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글탱글 '벌교 꼬막' 찬바람 불면 딱이라는데…

입력 : 2013-10-04 07:45:53 수정 : 2013-10-04 14: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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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구 온천동 벌교꼬막촌 배순교 사장이 갓 데쳐낸 꼬막을 여럿이서 까먹고 있다.

몇 해 전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갔다. 가을철엔 벌교 꼬막을 꼭 맛봐야 한다며 일행 중 누군가가 꼬막집으로 끌고 갔던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참꼬막이 한 됫박 나왔다. 약간 벌어진 조개 입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새꼬막은 먹었지만 참꼬막은 처음이라 당황했다. 비릿한 맛 때문에 꼬막을 들었다 놓길 몇 차례. 살짝 혀끝을 대보았다. 짭짤하면서 진득하고, 감칠맛까지…. 허, 그것 참! 시간이 지나면서 꼬막 육즙이 조갯살보다 더 입맛을 돋우었다. 그 뒤로 꼬막을 먹을 때마다 육즙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쪽쪽 빨아 먹는다.

꼬막 맛이 돌아오는 계절이다. 꼬막은 진달래와 벚꽃이 필 때부터 질 때까지가 가장 맛있다. 하지만 꼬막깨나 먹어 본 사람들은 산란기가 끝난 10월부터 초봄까지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이맘때 삶은 꼬막 한 접시는 술안주나 식욕이 떨어진 가족을 위한 찬거리로도 그만이겠다.

산란기 끝낸 10월부터 살 올라
술안주·식욕 돋우는 음식 제격

벌교 꼬막 전문점 부산에 등장
취향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 꼬막은 3형제?…작은 꼬막이 더 세다?

꼬막은 돌조갯과의 조개다.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피조개)이 있다. 크기와 껍데기의 골 숫자로 구분한다. 눈대중하면 가장 작은 게 참꼬막이다. 전체적으로 알 모양인데 껍데기에 15~17줄가량 부챗살 골이 파여 있다.

시인 박노해의 '꼬막'이란 시는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로 시작한다. 친구 광석이가 보낸 꼬막이 참꼬막이다.

새꼬막은 참꼬막보다 0.5~2㎝가량 더 크다. 부챗살은 31~32줄로 36줄을 넘는 것도 있다. 새꼬막은 껍데기 가장자리에 털이 있다. 보통 피조개로 알려진 피꼬막은 골 수가 40줄이 넘고 굵기도 새꼬막보다 훨씬 크다.

국립수산과학원 양식관리과 신윤경 박사에 따르면 참꼬막은 다 자라는 데 5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새꼬막은 이 기간이 절반으로 준다. 꼬막은 7~9월에 산란을 한다. 이 때문에 산란을 끝낸 10월부터 살이 두툼해지고 쫄깃해진다. '찬바람이 불면 꼬막이 맛있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다.

벌교와 순천 사람들은 차례상에 꼬막을 올리는데, 주로 참꼬막을 쓴다. 수라상에도 올랐다. 이 탓에 새꼬막은 참꼬막보다 못하다고 해서 '똥꼬막' '개꼬막'으로 불린다. 양식으로 채취하는 새꼬막에 비해 종패 구하기가 어려워 거의 자연산만 출하되는 참꼬막은 어황에 따라 가격 변동 폭이 크다. 참꼬막이 새꼬막보다 4~5배 이상 비싸다. 몇 년 전 한 TV예능프로그램에서 벌교 참꼬막이 소개되면서 한때 참꼬막 품귀 현상이 일기도 했다.

꼬막류 조개는 열량과 지방은 적지만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한 식품이다. 칼슘과 철분이 많아 아이나 어르신, 임산부에게 보양식으로도 좋다. '벌교에 가서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꼭 꼬막 때문은 아니겠지만 꼬막의 영양가가 분명히 한몫했을 터이다.

신 박사는 "꼬막의 혈액은 다른 조개와 달리 헤모글로빈을 가지고 있어 붉은색을 띤다"며 "이런 이유로 높은 온도에서 꼬막을 삶게 되면 단백질 변성이 일어나 영양 가치가 줄어든다"고 말한다. 


■ 꼬막 전문점 '벌교꼬막촌'

남도에선 제사상에 오를 만큼 귀한 몸이지만 부산사람들한테 꼬막은 안주나 반찬거리에 불과하다. 부산에서 꼬막을 파는 음식점이 몇 곳 있지만 크게 주목 받지 못한 것도 이런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최근 꼬막요리 전문점이 개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5월 문을 연 동래구 온천동 '벌교꼬막촌'이다.

배순교(46) 사장은 "매일 새벽 벌교로부터 꼬막 40~50㎏가량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꼬막이 그만큼 신선하다는 얘기다. 꼬막은 평소 수줍은 듯 입을 다물고 있는데, 삶으면 살점이 사람 엉덩이처럼 탱글탱글하다. 육즙도 간간해야 잘 삶겼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삶을 때부터 공이 들어가야 한다. 팔팔 끓는 뜨거운 물에 찬물을 약간 섞는다. 꼬막을 넣고 국자를 한쪽으로만 젓는다. 살이 찢어지지 않고 껍질 한쪽에 붙어야 먹기에 좋다. 간간하니 소금 간도 필요없다. 3분가량 데쳤다가 찬물에 한 번 씻어낸다. 입을 오므린 꼬막은 이렇게 탄생한다.

그런데 입을 반쯤 다문 꼬막이 부산사람들에게는 아직 낯선 것일까? "꼬막을 약간 덜 익힌 상태로 내면 더 삶아 달라는 손님이 많아요. 부산 분들은 참꼬막의 핏물도 덜 삼아 그런 줄 알고 다시 삶아 달라고 합니다. 참꼬막의 진정한 맛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배 사장의 말이다.

단품보다 꼬막정식을 주문할 때 더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삶은 꼬막과 양념꼬막, 꼬막무침, 꼬막꼬치, 꼬막된장찌개, 꼬막탕수육 등이 한 상 가득 차려져 나온다. 삶은 꼬막에 손이 먼저 간다. 꼬막 까는 전용 집게가 있지만 숟가락으로 까야 제맛인 법. 포도 알 씹듯 꼬막 한 알을 오물오물 씹었다.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왔다갔다 하더니 어느새 달짝지근한 맛이 입에 가득했다. 알이 작은 꼬막으로 만든 탕수육은 입에서 조갯살이 터지는 게 잔재미가 있다. 약간 아쉽다 싶었는데 꼬막무침과 꼬막된장찌개를 넣은 비빔밥이 아쉬움을 제대로 달래 준다.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꼬막 맛을 '간간하면서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다'고 표현했는데 꼬막을 씹으면서 이런 문장에 수긍하게 된다.

"산란기와 해수 온도가 높아지는 여름엔 꼬막 맛이 떨어져 지난 9월엔 한 달간 문을 닫았죠. 그만큼 부산 분들에게 제대로 된 꼬막 맛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배 씨의 말에는 꼬막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결의 같은 것이 묻어 있다. 곧 꼬막비빔국수나 꼬막과 치즈를 곁들인 요리도 선보일 것이라고 하는데 그의 후속작(?)이 기대된다.


※부산 동래구 온천동 159의 29. 도시철도 1호선 온천장역 바로 건너편. 051-555-9196. 참꼬막정식 1만 5천 원. 새꼬막정식 1만 원. 삶은 참꼬막 3만 원. 삶은 새꼬막 1만 5천 원. 양념꼬막과 꼬막무침은 각 1만 5천 원. 꼬막탕수육 2만 원.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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