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가면] 중앙동 '탕'

입력 : 2013-04-25 07:56:22 수정 : 2013-04-25 14: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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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산 생돼지고기와 업그레이드된 '김치 탕?'

식당입구 간판엔 덩그렇게 '탕'이라고만 적혀 있다. 그 아래 현수막에는 양푼에 제주생고기를 넣은 그림이 있긴 한데 이것만으로는 당최 무슨 음식점인지 알 수가 없다.

가게 안 메뉴판에도 '탕 대, 중, 소'와 가격이 쓰여 있을 뿐 무슨 재료로 끓인 탕이라는 설명이 없다. 그런데도 손님들은 잘도 주문해서 먹고 흡족한 얼굴로 나간다.

중앙동 부산호텔 아랫길에 위치한 '탕'에서 '탕' 중(3∼4인분)을 시켰다. 양푼 용기에 육수와 함께 김치, 두부, 대파가 담겨 나왔다. 식탁에서 바글바글 끓을 즈음 정원길(43) 사장이 제주산 생돼지고기 덩어리를 들고와 손수 넣어 준다.

금세 익은 고기는 꼬들꼬들하고 김치는 아삭아삭하다. 고기와 김치를 김에 올려 쌈을 싸먹듯 먹었더니 식감도 좋고 맛도 어우러진다. 칼칼한 국물은 숟가락을 바쁘게 만든다.

전골처럼 재료를 넣어 가면서 끓이긴 하지만, 영락없는 양푼 김치찌개다. 그런데도 굳이 그 명칭을 피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치찌개도 '탕'으로 불릴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습니다."

중국산 김치와 수입 냉동육을 쓰고 조미료로 맛을 내는 싸구려…. 자신이 김치찌개 마니아라서 '허접한 김치찌개'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는 것이다.

국어사전이 '탕'을 '국'의 높임말이라고 풀어 놓았으니, 최상의 재료로 만들면 '탕'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 실제 '오뎅탕'을 비롯해 시중에 '탕'으로 불리는 음식보다 훨씬 비싼 재료가 쓰인다고 그는 연신 강조했다.

그런 자신감은 벽면에 여봐란듯이 붙여 놓은 원산지 증명에서도 읽힌다. '배추 충북 보은, 쌀 포항 흥해, 고추 경남 밀양, 마늘 경남 창녕, 천일염 신안군 압해도, 김 명지, 간장 경남 밀양, 대파 명지.' 육수는 전주콩나물국밥 식으로 북어와 사과, 양파껍질 등으로 우렸다. 조미료를 일절 쓰지 않고 국산 고급재료만 썼다고 내세운다.

게다가 정 씨는 돼지고기를 넣어 주러 손님상에 와서는 "섬유질이 많아 끓여도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충북 보은산 배추만 쓴다"는 등 스토리텔링에 열심이다.

모르고 먹는 것과 알고 먹는 것은 천지 차이. 재료 이야기를 듣고 난 손님들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단다. 찌개가 됐건, 탕이 됐건, 손님 입장에선 좋은 재료로 최상의 맛을 낸 식당의 등장이 반가울 따름이다.



※부산 중구 중앙동 2가 57. 중앙동 주민센터 인근. 051-243-9303. 평일 오전 11시∼오후 11시. 토 오후 4시∼오후 10시. 일 휴무. 소(2∼3인·제주생고기 250g) 1만 8천 원, 중(3∼4인·450g) 2만 3천 원, 대(4∼5인·600g) 2만 9천 원, 바로탕(점심·2인분) 1만 2천 원. 김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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