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에 먹던 일식이 아직도 그대로 나오네…

입력 : 2013-04-11 07:50:21 수정 : 2013-04-11 14: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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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로 삼송초밥의 오랜 메뉴들

요리사와 단골이 함께 늙어가는 식당은 아름답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려 오고, 그 맛을 잊지 못한 아들이 손자와 다시 찾는 곳. 거기에는 아스라한 추억이 살아 꿈틀댄다. 광복로에 위치한 일식집 삼송초밥이 그런 곳이다. 1968년께 지금의 상호로 가게를 연 뒤 반백 년 가까이 원도심의 부침을 묵묵히 지켜봤다.

삼송초밥에는 전설이 있다. 아니 살아있는 화석이라해도 좋겠다. 예전 요리사가 아버지 시절 먹던 일식요리를 지금도 그대로 내놓고 있다. 양념한 찐 생선살(오보로)을 넣은 김밥, 생선과 채소 튀김을 얹은 덮밥(덴동). 외식산업이 다양화하면서 잊히고 일식집에서조차 자취를 감춘 메뉴들이다. 요즘 일본 식문화가 직수입되면서 다양한 음식들이 소개되는 과정에서 "어라, 이 음식 예전부터 있었네!"하고 재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단골 노신사들이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찾아오고, 알음알음으로 젊은이들까지 가세해 즐기는 '묵은 맛'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

■1968년에 개점한 '삼송초밥'

반 백 년 세월 원도심 부침 지켜봐
조승길 요리사 53년째 현역 기록
튀김 얹은 덮밥 '덴동' 일본 맛 그대로
손 많이 가는 '동경식 김밥' 명물
3대째 이어져 추억이 꿈틀


53년째 현역이자 부산 일식집 요리사 중 최연장자인 삼송초밥의 조승길 부장이 요리에 열중하고 있다. "나이 많다고 놀면 뭐하나요. 운동 삼아 하지요." 희끗희끗 세어진 머리, 움푹 팬 주름에는 관록이 녹아 있다. 부지런히 손을 놀려 튀김을 만들어내고 김밥 재료를 다듬어 낸다. 삼송초밥의 요리사 조승길(73) 부장은 스무살 때 고향 대전을 떠나 부산 중구 동광동의 초밥집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한 이래 53년째 현역이다. 부산의 일식 요리사 중 최연장자다. 지금도 오전 9시에 나와 오후 10시까지 주방을 지킨다.

조 부장은 1981년께 삼송초밥에 합류한 뒤 세인들의 기억속에서 잊혀 간 튀김 덮밥과 오보로 김밥의 옛맛을 지금까지 지켜 오고 있다. 시간이 저장된 그 오랜 손맛을 보여 달라고 부탁드렸다.

주방에 들어간 조 부장이 칠순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힘찬 손놀림으로 튀김을 만들어내더니 따뜻한 밥위에 얹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덴동'을 식탁에 내왔다. '덴푸라(튀김)'를 얹은 '돈부리(덮밥)'라 '덴동'으로 불리는데, 이날은 새우와 장어, 어린 깻잎, 호박 튀김이 풍성하게 토핑되어 있다. 바삭거리는 식감이 좋고 오랜 전통의 방식으로 간을 맞춘 소스가 입에 맞았다.

"아, 일본 현지에서 먹던 맛이구나"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픈 추억을 자극하는 설명이 보태진다.

삼송초밥에서 함께 일하다 은퇴한 조환영(75) 씨는 가끔 가게에 일손이 필요하면 거든다. 마침 취재 당일 가게를 찾은 조 씨는 배고픈 시절로 기억되는 한국전 당시를 회상했다.

"전쟁통의 1951년 1월 서면에 있던 일식당 '한푼리'에서 일할 때였어요. 덴동은 선 채로도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인지라 당시 인기가 있어 식당 문 열기 전부터 피란민들이 장사진을 쳤지요."

피란 시절 배고픈 설움을 잠시나마 잊게 했던 덴동은 삼송초밥에서 그 맛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 메뉴 또한 다른 일식집에서는 자취를 감췄고 그래서 잊혔다. 적어도 일본 식문화가 직수입되면서 카레와 우동 위에 튀김을 토핑한 메뉴가 최근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그 설명을 듣고 다시 덴동을 보니 문득 숙연해졌다. 
양념한 찐 생선살(오보로)을 넣은 김밥
이어 김밥이 나왔다. 색감이 화려하다. 흰 밥 사이로 핑크빛 오보로(朧), 노란색 계란말이, 푸른색 시금치, 짙은 갈색의 박고지가 사색조화를 부린다. 맛은 달고 삼삼하다. 실물을 보고, 맛까지 보고 나니 어릴 때 먹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른다. 이 메뉴는 '동경식 김밥'이란 이름으로 올라 있다.

이 김밥을 이해하려면 오보로를 알아야 한다. 오보로는 예전엔 명태살로 만들었는데 요즘은 광어살을 재료로 쓴다. 생선살을 쪄서 빻아 채로 거른 뒤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한 것에 핑크빛 식용색소로 색을 입힌다. 이걸 솥에 넣고 불을 가해 말리는데 자칫 실수하면 타 버리니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이 오보로와 박고지를 장만하는 데만 꼬박 하루가 들어간다.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 이렇게 번거롭고 시간을 잡아먹으니 웬만한 일식집에서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은 연로하신 단골 손님들이 병원에서 '힘을 내고 싶다'면서 주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려울 때 삶을 지탱해 주었던 그 영혼의 음식이란게 이런 것일까. 힘겨웠던 시절 우리 아버지들을 일으켜세웠을 이 음식들이 그때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삼송초밥은 3대째인 주강재(33) 씨가 가업을 이어받고 있으니 그 전통이 계속 이어져 나가길 바라 본다.
생선과 채소 튀김을 얹은 덮밥

※부산 중구 창선동1가 13의 1. 광복로 국민은행 뒤편. 051-245-6305. 일요일 휴무. 오전 11시∼오전 2시. 동경식 김밥 1만 2천 원(테이크아웃 1만 원). 튀김덮밥 1만 5천 원(점심특선 1만 원), 장어덮밥 2만 5천 원, 초밥 특대 5만 원, A코스 3만 원, B코스 2만 원.

글·사진=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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