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곁들인 다금바리 코스에 봄날이 무르익다

입력 : 2013-03-28 07:50:46 수정 : 2013-03-28 14: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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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금바리 특선요리.모둠회에서 왼쪽은 특수부위인 껍질과 위, 입술, 간.

"정식으로 회 뜨는 기술을 배운 적은 없어요. 하루 5만 원 벌면 그 돈을 쥐고 유명 횟집으로 달려갔지요. 요리사의 손동작을 외워뒀다가 집으로 돌아와 따라해 보면서 연습한 게 전부였습니다."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 같은 얼굴 위로 신산한 세월의 그림자가 퍼뜩 흘러갔다. "초가집을 개조한 민박집에서 식탁 세 개짜리 식당으로 시작한 지 올해로 30년입니다."

제주도에서 다금바리 전문점 '진미명가'를 운영 중인 강창건(58) 셰프는 '다금바리의 명인'으로 불린다. 난다 긴다 하는 횟집이 지천인데 '명인'으로 이름난 건 횟감 중의 횟감인 다금바리의 맛을 제대로 내는 노하우의 독보성 때문이다.

비린내가 나지 않게 생선을 잡고, 생선살결을 자유자재로 파고들어 회의 맛까지 달라지게 만드는 현란한 칼 솜씨. 이 기술은 노하우에 그치지 않고 요리 특허가 되었고, 세계 무대에서 겨뤄 '요리거장(great chef)'으로 인정받아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고졸의 가난한 목수가 독학으로 일궈낸 인생역전 스토리다.

고졸 가난한 목수에서
생선회 노하우로 특허
세계 요리 거장에 오른
'다금바리 명인' 강창건 셰프
아들과 함께 세계화 꿈꿔


봄바람에 춤추는 유채꽃을 뒤로한 채 강 셰프가 다금바리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지난 26일 롯데호텔부산 일식당 '모모야마'에서 다금바리 특선요리를 선보이는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흰 가운 입고 칼을 쓰는 사람들은 생명과 건강을 다룬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다금바리 모둠회를 접시에 담아 건네면서 자못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보탠다. 조리사를 의사에 빗댄 그 말에 다금바리 요리에 평생을 건 그의 신념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정수리를 정확히 가격해 기절시킨 뒤 뾰족한 갈고리로 찔러 단번에 뇌사시켜야 해요. 아가미 사이에 칼을 넣어 관상동맥을 끊어 낸 뒤 45도로 비스듬히 세운 도마 위에 머리를 밑으로 해 놓아두면서 피를 빼야 비린내가 없어져요." 배운 적도, 가르쳐 준 사람도 없이 순전히 시행착오 끝에 나 홀로 터득한 '기절-뇌사'의 기술이다.

회를 뜨는 기술도 자타 공인 추종불허다. "생선살에도 나이테가 있는 것처럼 보시면 됩니다." 그는 생선살의 질긴 결을 나이테에 비유했다. "칼이 어떻게 그 결을 파고드느냐에 따라 맛이 좌우됩니다. 같은 횟감을 같은 칼로 썰어도 어떻게 힘을 주고 결을 어떻게 자르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실제 이날 모둠회로 나온 생선살은 쫄깃한 정도였지만 초밥에 올려진 생선살은 한결 씹힘성이 강했다. 겉으로 보기엔 여느 회 뜨는 동작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칼날이 90도로 힘차게 내려가다가 순식간에 꺾이기 때문에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란다. 어쨌건 손목과 어깨의 힘 조절, 칼이 들어가는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맛 있는 회를 썰어내는 그만의 방식이다. 

다금바리 회초밥.

생선회와 초밥, 탕에서 그쳤으면 명장에 반열에 이르지 못했을 텐데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눈, 간, 위, 입술, 혀, 목줄기살 등은 발라내고, 껍질은 데치고, 벗겨낸 비늘은 튀기거나 묵으로 낸다. 특수 부위를 포함한 30가지의 창작 요리로 구성한 코스요리는 미식가들의 혀를 매혹시키고 있다.

'회 뜨는데 무슨 특허냐'는 냉소를 무릅쓴 채 이 모든 노하우를 담아 특허를 낸 그는 지난 2006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음식의 향연'에 당당히 도전했다. 결과는 최종 100명이 남게 된 '요리거장'에 뽑히는 영예로 이어졌다. 

껍질 초회.


"참 까다로운 녀석들이에요!"

이야기 방향을 다금바리쪽으로 틀었더니 대뜸 민감한 성질에 혀를 내두른다.

"수조에 두고 먹이로 고등어, 멸치를 주는데 싱싱하지 않으면 뱉어내 버려요. 소음에도 민감해 항상 음악을 틀어줘야 하고 찬물을 좋아하니 온도도 유지해야 합니다." 이번 사흘간의 특선요리 행사 때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매일 아침 비행기편으로 부산으로 공수했다고.

다금바리는 무리지어 다니지 않고 암초 틈에 웅크리고 있다가 주로 낚시에 의해 소량만 잡힌다. 잘 잡히지 않으니 비쌀 수밖에. 그래서 양식되는 능성어를 자연산 다금바리로 속아 비싼 돈을 치르는 해프닝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대체로 능성어는 ㎏당 소비자가격이 10만 원대인데 다금바리는 20만 원을 훌쩍 넘는다.

마침 전날 부산시내 한 횟집에서 남해안에서 갓 잡아왔다는 '다금바리' 사진을 꺼내 보여줬더니 주저없이 능성어라는 판정을 내렸다. "제주에서도 귀한데 육지에서는 글쎄요…." 능성어와 다금바리는 사촌쯤 되는데 몸통 세로줄무늬가 뚜렷한 게 능성어다. 다금바리는 육식성이라 이빨이 날카롭고 성질이 포악하다. 그래서 '바다호랑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는데 정작 회의 맛은 최고 중의 최고로 친다.

모둠회에 나온 살점을 물끄러미 보니 가장자리에 살포시 진줏빛이 감돌아 영롱한 느낌이 든다. 한 점 씹으니 담백한 맛과 쫄깃한 씹힘성이 어우러졌다.

함께 나온 입술살, 껍질, 위, 간 등 특수부위 요리들도 독특한 비주얼로 눈길을 잡아 끌었다. 데쳐서 나온 것을 소금기름장에 찍어 한 입 오물오물. 입술살과 껍질은 차지고 탱글탱글한데 씹을수록 감칠맛이 우러났다. 위와 간은 고소한 맛의 여운이 입속에 오래 남았다. 
다금바리 특선요리.모둠회에서 왼쪽은 특수부위인 껍질과 위, 입술, 간.

그가 개발한 와인을 곁들인 다금바리 코스요리에는 혀, 목줄기살, 가는뼈김말이와 아가미·갈비·등뼈·꼬리·날개 튀김 등 전체 부위가 총출동한다.

"음식에는 국경이 없어요."

그의 꿈은 그가 개발한 다금바리 코스요리를 세계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한식의 세계화다. 그래서 전 세계의 소스를 연구하고 있고 스토리텔링 소재도 찾고 있다. 아들과 함께 2대로 이어지는 강 셰프의 맛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글·사진=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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