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만들어 바로 먹으니…" 그게 밥심의 비결

입력 : 2013-01-17 07:48:54 수정 : 2013-01-17 14: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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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같은 밥집

밥과 미역국, 조기 구이와 나물 반찬 10여 가지로 차려낸 동구 초량동 '이가정'의 정식 밥상. 이 식당엔 냉장고가 없다. 아침에 김치를 담그고, 나물을 무쳐 내놓다가 다 팔리면 손님을 받지 않는다.

매일 아침 김치를 담가 상에 올리고 갖은 제철 나물을 바로 무쳐 내놓는 밥집 두 곳을 찾았다. 가족이 운영하면서 착한 가격(6천 원)에 풍성한 상차림을 선보이고 있는 가정 정식집이다. 엄마가 해주는'집밥'을 떠올리게 하는'밥집'이랄까. 화려하지 않고 기름지지 않아도 포만감이 느껴지는 골목길 가정 정식집으로 가 보자.

■초량동 '이가정'

시금치·무나물 짜지 않고
양념보다 신선함 살아 있어
직접 농사지은 재료 사용


외근이 잦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안 먹어본 음식도 없다. 소문난 파스타집도 많이 찾아다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스스로 메뉴를 선택할 수 있을 때에는 그냥 '밥집'을 찾기 시작했다. 먹고 나면 속이 편하고 든든하다. 이게 어른들이 말하던 '밥심'일까.

초량동의 '이가정'은 밥과 미역국, 조기 구이와 나물 위주 반찬 10여가지로 상을 차려낸다. 어디에나 있는 정식인데, 먹어 보면 흔한 정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시금치, 무나물, 시래기나물은 짜지 않아서 자꾸 젓가락이 간다. 파래무침이나 우엉 조림도 양념보다 재료의 맛이 살아 있다. 조기도 살코기가 촉촉하다. 김치는 배추와 총각무 두 가지가 있는데, 배추김치는 아직 숨이 살아 있는 깔끔한 생김치다.

미역국은 생선도 고기도 없이 간장과 버섯만 넣었는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식당마다 있는 스테인레스 공기밥이 아닌 것도 좋았다. 김치를 뺀 나머지 반찬과 국은 매일 바뀐다. 시락국에 고등어 조림, 두부구이 같은 반찬이 나온 날에도 만족스러웠다.

집에서 먹는 밥은 왜 특별한 게 없는데도 맛있을까. 이가정의 음식을 만드는 이서운(64) 씨는 "바로 만들어서 바로 먹으니까 맛있다. 냉장고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아무래도 처음 맛이 안 난다"고 정리했다. 이가정 주방에는 냉장고가 아예 없는데, 매일 아침 6시 반부터 그날 점심분의 반찬만을 만들고, 70~80인분이 다 떨어지면 문을 닫기 때문이다. 혹시 남으면 가족들끼리 먹지, 다음 날 다시 내는 법은 없다고 했다.

이가정의 식재료는 대부분 이 씨의 고향 함양에서 농사지은 것들이다. 배추나 고춧가루뿐만 아니라 간장, 된장도 함양에서 농사지은 국산 콩으로 집에서 직접 메주를 떠서 만든다. 생김치도 매년 봄 직접 담그는 멸치 젓갈로 맛을 낸다. 간이나 양념이 세지 않아 입 안이 텁텁하거나 속이 부대끼지 않는 것도 단골이 많은 이유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나면 이 '정성'에 6천 원밖에 내지 않는 것이 터무니없게 느껴진다. 이 씨 부부와 딸, 세 가족이 직원을 쓰지 않고 일해서 가능한 가격이다. 점심 오전 11시 40분부터. 예약이 없으면 저녁에 문을 열지 않는다. 부산 동구 초량3동 60의 2. 일본총영사관 옆 국제오피스텔 맞은편 골목으로 올라가다 오른쪽 작은 골목 안. 아구찜 중 2만 5천원, 파전 1만 원. 051-461-0528.

갓 담근 김치가 미각을 유혹하는 구서동 '김치가 맛있는 밥집'의 상차림. 고등어조림, 돼지불고기에 쌈채소까지 같이 나와 풍성하다.
■구서동 '김치가 맛있는 밥집'

배추·파·갓·총각김치
4종류 김치가 미각 유혹
김치 떨어지면 장사 끝


'김치가 맛있는 밥집'은 옥호 그대로 밥상에 오르는 4종류의 김치가 미각을 유혹한다. 배추김치와 파김치는 아침에 담근 것이고 갓김치와 총각김치도 열흘 이내 것이다. 그래서 갓 담근 김치의 상큼함이 잘 살아 있다. 멸치젓갈류를 쓰지 않고 까나리액젓만 썼으니 비릿함보다는 깔끔함이 앞서 있다. 충청도 출신인 주인 아주머니 왈, "엄마가 집에서 김치 담그던 걸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란다.

6천 원짜리 정식 상차림인데 고등어조림, 돼지불고기에 쌈채소가 곁들여져 나왔다. '남는 게 뭐 있을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가게 주인은 "많이 팔아서 남긴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이게 빈말은 아니다. 실제 점심시간이면 이 가게는 문자 그대로 문전성시다. 늦게 가면 대기행렬이 끊기고야 만다. 아침에 담근 김치나 재료가 떨어지면 그 길로 점심 장사를 끝내버려서다. 여느 식당처럼 생각하고 느긋하게 움직여 오후 1시30분에 갔을 때 점심식사가 끝나는 바람에 두 번째 걸음에 비로소 밥맛을 볼 수 있었다.

주인 내외는 원래 금정구청 인근에서 같은 상호로 6년간 밥집을 했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 문을 잠시 닫았다가 지난 2011년 6월에 지금의 두실초등학교 앞쪽으로 자리를 옮겨 신장개업했다. 단골 고객들이 옛맛을 잊지 않고 찾아와 준다고.

식탁이 부족해 붐비는 점심시간에 1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 단체 예약 가능. 점심 오전 11시 20분∼오후 2시, 저녁 오후 5시부터. 금정구 구서2동 248의 3. 정식·추어탕·김치전골 6천 원씩, 돼지불백 7천 원(2인 이상). 051-516-0712. 글·사진=김승일·최혜규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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