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안주라고 대충? 제대로 만드니 손님들 '홀딱'

입력 : 2012-11-29 07:55:58 수정 : 2012-11-29 14: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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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가 좋은 요리 주점

'쿠노이치'의 인기 메뉴인 고등어 초회. 새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예전부터 '안주 킬러'라며 술집에서 타박깨나 들었다. 대개 술집의 안주라는 게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술맛보다 분위기, 분위기보다 안주 맛에 더 취한다. 안주가 괜찮은 집은 어지간한 음식점보다 더 열성적으로 응원하게 된다. 부산 중구 대청동의 '쿠노이치'와 부산진구 부전동의 '본'은 '요리 주점'을 표방한다. 보통 술집에서 음식점 수준의 안주를 기대하는 것은 과한 일이지만, 두 곳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낮에도 안주를 맛보고 싶은 마음에, 요리점으로 바꿔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싶은 곳이다.

쿠노이치
"일본주점 제대로 소개"
고등어 초회·장코나베 등
후쿠오카식 안주 훌륭


겉만 살짝 익힌 참치와
싱싱한 생연어 샐러드 등
재료에 충실한 요리들


대청동 '쿠노이치'

'이자카야'를 표방한 술집이 꽤 된다. 하지만 데운 냉동 돈가스와 조미료가 듬뿍 든 오뎅탕이 나오는 이자카야에서는 의문이 든다. 일본의 이자카야에서도 이런 음식이 나올까?

'쿠노이치'의 후지키 루미 사장은 아니라고 했다. 후쿠오카 출신인 그는 한국에 올 때 일본식 주점이라는 곳에 몇 번 들렀는데, 갈 때마다 실망이었다. 만들어 놓은 음식을 데우기만 하는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음식에 일본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속상했다. 진짜 일본 주점을 한국에 제대로 소개해야겠다는 마음에 가게를 열었다.

그래서 한국식으로 '개량'한 레시피는 없다. 후쿠오카에서 먹던 음식 그대로를 선보인다. 다른 나라에서 장사를 하면서 현지화를 염두에 두지 않다니. 배포도 크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후쿠오카식 안주가 입에 잘 맞는다.

대표적인 것이 '시메사바'로 불리는 고등어 초회. 후지키 사장이 직접 손질한 고등어를 식초에 절여 내놓는다. 내장뿐 아니라 핏물까지 깔끔하게 제거해 비린내를 잡는다는 설명이다. 접시 위에 가지런하게 놓인 살점은 눈으로도 탱탱한 식감이 짐작된다. 초회의 새큼한 맛이 기분을 좋게 했다. 기름기 많은 고등어의 부드러운 육질을 차가운 회로 만나니, 이건 뭐 아이스크림 수준이다. 분명히 고등어 초회 한 점을 입에 넣었는데, 살짝 혀끝에서 놀다가 이내 사라져 버렸다. '감질나다'가 하고 많은 명사 중에 왜 '맛'이라는 놈과 만났는지 알 법한 맛이다.

두부를 살짝 튀겨 특제 소스를 얹은 '아게다시 도후'.
'장코나베'의 국물 맛은 구수하다. '장코'는 스모 선수들이 먹는 음식을 통칭한다. 지역마다 또는 가게마다 조리법이 다른데, '쿠노이치'의 장코나베는 된장을 풀어 만든다. 거기에 곱창과 해산물, 어묵 등 각종 재료가 투하됐다. 진한 육수 맛이 개운하다. 나베 안에 가래떡이 들어간 유부를 건져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쫄깃한 가래떡을 먹으니 수다도 쫄깃해진다.
 
두부를 살짝 튀겨서 특제 소스를 뿌린 '아게다시 도후'는 반찬으로도 좋겠다. 두부의 은은하고 고소한 맛과 소스의 달콤함이 한데 어울렸다. 고급 일식집에서도 종종 나오는데, 여기는 가정식처럼 맛이 순하다. 불향이 맛을 돋우는 꼬치며, 일일이 고기를 다져서 만든 수제 돈가스도 만족스럽다.

후쿠오카의 술안주가 이렇게 입맛에 맞는다니! 혹시 갈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술집 순회를 해야겠다. 일본인들도 이곳을 자주 찾는데, 소 혀 스테이크가 인기라고 했다. 술기운이 약해서인지, 이름을 듣고는 엄두를 못 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시도해 보리라. 연말 술자리로 이곳을 자주 찾을 것 같다.

고등어 초회 1만 5천 원. 장코나베 3만 5천 원. 아게다시 도후 8천 원. 영업시간 오후 5시 30분~오전 2시(일요일 휴무). 부산 중구 대청동 2가 22의 2. 051-255-4255.


서면 '본'

다다키는 육류나 생선 날것을 겉만 불로 살짝 익혀 조리한 일본 음식을 말한다. 다다키 맛이 좋으려면 재료가 신선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본'의 다다키는 고급 일식집 요리를 연상시킨다. 익힌 겉면에서 은은한 불향이 느껴지다가 이내 싱싱한 참치 속살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가격 대비 맛이 마음에 든다. 
'본'의 샐러드는 싱싱한 맛을 한껏 살렸다. 참치 다다키 샐러드(왼쪽)와 생 연어 샐러드.
곁들인 샐러드의 채소도 신경을 썼다. 흔한 양상추가 아니라 비타민이나 레디치오 등을 맛깔난 소스로 살짝 버무렸다.

생 연어 샐러드도 싱싱한 맛이 살아 있다. 얼리지 않은 냉장 연어를 사용했다. 위에 얹은 소스는 호불호가 갈리겠다. 연어 특유의 향을 없애기 위해 딸기를 갈아서 사용했다. 연어 자체의 맛을 좋아하는 이들은 딸기 소스가 아쉬울 수도 있겠다.

박리다매의 경제원칙이 지배적인 서면의 유흥가에서 요리에 집중한 술집을 만난 것이 뜻밖이었다.

김종달(40) 대표는 원래 서면에서 6년 동안 해산물을 주된 안주로 삼는 주점을 운영했다. 요리사가 아니라 주방 이모님(?)이 간단하게 손질해 안주를 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단다. 단골도 꽤 생겼지만 정성 깃든 요리를 선보이고 싶다는 오랜 꿈 때문에 새롭게 가게를 열었다. 10년 이상 고급 일식집에서 근무한 친구와도 뜻이 맞았다. '음식의 기본은 재료다, 재료에 충실한 음식을 내놓자'고 의기투합했다. '본'이라는 상호는 그렇게 탄생했다.

일행 중 남성들은 조명이 밝아서 술집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여성들은 오히려 그게 낫다고 했다. 1차나 2차의 술자리 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을 때 들르고 싶은 집이다.

참치 다다키 샐러드 1만 8천 원. 생 연어 샐러드 1만 9천 원. 영업시간 오후 6시 30분~오전 3시. 부산 부산진구 중앙대로 712의 1. 도시철도 서면역 2번 출구 근처. 051-808-7949.

글·사진=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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