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가면] 영선동 '달뜨네'

입력 : 2013-05-02 08:01:12 수정 : 2013-05-08 07: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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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 먹는 시락국밥과 녹두빈대떡의 묘미 '알랑가몰라'

영도 이송도 삼거리에서 목장원으로 가는 도로변 목욕탕 '유성탕' 1층에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게가 하나 생겼는데 해가 지면 공기 주입식 LED 조명의 노란 달을 띄운다. 지름이 6m나 되니 멀찌감치서도 눈에 띈다. 상호가 '달뜨네'인 이유를 굳이 이렇게 알린다.

민속주점인가? 재정비촉진 지구 '불 꺼진 동네'의 낯선 풍경에 궁금증이 커진다.

입구에 들어섰더니 크게 확대된 화투의 팔광 그림이 반긴다. 또 달빛이다! 제2송도 해안도로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묘박지의 바다야경과 묘하게 어울린다.

'달뜨네'는 시락국밥(사진)과 녹두빈대떡을 내세운다. 달동네 골목가게를 상상하면 오산이다. 내공이 만만찮아서다.

시락국밥에는 '천연된장꼬지'라는 수식이 붙어 있다. '꼬지'는 꼬치고기 혹은 애꼬치라는 바닷물고기의 경남 방언. 꼬지로 우린 육수에 경남 고성 안국사에서 만들어 3년 숙성한 천연된장을 풀어 시락국을 끓여 낸다. 꾸밈이 없이 선선하고 담백해 술술 넘어간다.

녹두빈대떡을 한 점 떼어내려니 부서진다. 쌀가루, 밀가루를 섞지 않고 녹두 100%로 만들었으니 녹두 본연의 맛을 즐기라는 뜻으로 읽혔다.

새우, 오징어와 당근, 호박 등 해산물과 야채를 듬뿍 넣어 '떡'보다는 '전'이 된 셈이지만, 어떻게 부르건 별미로 인정!

'오늘의 생선회'에 발목이 잡혔다. 이 메뉴 탓에 이른 귀가를 포기해야 했다. 방어, 민어, 고등어, 전갱이, 농어….

시락국밥집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정식 일식 요리사가 맛깔스럽게 선어를 장만해 내는데, 가격은 착하기 그지없다!

음식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문득 범상치 않은 그릇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도자기다! 밀양에 가마를 두고 있는 정재헌 도예작가의 작품. 몇 천 원짜리 음식이 10만 원짜리 도자기에 담겨 나온다. 심지어 동동주 사발은 방짜유기다.

은근히 놀라고 있는 걸 눈치 챘는지 위승진(54) 사장은 "거리의 달라진 분위기에 동네 사람들이 더 놀란다"면서 웃는다.

본업이 인테리어로 음식점 인테리어를 하면서 노하우를 쌓았고 사하구 당리동에서 갤러리를 겸한 레스토랑 '피카소의 식탁'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렸단다.

가게 맞은편 묘박지를 내려다 보는 해안가 쪽에 옥상 별관도 두고, 게스트하우스도 준비 중이라니! '부산의 산토리니' 구상이 언뜻 떠오르는 그의 수상한 행보가 주목된다.


※부산 영도구 영선동 4가 1470. 051-418-2212. 오전 11시 30분∼오후 11시 30분. 순된장꼬지시락국밥 3천500원, 순녹두빈대떡 8천 원, 부추전 6천 원, 동동주 6천 원, 오뎅탕 9천 원, 생선회 소 1만 원, 대 3만 원.

글·사진=김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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