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味 살아있는 건강한 빵 "속이 편해요"

입력 : 2013-02-14 07:54:14 수정 : 2013-02-14 14: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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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아르보' 천연발효종 빵 전문점

해운대에 새로 문을 연 천연발효종 빵집 '아르보'에 유럽식 캄파뉴(시골빵·앞줄 왼쪽)와 식빵 등이 진열되어 있다.

맛빵에서 건강빵으로! 빵집이 변하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달콤한 맛'에만 길들어 있던 빵 마니아들의 취향이 단맛에서 웰빙으로 이동하면서다. 최근 화학첨가물이 든 식물성 생크림이 논란이 되자 이름깨나 있는 베이커리들은 "저희는 (우유로 만든 100%)동물성 생크림만 사용합니다"라고 읍소하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또 이스트를 쓰지 않고 오랜 기간 자연발효시켜 빵을 만드는 천연발효종 빵가게가 속속 생겨 저변을 넓혀 나가고 있다. 최근 부산 해운대구에 문을 연 천연발효종 빵집 '아르보'를 통해 건강빵 열풍을 들여다봤다.

이스트 대신 자체 발효종 사용
빵 구워내는데 최소 4일 소요
시간·비용 들지만 건강에 좋아
천연재료 향미 풍부·담백한 맛

■빵을 먹고나면 왜 속이 더부룩할까


꺼억∼. 빵을 먹고 나서 간혹 소화가 잘 안 돼 속이 더부룩해지는 경험을 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트림이 나와 난처할 때도 더러 있다. 그런저런 이유 때문에 빵은 식사 대용보다는 단팥빵이나 카스텔라 위주의 달콤한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유럽 식탁에는 항상 빵이 오른다. 서구인들은 속이 거북하지 않은 걸까?

비밀은 빵의 발효방식 차이에 있다. 흔히 접하는 이스트빵은 인위적으로 배양증식한 효모를 투입해 짧은 시간에 균질한 맛의 빵을 대량으로 만든 것이다. 반면 천연발효종을 넣고 빚은 반죽으로 천천히 빵을 만들면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상당량 분해되어 소화가 수월해지는 효과가 있다. 또 설탕과 버터 등의 첨가제로 맛을 균질화하지 않기 때문에 원재료의 향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이스트가 토끼라면 천연발효종은 거북에 해당될 텐데, 이때 발효종은 마치 우리 전통주나 일본 사케를 빚는 과정에서 천연 누룩이 차지하는 역할과 유사하다고 보면 되겠다. 간편함 대신에 건강과 풍미를 얻은 천연발효종 빵은 그 대가로 만만찮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웰빙 중시파와 유럽 스타일의 빵에 입맛이 든 유학파, 외국인 등을 중심으로 천연발효종 빵을 찾는 이들은 늘고 있다.

캄파뉴에 리코타치즈샐러드를 곁들인 브런치 메뉴

■'슬로 브레드'가 건강한 빵

지난 연말 해운대 베네시티 1층에 '순수하고 건강한 빵'을 기치로 한 '아르보'가 문을 열었다. 이 집의 정명수(52) 대표는 "순수한 천연재료를 천연발효시켜 느끼하지 않고 소화가 잘되는 건강한 빵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아르보'의 외견은 여느 베이커리와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다. 매장 한쪽에 공장을 두고 발효종을 배양하고, 치즈를 만들고, 팥을 끓이는 등 거의 모든 과정을 직접 한다. 대부분 국산 유기농 재료를 쓰는 것도 특징.

'아르보'에서는 빵을 부풀릴 때 이스트를 넣지 않는 대신 호밀종, 액종, 탕종 등 3가지 자체 발효종을 사용한다. 발효종을 키우는 데만 사흘이 걸리니 발효종을 섞어 반죽한 뒤 구워 내기까지 최소 나흘이 걸린다. 따라서 '신속 대량생산'과는 거리가 멀다.

또 보존기한도 없다. 그날 구운 빵은 그날 판매하면 끝이다. '슬로 브레드'(Slow Bread)인 까닭에 미리 생산량을 정해 놓고 며칠 전부터 만들어서다. 보존기한이 길어지고 데코레이션이 용이해지는 식물성 생크림도 쓰지 않고 동물성만 사용한다. 이런 점은 골목을 장악한 프랜차이즈 빵가게가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아르보'의 빵 맛은 천연발효종 빵 특유의 향미가 잘 살아 있다. 유럽인들이 식사용으로 담백하게 먹는 캄파뉴(campagne·시골빵)는 식감이 부드럽고 호밀의 향미가 느껴졌다. 브런치 메뉴인 리코타치즈샐러드에 캄파뉴가 나왔는데, 상큼하게 어울린 맛이 좋았다. 치즈롤은 치즈 덕분에 짭조름했는데, 그래서인지 커피, 우유와 궁합이 맞았다. 개인적으론 생목현상(소화가 안돼 역류하는 것) 때문에 평소 빵을 꺼렸는데, 이날은 여러 종류의 빵을 먹고도 속이 편해 좋았다.

생과일 주스는 유기농 재료만 쓰는데 물을 전혀 섞지 않고 얼음만 약간 넣고 갈아 내왔다. 아이스크림은 9가지 과일 원액에 천연 바닐라빈을 넣어 직접 만든다. 소소한 메뉴까지 건강에 신경을 쓴 노력이 느껴졌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1432 베네시티 110호. 오전 8시∼오후 11시. 051-744-9595. www.arborbc.co.kr. 캄파뉴 1만 원, 버터롤 2천500원, 프티치즈롤 3천500원, 아르보브런치 1만 1천 원, 리코타치즈샐러드 1만 3천 원, 아이스크림 1천700원, 아메리카노 3천800원, 생과일주스 9천 원.

글·사진=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천연발효종

이스트나 천연발효종(種) 모두 천연에 존재하는 균에서 만든 효모다. 천연발효종은 화학첨가물 없이 과일, 호밀, 미곡을 원료로 자연발효를 거쳐 얻는다. 이스트는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서 개발됐는데 빵에 적합한 균만을 분리해 화학 물질을 사용해 배양한 것이다. 사용하기 쉽고 항상 같게 만들 수 있는 안정감이 강점. 천연발효종은 빵의 역사와 같다. 기후와 풍토, 만드는 이의 기술과 개성, 재료에 따라 다른 발효종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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