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회, 추울수록 차올라 사랑스러운 '뱃살'

입력 : 2012-11-15 07:53:29 수정 : 2012-11-15 14: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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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못 갔다. 제주도 모슬포항에. 거기서 지난 8~11일 방어축제가 있었던 것이다. 방어가 어떤 놈인가. 이즈음의 방어는 속살이 촉촉하고, 차지고, 고소하고…. 그래서 최고의 횟감으로 여겨진다. 오죽했으면 비욘세 같은 세계적 팝스타가 저녁마다 먹는다고 자랑했을까. 그런 방어를 푸지게 먹을 수 있는 '축제'를 놓친 것이다. 영 아쉽고 심지어는 속상하기까지 한데, 문득 손 안의 전화가 울렸다. '일신초밥'(051-553-0303, 부산 동래구 명륜동 502의 13) 김재웅(66) 사장. "제주도에서 방어 좋은 놈이 들어왔으니 먹으러 오쇼." 달리 복음(福音)이 또 있을까. 한달음에 달려갈밖에!

대뱃살

눈처럼 하얗게 서린 지방질
이맘땐 참치보다 더 고소

중뱃살

초밥에 얹으면 입안 사르르
아가미쪽도 혀에 착착 감겨

등살

심줄 일정해 탄탄한 살결
고소함에 '씹는 맛' 더해

명륜동 '일신초밥'

■ 고소함에 혀가 녹는다

고소함이 입안에 화악 퍼진다. 씹을 때마다 고소한 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분홍빛 기운이 살짝 도는 살 사이로 지방질이 눈처럼 하얗게 서려 있는 방어 대뱃살(일본말로 하면 오도로). 그대로 지방, 아니 불포화지방 덩어리란다. 방어 여러 부위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부위다. 지금 계절엔 참치 뱃살보다 더 고소하게 느껴진다. 평소 기름기 싫어한다는 이도 겨울 방어 뱃살을 맛보면, 고소함이 혀 위에서 사르르 녹는 그 맛에 홀딱 반하게 된다. 한 점에 사는 재미를 알게 된다.

대뱃살. 지방질이 가장 많은 부위라 엄청 고소하다.

중뱃살(일본말로 하면 주도로!). 대뱃살보다 못하지만 고소함으로 부족함이 없다. 회로도 좋은데, 초밥에 얹으면 입안에서 녹는 맛이 기가 찬다. 대가리 뒤 아가미 쪽 부위(김 사장은 이 역시 주도로라 했다). 등 쪽으로 빨간 줄이 나게 썰었다. 살짝 탄력이 느껴지며 혀에 착착 감긴다. 고소한 기름기도 적당하다.
중뱃살. 대뱃살에 버금갈 정도로 고소하다.
아가미쪽 등살. 혀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든다.
횟살 중에 심줄이 일정하게 나 있는 등살. 등살이라곤 해도 방어 자체에 워낙 지방질이 많다 보니 고소함에서 중뱃살에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대신 탄력이 좋다. 김 사장은 방어의 등살은 세포 조직이 탄탄해 회로 썰어도 오랫동안 탄력이 유지된다고 했다. 여간해선 흐물흐물해지지 않는다.
등살. 차지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식감이 좋다.


대체로 방어회는 큼직큼직하게 썬다. 일신초밥에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제주도에선 어른 손바닥 절반 정도로 써는 경우도 많다. 그래야 방어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큼직한 횟살을 한 입에 꽉 물고 천천히 씹어야 깊은 맛이 배어나오고 고소함이 온전히 전해진다.

방어는 흔히 횟감용으로 쓰지만, 사실 버릴 게 없는 생선이다. 방어의 단단한 뼈를 무, 감자와 함께 푹 끓여 우리식 찌개로 만들면 시원한 별미가 된다. 국물에 방어 기름이 동동 뜨는 게 그렇게 구수할 수가 없다. 실제로 이즈음 제주도 모슬포항의 횟집이나 시중에서 방어를 취급하는 음식점에 가면 방어로 회, 초밥, 찌개, 그렇게 요리 셋을 해 준다.

제주도 남쪽 마라도 인근 바다에서 갓 잡은 방어. 한창 물이 올랐다. 이 즈음에 최고의 맛을 낸다. 연합뉴스

■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방어는 전갱잇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가을 멸치떼를 쫓아 동해안에 접근하는데, 원래는 울산 방어진에서 많이 잡혔다.(그래서 방어진이란 이름이 생겼다.) 하지만 방어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에 남획한 탓인지, 바다 물길이 바뀐 탓인지 요즘엔 주로 제주도 남쪽 마라도 인근에서 잡힌다. 그나마 요즘 제주에서도 10㎏ 이상 되는 큰 놈들은 잘 안 잡힌다고 한다. 갈수록 귀해지는 것이다.

방어는 여름이면 '개도 안 먹는다'고 할만치 천대받지만 산란을 앞둔 겨울이면 대접이 확 달라진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제철로, 이때는 '한(寒)방어'라고 같은 방어라도 전혀 다른 종 취급을 받는다. 이 즈음 방어는 살이 통통히 오른 데다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살점이 두툼해 식감도 좋다. 하도 차지고 고소하니 간장에 찍어 먹고,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된장에 쌈 싸먹고, 어떻게 해도 다 맛있다.

방어는 일단 커야 맛있고 식감도 좋다. 크기가 클수록 더 많이 먹고 열심히 헤엄치기 때문이다. 요즘 4~5㎏ 정도 나가는 것이 많이 잡히는데, 아무래도 제맛을 내는 덴 무리다.

김 사장에 따르면, 방어와 비슷한 게 평방어와 잿방어가 있다. 제 나름대로 특징이 있지만 다 방어에 그 맛이 못미친다 한다. 방어와는 달리 제맛이 드는 철도 평방어와 잿방어는 봄, 가을이라 한다.


■ 겨울에 방어 맛 못본다? 슬픈 일!

"생선 다룬 지가 50년 가까이 된다. 맛을 조금 안다 자부하는데, 겨울 생선 중 제일은 역시 방어다."

김 사장의 방어 예찬이 대단하다. "생선회의 깊은 맛, 진미를 최고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해마다 겨울이면 제주도에서 방어를 직송해 요리로 낸다. 제주도에서 방어를 받아오는 게 요즘 조금 힘들어졌는데, 큰 게 잘 나지 않는 탓이다. "적어도 8㎏은 넘어야 제맛이 난다. 그래서 우리는 10㎏ 이상 되는 놈들만 받아오려 한다. 그런 놈들이 잡히면 제주에서 전화가 온다. 하지만 요즘 작은 거는 자주 나오지만 큰 거는 드물다"고 했다.

방어 먹으러 찾아 와도 없는 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리 전화로 방어 있는지 물어보고 찾아 오라는 이야기다. 김 사장은 "솔직히 요새는 없는 날이 더 많다. 전화로 물어서 '방어 있다' 그러면 '아, 오늘은 식복이 있는 날이구나' 그리 여겨 주셔야 한다"며 웃었다.

요즘 일신초밥에서 뱃살 등 방어 온 부위를 맛보려면 1인당 5만 원쯤 줘야 한다. 기존 코스요리(점심 1만 8천 원, 저녁 3만 5천 원)에서도 조금씩 맛볼 수 있다.

김 사장은 "방어의 진미 한 번 맛보지 못하고 겨울 지나면 그 또한 슬픈 일"이라며 어렵더라도 제주도 모슬포를 찾아 푸짐하게 방어 맛 볼 것을 권했다.

글·사진=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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