 식자재를 가장 많이 갖추고 있다. 이곳에 음식점으로서는 유일하게 '정림'이 들어갔다. 약선음식전문점 '정림'의 동래본점이 전통적인 분위기라면 마린시티점은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느낌이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혼자서 먹을 수 있는 일인용 테이블까지 마련했다. 한정식집으로서는 상당한 변화이다.

마린시티 쪽의 음식점들은 높은 임대료 탓에 가격 또한 부산에서 최고 수준. 정림 마린시티점은 개업 초기에 보양갈비탕을 1만 원에 판매해 큰 호응을 받았다. 좋은 고기가 푸짐하지, 애피타이저에 후식까지 나오지, 먹고 나면 미안한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지금은 1만 2천 원으로 정상화(?)됐다.

1만~1만 2천 원에 판매하는 비빔밥, 된장찌개, 청국장, 김치찌개는 각각 정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런 식으로 갖춰 먹게 나온다. 청국장 냄새는 정말 좋다. 맛있는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이면 역시나 맛있다. 정성스럽게 유기그릇에 담겨 나오니 눈도 즐겁다.
된장찌개, 김치찌개와 밑반찬.
'정림'의 솜씨를 제대로 알려면 역시 코스 요리다. 코스 요리는 가격별로 3가지 종류가 있다. 기본 찬은 똑같으나 메인 요리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정림에 몇 번 갔지만 모르고 먹었던 음식이 많았다. 야생초나 효소를 요리에 많이 활용해서 그렇다.

정영숙 대표는 요리를 시작한 지 22년 되었단다. 그가 그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왜 만날 바깥에 풀을 뜯으러 다니느냐"는 질문. 코스 요리라 음식의 종류는 많지만 채식 위주여서 칼로리가 높지는 않다. '감자 뿌리 쌈'은 얇게 썰어 효소 양념에 절인 감자에 5가지의 채소를 싸 먹게 했다. 아삭거리는 식감의 정체가 감자라는 사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요리에서 오방색이 많이 보인다. 오방색과 함께 오미(五味)를 즐기라는 뜻이다. 나물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녀석의 정체는 콩고기. 숯불향까지 기가 막힌다. 시원한 감자 샐러드는 속에 있는 염증까지 치료한단다. 대추도 튀기니 더 맛있다. 메주콩을 넣어서 만든 갈비찜은 부드럽고 잡내가 없다. 이전에 맛본 정림의 음식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발효식품의 진가는 오래되어야 나타난다. 전통은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다.

점심특선 1만 8천 원, 코스 요리 1만 8천 원, 2만 5천 원, 3만 5천 원.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부산 해운대구 우1동 1409 현대아이파크 상가 2층. 추석 당일 휴무. 051-792-7164.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


경주의 농가 맛집 `고두반`은 직접 농사지은 재료를 이용해 만든 음식을 직접 만든 도자기 그릇에 정성스럽게 낸다.
경주 '고두반'

음식 재료 70~80% 직접 재배
텃밭 샐러드 등 밥상코스 훌륭
두부삼합·동락주·후식 이색적


경주에 사는 분 소개로 '고두반(固豆飯)'에 가 보고 그만 반해, 못 잊고 다시 찾아갔다. 고두반은 자기들 먹는 식으로 내놓는다는 '농가 맛집'이다.

보통 맛이 아닌 이유가 있었다. 최성자 대표의 친정은 충청도 온양의 종갓집. 최 대표의 남편 김정윤 도예가를 비롯해 가족은 하나같이 화학조미료가 든 음식을 못 먹는다. 어쩌다 먹게 되면 헛배가 부르고 가스가 차서 이틀은 힘들어한다. 최 대표는 소나무 장작으로 가마에 불을 땔 때면 지인들을 모아 백숙을 대접하곤 했다. 사람들 반응이 좋아 음식점을 시작하게 됐단다. 농사만 1천 평을 지어 상에 오르는 음식의 70~80%는 직접 재배한다. 7~8년 간수를 뺀 뒤 1천 도 이상 고온에서 구운 소금을 사용하니 음식 본연의 맛이 살아난다. 이렇게 만든 음식에서는 어떤 맛이 날까.

두부전골.
'고두반 밥상'으로 주문했다. 고소한 콩물부터 시작한다. 다음 순서인 '텃밭 샐러드'는 직접 키운 제철 채소에 감 같은 제철 과일까지 들었다. 오디 효소가 들어간 채식 마요네즈가 샐러드에 마법을 부렸다. 한 입만 먹어도 금방 건강해지는 느낌이 난다. 더덕은 깻잎에 싸서 살짝 튀기고, 콩전은 검정콩·비지·밀가루를 넣고 노릇하게 지졌다. 가지나물은 먹어본 중에 최고다. 두부는 궁합이 맞는 다시마를 만나 '다시마 모두부'로 업그레이드. 경주산 한우와 다시마 모두부는 다시 두부전골을 합작했다. 맛나다! 화학조미료 하나 없이도 이런 맛이 난다.

고두반 밥상 코스와 별도로 다시마 손두부, 돼지수육, 참가자미 식해가 어우러진 '두부 삼합'을 구경했다. 돼지수육의 맛이 좀 다르다고 했다. 뽕나무, 오가피, 된장으로 삶아 풍미가 좋다.

'동락주'라고, 첨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술에서는 술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여기다 오디 즙을 타면 색도 맛도 화려하게 변신을 한다. 후식으로 나온 정과(正果·꿀이나 설탕물에 졸여 만든 음식)에서 한 번 더 감탄했다. 아삭거리는 양갱 같은데, 이게 무란다.

모든 음식이 김 도예가가 만든 도자기에 담겨 정성스럽게 나온다. 실내는 도자기 전시공간이었던 자리를 감각 있게 꾸몄다.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약이 되는 음식을 만든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랑산 밥상 1만 원, 고두반 밥상 1만 3천 원(2인 이상 주문),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8시. 월요일 휴무(추석 연휴 기간 29일~10월 1일 휴무). 하루 전 예약 필수. 경북 경주시 도지동 156의 2(대기실 3길 11). 054-748-7489.

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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